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매치’서 고난도 액션연기 펼친 이정재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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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1-28   |  발행일 2014-11-28 제37면   |  수정 2014-11-28
내 인생 마지막 액션영화로 여기고 온 몸 불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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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빅매치’의 최익호 캐릭터는 순도 높은 오락영화를 추구하고 싶었던 최호 감독의 의지를 오롯이 반영한다. 뛰어난 격투기 선수인 익호는 납치된 형(이성민)을 구하기 위해 서울 도심을 거대 도박게임판으로 만든 천재 악당 에이스(신하균)의 경주마가 되어 러닝타임 내내 치고 달리고 구른다. 얼핏 국내의 단골 장르가 된 액션영화의 연장선이라는 점에서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설정과 이야기지만, ‘빅매치’의 미덕은 힘을 빼고 이를 코믹과 액션으로 줄기차게 밀어붙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그 중심에 최익호를 연기한 이정재가 있다. 최근 ‘도둑들’ ‘신세계’ ‘관상’ 등으로 의미 있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이정재는 ‘빅매치’로 또 한 번 승부수를 던졌다. 정확히 말하면 이제껏 국내 액션영화에서 소개된 적 없는 최익호 캐릭터를 통해서다. 순수하고 엉뚱하고 막무가내의 지극히 만화적인 캐릭터와, 절제된 세련미와 카리스마를 상징하는 대표 배우의 흥미로운 만남. 역시나 이정재는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듯 매력적인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최호 감독은 그런 이정재를 두고 “전체적인 몸의 형태와 타고난 센스가 이미 충분히 멋있는 배우다. 자신만의 유연한 감각으로 익호 캐릭터를 생생하고 세련되게 만들었다”며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온 몸을 불살랐다는 표현이 적확할 만큼 이정재는 촬영 때마다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켰다. 엄청난 양의 액션을 감당한 것도 놀라운데 장면마다 코믹한 표정과 제스처, 대사까지 소화했다. ‘빅매치’를 감히 ‘이정재의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도심을 롤러코스터처럼 질주하는 쾌감이 그대로 전해지는 ‘종합 오락 선물세트’ 같은 ‘빅매치’는 그렇게 생명력을 얻었다. “이전 작품들에서는 영화를 잘 봐달라고 말했는데 이번에는 이 게임을 잘 즐겨 달라고 말하고 싶다”는 이정재의 말처럼 ‘빅매치’는 그런 그의 열정과 노력이 유독 짙게 배어있는 영화다.

급이 다른 액션연기
액션연기 위해 8개월간 준비
하루 대여섯끼 식사는 기본
오후 4시간가량 격투기 훈련
연습도중엔 어깨인대 끊어져
액션에 코미디 연기까지 가미
전에없이 까다롭고 힘든 촬영

데뷔 20년…
30대 중반부터 ‘내 연기’ 명확
주연·조연 구분 큰 의미없어
작은 역할이라도 최선 다할 것
이순재 선배처럼 건강하고 오래
연기생활 하는 게 인생 목표


-최근 액션 영화의 남자 주인공들이 절도 있는 액션과 카리스마를 선보였다면 최익호는 순수하고 엉뚱하고 유쾌하다. 캐릭터에는 어떻게 접근했나.

“시나리오에선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읽다 보니 영화의 전체적인 색깔과 톤 조절은 물론, 요소요소마다 재미있고 코믹한 연기를 내가 제대로 표현해야 했다. 감독님도 그걸 원하셨던 것 같고. 다소 부담이 됐다. 의도대로라면 굉장히 웃겨야 하는데 솔직히 내가 코믹연기에 대한 재능이 많지 않다. 그래서 코믹한 요소들을 가늘고 넓게 펴보자고 생각했다. 나중에 이성민, 김의성 선배, 배성우씨 등이 캐스팅되면서 내가 생각했던 캐릭터 설정에 확신을 가지게 됐다.”



-처음에는 신하균이 맡은 에이스 역할로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고 들었다.

“아니다. 제작사 쪽에선 익호를 하든 에이스를 하든 내 의견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꼭 함께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감독님과 제작사 대표는 내가 당연히 에이스를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에이스와 익호의 캐릭터 비중은 비슷하지만 에이스가 육체적으로 고생이 덜하니까. 사실 비슷한 분량의 캐릭터라면 쉬운 캐릭터를 고르는 게 당연하다. 사실 내 나이도 있고 에이스 역할이 좀 더 카리스마 있게 보이긴 했다. 그런데 내가 최익호를 하겠다고 말하니까 다들 의외라는 표정으로, 난도가 높은 편인데 괜찮겠냐고 묻더라. 내가 몸을 쓰는 마지막 액션영화라고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예전에 제대로 된 액션영화를 찍어 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 점에서 한을 풀었겠다.

