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방어막’ 이 뚫려간다…FTA의 불편한 진실, 울고있는 농업

  • 노진실,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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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1-22 07:16  |  수정 2014-11-22 08:55  |  발행일 2014-11-22 제1면
중국과 FTA협상 눈가리고 아웅
가공농식품엔 거대한 빗장 풀려
농업 계속 희생…식량안보 위태
20141122
한·중FTA 협상 타결로 농축수산물 가공식품의 관세율이 낮아지면서 중국산 김치 수입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국내 배추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주민 대부분이 마늘농사 등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의성군의 한 마을은 요즘 부쩍 우울한 분위기다. 한·중FTA 타결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마늘값이 2년째 하락세인 데다 한·중FTA 소식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양념류 작물은 이번 한·중FTA 협약에서 양허 제외 품목에 포함됐지만, 김치 수입 관세가 낮아지면서 김치의 재료인 마늘·고추에도 ‘도미노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35년 넘게 농사를 지어온 의성군 단촌면 세촌1리 김용운 이장(58)도 한·중FTA 타결 이후 한숨이 늘었다. 마늘과 양파, 고추를 각각 6천600㎡(2천평)씩 재배한다는 김 이장은 “의성마늘은 중국산 마늘보다 항암효과가 몇 배나 뛰어나고 몸에도 훨씬 좋다”면서도 “그럼 뭐하나. 사람들은 어차피 싼 것만 찾을 텐데. FTA가 발효되면 더 심해질 것”이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10일 한·중FTA에 이어 15일엔 뉴질랜드와 FTA가 타결되면서 국내 농민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수출 주도형 산업 구조에서 FTA 협상은 국가적 이득이라는 논리를 앞세우는 한편, 쌀 등 초민감품목은 양허 대상에서 제외해 국내 농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최근 “FTA를 기회로 만들라”고 주문하면서 자신감을 갖고 중국, 동남아 등 해외 유망시장을 공략해야 하고, 특히 FTA를 수출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며 국내 농민을 다독이고 나섰다.

그러나 농민들은 정부의 낙관적인 주장과 달리 FTA 협상에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고 지적한다.

FTA에서 주요 농축수산물은 직접 수입되지 않기에 그 피해가 크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수입 가공식품의 관세율이 낮아지면서 국내 농업에 미치는 악영향은 훨씬 심각하다는 것.

경북의 한 과수 재배 농민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이다. 관세 제외 품목이 있다 해도 중국산 가공 농식품은 야금야금 우리 농업시장을 잠식해갈 것”이라고 했다.

국내 현실도 중국 등 농업대국과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다. 실제로 우리 농촌이 자신감을 갖고 창조적인 해법을 찾기엔 너무 노쇠했다. 당장에 김 이장이 살고 있는 세촌1리만 봐도 50대 미만의 농민은 한두 사람에 불과하고, 나머지 농민은 60대를 훌쩍 넘었다.

중국, 동남아 등 해외 유망시장에 진출하려면 투자비용을 높여야 하는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무리한 투자로 농업인이 빚더미에 앉게 될 수 있다. 농업인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정부가 자금 지원을 해도,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 문제로 얼마나 지속력을 가질지도 불투명하다.

이 때문에 농업 전문가들은 FTA를 사이에 둔 정부와 농민의 관계가 마치 ‘바람 난 남편과 아내의 관계’라고 비꼰다. 남편(정부)은 매번 ‘이번 한 번만…’이라며 양해를 구하고, 아내(농민)는 가정(국익)을 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결국 참는다는 것. 수출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취약산업인 농업이 희생하는 것은 FTA의 불문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 농업 전문가는 “기상이변 등으로 인해 식량 확보는 국가의 안보와 연결된다. 이런 상황에서 공산품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국내 농업을 죽이는 것은 우리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격이다. 농산물을 싸게 먹을 수 있다며 더 이상 국민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질타했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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