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이 밥 먹여 주나요?” 실리 찾아 웃은 사람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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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9-01 08:29  |  수정 2014-09-01 09:27  |  발행일 2014-09-01 제15면
■ 4년제 대학 버리고 전문대 진학…‘대만족’ 스토리

갈수록 다양해지는 사회에서 학벌은 수많은 ‘스펙’ 중 하나일 뿐이다. 명분이 아닌 실리를 찾아 전문대를 선택하고 훌륭한 결과를 얻은 ‘행운의 얼굴’들을 만났다. 이들은 “열정과 소신만 있다면 전문가의 길은 멀리 있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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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보건대 학생 홍보대사 4人

홍보대사 활동하며 자신감 쌓아
이구동성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4년제 대학을 중퇴하고 대구보건대학교에 재입학한 학생 홍보 대사들의 취업 성공기가 눈길을 끈다.

2012년 대학교 학생홍보대사로 활동한 양혜정씨 등 4명은 누구보다 적극적인 대학생활을 보낸 뒤 모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다. 1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학생홍보대사에 뽑혔으며, 학과 대표나 스터디그룹에도 참여했다. 학교 CF와 홍보동영상 촬영 때에는 모델로 참여하며 자신감을 쌓았다.

지역 4년제 대학교 체육학과를 중퇴하고 대구보건대 방사선과에 입학한 양혜정씨는 올해 졸업과 동시에 여성아이병원 영상의학과에 취업했다. 양씨는 울산과 부산 등 대형병원에 합격했지만 지역 병원을 선택했다.

4년제 시각디자인과를 다니다가 대구보건대 뷰티코디네이션학부에 재입학한 추하영씨는 서울의 유명백화점에서 메이크업아티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추씨는 “4년제 대학이라는 타이틀을 포기할 때 아쉬웠지만 지금은 원했던 일을 할 수 있어 하루 하루가 즐겁다”고 말했다. 추씨는 또 “전에 다니던 대학교 친구들이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내 선택이 옳았다고 새삼 느끼게 된다”고 덧붙였다.

수도권의 스포츠경영학과를 다녔던 이채원씨는 대구보건대 치기공과를 올해 졸업하고 부모님이 경영하는 치과기공소에서 일을 하며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울산지역 수학과를 중퇴하고 대구보건대 안경광학과에 재입학한 이근영씨는 현재 3학년으로 안경사 국가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씨도 가족이 운영하는 안경원에서 근무할 예정이다.

이들은 “고등학교 때에는 간판만 보고 4년제 대학을 선택했지만 용기를 내서 다시 전문대학에 입학한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많은 경험과 고민을 하고 전문대학과 인연을 맺은 만큼 떳떳한 전문가로 이 사회에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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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과학대 물리치료과 2년 이명헌씨

4년제 영상사진학과 자퇴 ‘U턴’
“진짜 하고 싶은 일 하는 게 중요”


대구과학대학교 물리치료과에 재학 중인 이명헌씨는 2013학년도에 새내기가 되어 지금은 어엿한 2학년이 됐다. 2013년 3월 꿈을 위해 힘들게 입학한 4년제 사진영상학과를 자퇴하고, 전문대 문을 두드렸던 그는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좋아했고 태권도인으로 성공하고 싶었던 이씨. 하지만 부상으로 운동을 포기해야만 했고, 성적에 맞춰 입학한 4년제 대학에서는 전혀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조차 없던 날을 보내던 이씨는 학교를 휴학하고 공장, 영화관, 대형마트, 병원 등에서 3년 동안 일만 했다. 그러다가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물리치료사라는 직업에 호기심이 생겼다. 자신처럼 부상으로 운동을 포기해야만 하는 어린 유망주들에게 치료를 해주며 심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는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전문대 U턴을 결심하게 됐다.

전문대에 다시 입학하겠다는 그의 결정에 어머니는 눈물까지 흘리면서 속상해했다. “다른 집 자식들은 대학 졸업하고 취직할 나이에 다시 학교를, 그것도 전문대에 들어가겠다고 하니 속상하고 한심해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하고 싶은 공부와 가고 싶은 길이 분명했기에 확신이 있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다시 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예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공부에 대한 재미가 쏠쏠하다는 그는 “짧은 사회생활을 통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것보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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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성대 간호학과 2학년 44세 김병수씨

대학원서 피아노 전공한 음악도
어머니 간호하려고 간호사 도전

수성대학교 간호학과 2학년 김병수씨(44)의 일상은 1인4역이다. 간호학과 학생이면서 동시에 대학에서 피아노, 음악치료 등을 강의하는 시간강사다.

주말에는 팔공산 요양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노인들을 돌보고 있으면서 고향인 영양에서 부모님과 사과농사를 짓는 농부이기도 하다. 여기에다 수시로 의료기관, 요양기관에서 연주활동, 음악치료 봉사도 하고 있다.

김씨가 이처럼 일상을 쪼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환자를 돌보면서 음악을 통해 치료하는 의료센터를 운영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는 2017년 졸업과 동시에 꿈이 이뤄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김씨는 원래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뒤 대학 강의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한 음악도였다. 2010년 어머니가 척추협착증골절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전문적인 어머니 간호를 위해 간호조무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전문적인 의료지식과 음악을 접목한 음악치료를 할 수 있는 간호사가 되는 것. 불혹의 김씨가 꾸는 새로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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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진전문대 졸업 해외기업 입사 고희수씨

서울 4년제 법학과 1년만에 포기
|늦깎이 컴맹 극복 日 IT업계 진출


영진전문대학교를 졸업한 고희수씨는 수도권의 외고를 나와 서울 4년제 대학교 법대 차석 입학했다. 하지만 이후 가계가 급격히 기울면서 10여년간 ‘알바’와 ‘공장노동자’를 거쳐 30대에 전문대로 재입학해 꿈에 그리던 해외기업 입사에 성공한 늦깎이 취업 주인공이다.

올 봄 일본 오사카 소재 통신장비 판매업체 굿라이프 OS에 입사해 근무 중인 고씨는 99학번으로 법대에 입학했지만 IMF외환위기 여파로 집안 사정이 나빠진 데다 아버지가 위암에 걸리자 대학을 1년 만에 포기했다. 전단 배포, 식당아르바이트와 도금공장, 항공사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집안 빚을 갚고 어머니를 모시며 가장노릇을 해야 했다.

10여년간의 노력으로 집안이 웬만큼 안정을 찾자 그는 안정적인 일자리에 눈을 돌리게 됐다. 대일외고 일본어과를 졸업한 그는 영진전문대생들이 소프트뱅크 등 일본 기업에 취업했다는 언론기사를 보고 32살, 늦깎이로 11학번 대학 신입생이 됐다.

일본 취업을 위해 굳이 전문대를 택한 것은 커리큘럼과 실적에서 확실한 신뢰를 가졌기 때문이다. “4년제 대학 중에선 전문적으로 일본 취업을 준비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는 고씨는 “현지 회사를 많이 알고 있는 컨설턴트가 직접 상담해주고 면접 대비나 이력서 작성 연습도 열심히 준비시킨다. 막연한 조언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도와주고 실전처럼 대비하게 해주는 게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고씨는 “전문대에서 다시 공부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의아해 했는데 일본기업 합격소식에 모두 축하해 주었다”며 “늦깎이에다 컴맹수준이었던 제가 일본 IT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것은 주문식교육 덕분”이라면서 꿈과 확신이 서는 전문대가 있다면 과감히 도전해 볼 것을 조언했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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