“글쎄. 여성분들은 어떤 액션이든 똑같다고 생각하겠지만 남자들에게 제대로 된 액션이라고 한다면, 하드하고 다크한 분위기의 액션이 진정한 액션영화라고 생각한다. ‘빅매치’는 코믹한 부분이 많은 영화이다 보니 정통액션이라 하기엔 좀 그렇다. 하지만 연기적으로는 훨씬 더 까다롭고 힘들었다. 액션에 웃음까지 보태야 했으니까.”



-아크로바틱을 보듯 고난도 액션을 보여줬다. 준비과정은 어땠나.

“얼추 따져보니까 촬영을 위해 8개월을 준비했더라. 워낙 준비해야 할 분량이 많고 CG도 많이 들어가는 터라 준비하는 시간이 길었다. 일단 몸을 만들기 위해 무조건 하루에 대여섯 끼를 먹었다. 오전에는 개인운동으로 근육을 키우고 오후에는 네 시간 정도 격투기 훈련을 했다.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액션장면들을 위해 무술팀과 매일 합도 맞췄다. 그런데 운동량이 많아서인지 생각만큼 근육이 잘 붙지 않았다. 욕심 같아선 몸을 더 불렸으면 했는데.”



-최익호의 액션 스타일을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유려하게 잘 짜인 액션보다도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진짜 힘을 쓰는 듯한, 스포츠맨의 느낌을 주는 액션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익호만의 세리머니 같은 파이터로서의 특징적인 동작으로 개성을 살리고자 했다.”



-경찰서에서 탈출하는 초반 장면부터 인상적이었다.

“그 시퀀스가 아무래도 영화 초반에 나오는 액션이다 보니 ‘빅매치’의 성격과 분위기를 정확하고 확실하게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스태프와 호흡을 맞추는 데 좀 더 시간을 할애하고 공도 더 많이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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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상도 당했다.

“연습 도중에 어깨 인대가 끊어졌다. 사실은 좀 어렵고 하드하고 터프한 동작도 서슴없이 잘해야만 액션신이 조금 더 멋있게 보이는 건 사실인데 어깨가 아프다 보니까 주저주저하면서 찍지는 않을까 하는 게 걱정이었다. 다행히도 통증이 심한 건 아니어서 주저하면서 하지는 않았다. 현장에서는 그래도 할 만큼은 꽤 열심히 했다.”



-개성파 배우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전체적인 팀워크가 무척 좋았다. 특히 신하균씨는 언젠가는 꼭 같이 해보고 싶었던 배우라 무척 좋았다. 다만, 역할의 특성상 실제로 만나서 호흡을 맞추는 신이 많지 않아 그게 제일 아쉬웠다. 5개월 촬영하면서도 촬영장에서 만난 건 고작 3일에 불과했다. 기회가 된다면 신하균씨와는 다시 한번 작품을 해보고 싶다. 이성민 선배님은 드라마랑 스케줄이 겹쳐서 촬영하는 동안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텐데도 현장에 오면 곧바로 형으로 변신을 하더라. 항상 먼저 잘 챙겨줘서 감사했다. 보아도 기대만큼 굉장히 잘했고 호흡도 잘 맞았다.”



-어찌 보면 터무니없고 황당한 시나리오다. 어떤 매력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했나.

“영화는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르다. SF, 멜로, 판타지, 역사물 등이 있다면 ‘빅매치’처럼 황당한 오락영화도 있다. 특별한 장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재미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시나리오를 보고 이게 말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그래서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넘어가면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빅매치’는 시나리오부터 새로웠다. 굉장히 오락적인 영화가 나올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최호 감독님의 전작들을 보면 그분이 오락성이 짙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니었다. ‘고고70’이 한 시대를 대변하는 음악영화였다면, ‘사생결단’은 굉장히 하드한 범죄영화, 또 ‘후아유’는 멜로영화였다. 말이 되는 영화만 주로 만들던 분이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영화를 만들 때에는 나름대로 어떤 계산이나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런 믿음이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숨 가쁘게 달려간다. 특히 힘들었던 장면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초반 경찰서 장면이겠지. 내가 가진 에너지 100%를 초반부터 다 소진시킬 만큼 액션을 너무 하드하게 찍어서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됐다. 그 장면만 2주에 걸쳐 촬영했는데 나중에는 몸이 무거워서 잘 움직여지지도 않더라. 아무튼 꽤 힘들게 찍었다.”



-국내 액션영화에선 처음으로 모션캡처를 사용했다. 그 작업은 어땠나.

