[y피플] 경북 장애인육상실업팀

  • 이창남 이지용
  • |
  • 입력 2014-07-19   |  발행일 2014-07-19 제3면   |  수정 2014-07-19
“장애는 핑계, 불가능은 없어요” 17만 장애인의 ‘희망’이 달린다”
20140719
구미 시민운동장에서 훈련중인 경북 장애인육상실업팀의 안점호 감독, 채창욱·김수민·김영갑·정준수 선수(왼쪽부터)가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주어진 조건과 상황에 늘 불만이던 기자는 그들을 만나는 순간부터 한없이 초라해짐을 느껴야만 했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자신의 뜻과 반해 몸에 지닌 ‘장애’라는 족쇄와 굴레를 늘 혹처럼 붙이고 다녀야 하는 사람들. 비상(飛上)하려는 그들의 맑은 영혼이 기자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2009년 7월 개봉한 영화 ‘국가대표’를 떠올릴 만한 주인공들을 만나기 위해 구미시민운동장으로 차를 몰았다. 태풍 너구리가 북상하면서 대구는 물론, 구미에도 굵은 장대비가 내린 지난 9일 오전 9시. 구미시민운동장에는 텅빈 관중석을 배경으로 4명의 장애인 육상 선수들이 이른 아침부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장애와 무관심과 싸우는 이들은 경북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 실업팀(육상) 선수들이다.


女휠체어마라토너 1호 김수민 “하반신 마비됐다고 못 뛰나요”

20140719

◇…국내 첫 여성 휠체어 마라토너인 김수민씨(27). 여행을 좋아하던 평범한 회사원이던 수민씨는 어느 날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척추에 손상을 입고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다.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자 수민씨는 휠체어를 타고 무슨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휠체어 마라토너의 길을 걷게 됐다.

“장애를 갖고 운동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죠. 하지만 이제 경북에도 장애인 육상 실업팀이 생기면서 희망이 생겼습니다. 비록 월급은 많지 않지만 17만 지역 장애인에게 큰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요.”

실제 실업팀원들의 활약 소식을 듣고 육상을 해보겠다고 도전하는 장애인이 늘고 있다. 수민씨가 이날 기자에게 소개한 윤현재씨도 그중 한 명이다. 구미장애인복지관 소속인 윤씨는 수민씨처럼 휠체어를 탄다. 누나 뻘인 수민씨가 포기하지 않고 매일 육상 트랙에서 연습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고 자신도 운동을 하겠다고 다가간 것.

사실 수민씨는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운동복을 입을 수도 없고 휠체어 타는 것조차 어렵다. 한계 상황이 올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지 뼈저리게 깨닫고, 이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눈물도 수없이 쏟았다고 한다.

“2012년 런던 패럴림픽 출전이 좌절됐을 때는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죠.”

그는 자신의 장애등급(지체장애)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쪽으로 조정되면서 보유하고 있던 기록이 출전 기준에 미달됐고, 결국 런던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수민씨는 당시 왼쪽 어깨를 다쳐 인대접합을 위해 수술대에도 올랐다. 이제 어깨는 정상수준으로 회복됐지만 한동안 훈련을 쉬어야 했다. 당시 수술비 부담 때문에 다른 직업을 찾아보기도 하고, 마라톤을 포기할 생각도 했다. 그러나 수민씨는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었다. 마침 경북도장애인체육회가 육상 실업팀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선수단 공개모집에 응모해 합격, 지난 4월부터 팀원이 됐다.

“휠체어와 스탠딩 멤버가 함께 공존하는 장애인 육상 실업팀은 국내에서 경북이 유일해요. 오는 9월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경북의 대표’로 당당히 한국에 금메달을 안기겠습니다.”


인천亞게임 태극마크 채창욱 “가장 밑바닥서 나와 싸워 이겨”

20140719

◇…25세 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된 채창욱씨(33)는 열정 넘치는 30대 청년이었다. 검정 뿔테 안경을 낀 그는 얼핏 보면 비장애인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뇌병변’이라는 괴물은 나중에 오히려 보배와 같은 존재가 됐다고 한다.

“사실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흥청망청하며 계획적이지 못한 삶을 살았죠. 그런데 장애를 갖고 살다보니까 이대로 제 인생이 끝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뭔가 다른 걸 해야만 했습니다.”

사고 후 침대에서 일어난 창욱씨는 성주군장애인체육회 김종군 사무처장을 찾았다. 운동을 하고싶다는 뜻을 밝히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창욱씨는 어떤 종목을 할지 제대로 정하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역도를 시작했죠. 그런데 뇌병변 장애인이 역도를 하면 하반신이 마비되는 증상이 오기 때문에 곧바로 그만뒀어요.”

