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대결] 안녕 헤이즐·제로법칙의 비밀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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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15   |  발행일 2014-08-15 제42면   |  수정 2014-08-15
안녕 헤이즐 (장르:드라마 등급:12세 관람가)
생의 끝자락서 만난 사랑…다시 희망을 지피다

20140815
꿈과 열정으로 넘쳐날 꽃다운 17살이지만 헤이즐(쉐일린 우들리)은 우울하다. 갑상선 암의 발병으로 13살 때부터 투병생활을 해왔고 폐로 전이된 지금은 호흡을 위해 늘 산소통을 배낭처럼 짊어지고 다녀야 했다. 때문에 남들처럼 평범한 10대의 삶을 보내지 못한 헤이즐은 집에서 혼자 리얼리티 쇼를 보거나 책을 읽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

헤이즐의 그런 모습이 안쓰러웠던 부모는 암환자 모임에 참석해 딸이 삶의 위안을 받길 바란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부모에게 실망감을 주기 싫어 모임에 참석한 헤이즐은 그 곳에서 미소가 매력적인 순정남 어거스터스(안셀 엘고트)를 만난다.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18살 어거스터스 역시 골육종을 앓고 있다. 하지만 매사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을 지닌 그에게 헤이즐은 차츰 호감을 갖게 된다.

“영화와 책 속 이야기는 아름답지만 진실은 미안하지만 이거예요.” ‘안녕, 헤이즐’은 난치병에 걸린 자신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겠다는 듯 결의에 찬 헤이즐의 선언으로 시작하지만, 주인공들이 암말기 환자라는 설정만 제외한다면 여타 하이틴 멜로물의 공식에 충실하다. 단지 시한부 삶이라는 특수상황을 감안해 으레 수반되는 남녀의 밀고 당기는 익숙한 잔재미는 없다. 그럼에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이들이 삶을 대하는 긍정적인 방식 때문이다. 다른 듯 닮은 두 사람은 서로에게 위안이자 희망이다. 그리고 죽음보다 더 두려운 망각이라는 적에 함께 대처할 수 있는 든든한 동지로 두 사람 사이에는 뜨거운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죽음이라는 고통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너무 젊다. 카메라가 질병의 무게를 알려주기보다 별반 다를 것 없는 십대의 풋풋한 감성에 주목한 이유다. 이를 상징적으로 투영한 인물이 어거스터스다. 한 때 학교 농구부 스타였던 그는 해피바이러스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골육종으로 인해 절단된 오른쪽 다리를 거리낌없이 보여주며 스스로를 사이보그라고 말할 정도로 여유도 넘친다. 재치 넘치는 입담은 또 어떤가. 담배를 입에 물었지만 “날 죽일 힘을 주지 않기 위해 불을 붙이지 않는다”는 독특한 그의 사고는 헤이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무게감을 느끼게 만든 건 시종 호흡관을 코에 끼고 산소탱크를 끌고 다니는 헤이즐이다.

그런 두 사람이 삶과 죽음에 좀더 진지하게 접근하는 계기를 마련한 건 소설 ‘거대한 아픔’을 통해서다. 헤이즐은 피터 반 호텐(윌렘 데포)이 쓴 이 소설을 감명 깊게 읽었을 뿐 아니라 그를 만나는 게 소원이다. 운좋게 헤이즐은 암스테르담으로 초청을 받게 돼 날아갈 듯이 기쁘다. 하지만 암스테르담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피터는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진 극도로 까칠하고 예민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팬인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를 암스테르담까지 초대했지만 정작 자신을 찾아 온 그들에게 술에 취해 독설을 퍼붓는다. 사실 헤이즐이 그를 만나 꼭 묻고 싶었던 건 소설 속 여주인공이 죽고 난 후 가족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네 자신에게 물어봤냐”며 냉소적인 말만 내뱉을 뿐이다. 이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인 건 자신들의 추도사를 미리 준비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다. 추도식은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를 위한 행사이기에 살아있을 때 (자신의 장례식을)보고 싶다는 게 어거스터스의 생각이다.