“흥미롭긴 했다. 모션캡처는 여러 동작을 찍은 소스를 활용해 합성을 하는 작업인데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다. 할리우드에서는 자주 사용하는 기술이라고 하니 앞으로 이런 작업이 국내에서도 많아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블루 스크린 촬영도 많았는데 이것도 신기했다. 상암경기장 신에서는 대략 100명의 엑스트라로 4~5만명이 운집해 있는 장면을 완벽하게 담아냈다. 국내 기술력이 확실히 높아졌음을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느끼게 됐다.”



-액션영화는 이제 마지막이 아닐까라는 말을 했는데 또 찍을 용의가 있나.

“재미가 있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 사실 요즘 액션영화들이 많다. 남자들 위주의 시나리오가 많은 게 이유이겠고, 제작비가 상승하다 보니 확실한 볼거리를 보여줄 수 있는 액션장르가 많이 만들어진다. 그 때문에 내가 액션을 너무 힘들게 찍어서 이제 안 하겠다고 얘기할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차기작도 액션장르인 ‘암살’을 촬영 중이다.”(웃음)



-아닌 게 아니라 최근 출연작 대부분이 남성 위주의 영화들이다. 멜로영화에서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관객도 많을 텐데.

“앞서 비슷하게 언급했는데 멜로영화 시나리오가 없다. 나에게만 안 들어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예전보다 줄어든 건 사실이다. 올해 개봉한 멜로영화도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 흥행성적도 좋지 않았다. 멜로도 웃기는 것만큼 어렵다는 방증이다. 그래도 액션영화는 비주얼적인 볼거리라도 있지만 멜로는 오로지 이야기와 배우의 연기력만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그러다 보니 좀 꺼리는 장르가 된 것 같다. 내가 멜로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유다.”



-벌써 데뷔한 지 20년이 넘었다. 감회가 새롭겠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런 질문을 받으면 되게 쑥스러웠다. 그런데 어제 ‘빅매치’의 VIP 시사회가 끝나고 지인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나이 듦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나이로 세대 간을 나누는 것 같다. 나이와 세대가 무슨 상관인가. 생각하는 게 비슷하면 그게 같은 세대이고 친구인 거지. 그래서 이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젊은 사람들과도 자주 소통하고 어울리면서 내가 그동안 배우고 느꼈던 것을 알려주는 친구 같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20년차가 되면 솔직히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작업도 해보면서 혹평과 호평을 받았던 영화나 연기 등에 대한 경험치들도 쌓여있다. 앞으로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어떤 판단의 기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경험들을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연기를 업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언제인가.

“솔직히 젊었을 때는 이 인기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많았다. 갑자기 생긴 거니까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30대 중반부터 내 연기가 조금씩 명확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쉽게 전달할 수 있는지는 알게 됐다. 이후 멀티캐스팅 작품에 출연하게 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됐다. 여러 배우들이 배역을 나눠 갖다 보니 부담감은 덜한 반면 집중력은 높아졌다. 또 자기에게 할당된 시간을 잘 소화해내면 본인도 좋고 같이 하는 배우들에게도 상승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묘한 매력까지 있었다. 이제 주연, 조연, 우정출연이라는 게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작은 역할이라도 임팩트가 있다면 관객들이 열광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연기를 하다 보니 이 직업을 진정 즐기면서 하게 됐다. 그리고 본인만 노력한다면 오래할 수 있다는 점도 직업으로서 배우만이 지닌 장점이다.”



-예전에 40대 때는 스스로를 잘 관리하는 멋있는 남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번 역에서 보듯 이에 부합되게 캐릭터적, 연기적으로 의미 있는 시도를 하는 것 같다.

“배우라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은 누구라도 있을 거다. 다만 직업 특성상 몸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관리에 있어서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몸짱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내 에너지를 연기 쪽으로 충분히 쏟아부을 수 있을 만큼 내적으로 건강도 많이 신경을 써야 한다는 얘기다. 연기를 오래 하려면 그만큼 건강해야 한다. 이순재 선생님처럼 오랫동안 건강하게 연기하고 싶은 게 바람이다. 그분은 나에게 중요한 롤모델이다.”

-많은 후배들도 당신을 롤모델로 삼고 있을 텐데.

“그러길 바란다.”(웃음)


-내년 특별한 계획이 있나.

“아직 시작한 것도 없고 구상한 것도 딱히 없다. 내가 계획적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게 단점이자 장점일 수 있다. 장점이라면 편하게 사니까 별 스트레스가 없다. 물론 계획을 세우면 인생이 짜임새 있어지고, 재미도 크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살아보지 않아서 익숙지 않다. 원래 긍정적으로 쉽게 쉽게 사는 게 내 스타일이다. 그 점에선 최익호와 닮았다.” ▨사진제공=호호호비치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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