당시 잠시 동안의 방황이 있었지만 창욱씨는 육상으로 종목을 전환했다. 숱한 훈련을 반복한 끝에 마라토너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두 발은 일반 마라토너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튼튼하고 민첩했다. 그 결과 그는 이미 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출전 자격을 확보했다. 앞서 2008년부터 해마다 경북도민체전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또 전국대회에서도 금메달만 8개를 따냈다.

“사는 게 힘들고 어렵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가장 밑바닥까지 갔을 때 어떻게 그 상황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 의지에 달린 것이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亞 최고 수준 스프린터 정준수 “지적장애 출전자격 제한 마세요”

20140719

◇…올해 22세인 정준수씨는 말을 하지 못한다. 선천적인 지적장애 때문이다. 옆에 있던 안점호 경북장애인육상실업팀 감독이 일일이 ‘통역’을 해줬다. 준수씨는 손가락으로 초면인 기자의 어깨를 툭툭 치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준수의 기량은 아시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100m는 10초, 400m는 1분 초반대에 뛸 수 있을 만큼 폭발적인 스피드를 갖고 있어요. 하지만 국내외 장애인 체육대회를 주최하는 기관에서는 준수가 출전하는 종목을 자꾸 축소하거나 없애려고 하다 보니 준수로서는 설 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죠.”

안 감독이 순간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장애인체육대회를 주최하는 기관들도 일반 선수가 참여하는 체육대회와 차별을 두거나 다른 장소에서 개최한다. 당연히 대중의 관심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올해 제주에서 열리는 전국체육대회만 해도 그렇다. 장애인전국체전의 경우 제주가 아닌 인천에서 열린다. 예산 절감과 각종 절차가 복잡하다는 이유에서다.

준수씨는 “종목 축소나 출전 자격 제한을 풀어주면 나 같은 장애인 선수들이 희망을 갖고 운동을 계속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2시간30분대 기록 ‘캡틴’ 김영갑 “두 손 없지만 두 다리가 있어요”

20140719

◇…경북장애인육상실업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김영갑씨(41). 그는 세계 6대 메이저 마라톤대회에서 2시간30분대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원래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영갑씨는 1998년 구미의 한 대기업 생산공장 내 변전실에서 근무하다 고압패널에 감전돼 두 팔을 잃었다. 다행히 당시 6천600V의 충격은 김씨 무릎에 접촉한 고압패널이 상쇄시켜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다. “6개월간 구미 순천향병원에 누워 있었는데, 제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졌는지 몰라요.”

이후 그는 영화 ‘맨발의 기붕이’처럼 낙동강은 물론 집 주변의 임도를 무작정 걷고 뛰었다. 신발도 변변찮았다. 주위에서 안타까웠는지 보다 못해 운동화를 선물해 줬다고 한다. 뛰다 보니 전기에 감전된 몸 구석구석은 원래 감각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후 구미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한 영갑씨는 마라토너로서 소질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주 기뻤죠. 제 삶은 포기와 절망에 가까웠는데 ‘이제 됐다’는 확신이 들었죠.”

영갑씨의 도전은 계속됐다. 불가능에 가깝다던 풀코스(42.195㎞)에 도전해 완주에 성공한 것. 그때부터 기록 단축에 돌입했다. 3시간대를 2시간 후반대로, 다시 2시간30분대까지 단축시키는 데 성공했다.

“경북장애인육상실업팀 멤버는 최강입니다. 모두 국가대표 자격을 갖고 있고 각종 대회에 나가면 금메달을 예약해 놓을 만큼 빠릅니다.”


경북 17만 장애인의 꿈과 희망이 되다

이날 인터뷰에 응해준 경북장애인육상실업팀 소속 선수들의 공통점은 모두 ‘장애’를 ‘장애’로 여기지 않고 있으며, 미래를 향해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상황은 영화 ‘국가대표’에 나온 주인공들보다 더 심각하다.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무관심과 사회로부터의 소외만 극복하면 됐지만 이들은 또 하나 넘어야 할 산, 즉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라톤이나 트랙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이들이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금메달을 따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는 것을 보면 영화 이상 감동의 휴먼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목표 의식이 넘치는 이들은 순수함 그 자체이기도 했다.

이 감동의 리얼스토리 중심에 있는 안 감독은 6명의 실업팀원과 함께 경북 17만 장애인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장애로 움츠러든 장애인들이 하루라도 빨리 ‘양지’로 나올 수 있기를 기대했다.

안 감독은 “경북에 장애인 육상실업팀이 탄생하기까지는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김락환 대한장애인육상연맹 회장의 배려가 있었다”면서 “앞으로 선수들과 함께 경북도민과 지역 장애인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글=이창남기자 argus61@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sajahu@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스포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