결국 헤이즐의 추도사는 담담히 진행되던 이 영화에 최루성 강한 한 방을 날린다. 이 영화는 주인공 헤이즐과 어거스터스 역을 맡은 쉐일린 우들리와 안셀 엘고트 덕에 더욱 빛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전작 ‘다이버전트’에 이어 ‘안녕, 헤이즐’로 다시 호흡을 맞췄다. 그만큼 환상적인 케미를 발산할 수 있는 교감이 있었던 덕분에 영화가 말하고 싶은 사랑과 우정, 가족애까지 아우르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결과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제로법칙의 비밀 (장르:판타지 등급:15세 관람가)
내 존재의 이유는 뭘까…SF 판타지로 해답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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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누군가의 통제하에 있는 듯한 근 미래. 연산 시스템 회사인 맨컴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코언 레스(크리스토프 왈츠)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억압된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삶의 의미를 깨우쳐 줄 한 통의 전화를 놓친 코언은 또 다시 걸려올 전화를 받지 못하고 출근해야 하는 현실이 고통스럽다. 그러던 중 맨컴 회장(맷 데이먼)을 우연히 만난 코언은 재택근무를 하는 조건으로 특별한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제로법칙의 비밀’은 ‘브라질’(1985) ‘12 몽키즈’(1995)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2009) 등을 연출한 테리 길리엄 감독의 신작이다. 그는 이번에도 독특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색다른 세계관을 보여주는 이야기에 천착한다. 하지만 이제 그 과정이 낯설거나 난해하지 않다. 오히려 참신한 아이디어는 유독 빛을 발하며 인간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과 함께 더욱 강렬한 인상의 작품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코언은 제로법칙의 이론을 증명해야 한다. 즉,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을 수식으로 치환해 합산했을 때 ‘0은 100%가 돼야 한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다. 이를 완성시키기 위해 매일같이 컴퓨터 앞에서 혹독한 수식 계산을 반복해야 하지만 전화를 받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코언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코언은 왜 전화에 유독 집착을 하는 것일까. “인간은 모두 도구”라고 생각한 코언은 전화 속 미지의 목소리만이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에게 특별한 소명과 삶의 이유를 말해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영화는 세상은 어지럽고 복잡하다는 전제하에서 출발한다. 선택할 것은 많지만 시간은 한정돼 있고, 무엇을 사고 누구를 사랑해야 할지, 또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 그 해답을 찾기가 녹록지 않음을 강조한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가 관심을 기울일 만한 화두이기도 하다. 영화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간절히 알고 싶어 하는 코언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까지 이른다.

모든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어간다. 이는 신의 섭리에 따른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이다. 하지만 코언은 삶이란 죽음이라는 미생물이 들어있는 바이러스로 정의한다. 흥미로운 건 이를 빅뱅이론과 같은 우주물리학과 결합시켰다는 점이다. 맨컴 회장의 젊은 아들 밥은 코언을 만나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이런 발언을 서슴없이 발설한다. “제로법칙은 다 똥같은 것”이라며 “이는 단지 우주 전체가 개뿔도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 일 뿐, 모든 물질, 모든 에너지, 모든 생명은 빅뱅이라는 예기치 않은 우연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사실 그의 말은 굳이 증명할 필요조차 없는 진리다. 우주는 팽창을 거듭하다 거대한 블랙홀로 수렴된다. 그 블랙홀이 사라지면 시간, 공간, 삶, 사후세계도 없다. 그야말로 텅빈 제로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는 완벽한 것도 영원한 것도 없다. 코언이 버려진 성당에 살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려줄 신의 전화를 기다리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 코언에게 맨컴 회장은 일침한다. “인류가 신을 믿어서 가장 안타까운 건 현재의 삶보다 더 큰 의미를 찾으려다 오히려 현재의 삶을 의미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이처럼 ‘제로법칙의 비밀’은 다소 난해할 수 있는 테리 길리엄의 천진무구하고 디스토피아적 표현력의 정점을 보여준다. 전작들에서 보여준 도발적이고 독창적인 상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느낌이다. 특히 그만의 강렬한 색감은 수학적 기호를 큐브로 형상화하는 등의 참신한 작업을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덕분에 국가나 종교의 힘이 아닌 상상의 힘을 통해 구원을 얻었던 전작의 주인공들처럼 인간의 고뇌를 담은 철학적 메시지는 좀 더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현대 미술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이국적이고 낯선 색감의 미장센과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이 영화는 그를 기다리는 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듯하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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