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촌동 이홍강 할머니 “갓바위서 그 양반이랑 찍은 사진 좀 주이소”

  • 최지혜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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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2-10   |  발행일 2014-12-10 제10면   |  수정 2014-12-10
20141210
지식 나눔 공동체 ‘이데아고라’를 찾아 강연을 한 이홍강 할머니가 회원들의 요청으로 애창곡인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있다.

이홍강 할머니(77·대구시 수성구 만촌동)는 매일 이른 아침이면 자신의 컨테이너 집을 나선다. 할머니가 가는 곳은 만촌동 화랑공원. 그곳에 일터가 있는 것도, 기다리는 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성실하게 화랑공원으로 가는 이유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그리워서다.


남편 잃고 쉰아홉 새인연
17년 동무처럼 동고동락
“갓바위 가 있으라”더니
작년 아흔 나이에 하늘로
이후 매일 홀로 화랑공원
낯 모르는 등산객 찍어준
할아버지와 사진 수소문


일본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3세에 한국으로 왔지만, 광복이 된 8세가 되어서야 글을 배웠다. 일본 유학파 원예 기술자였던 아버지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어머니는 노래를 잘 부르는 딸에게 성악가의 꿈을 키워줬지만, 그녀가 초등학교도 마치기 전 돌아가셨다. 배움에 대한 열망은 간절했다. 이후 친척집에 의탁한 처지라 중학교 진학은 포기해야 했다. 좌절된 진학의 꿈은 배움에 대한 갈증을 더욱 불러일으켰다. 신문 사설을 보며 스스로 한자를 익혔고, 읽을거리라면 연애소설이고, 역사소설이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20대 중반에 중매로 만난 남편과 백년가약을 맺었지만, 팍팍한 살림살이에 삶이 고되긴 마찬가지. 미운정이나마 마음 한편에 차지했던 남편과의 인연은 그녀가 쉰이 되던 해에 사별이라는 이름으로 아쉬운 마무리를 해야 했다.

생계를 위해 38세에 계란을 팔면서 시작한 노점상은 뻥튀기, 소금, 화분, 양말 판매 등으로 20년 동안 계속 됐다. 노점을 하면서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자신의 열정이 행여나 자식의 앞길에 방해가 될까 싶어 장사를 접었다.

15세에 취미로 배웠던 탁구에 재능이 있었던 할머니는 복지관에 가면 공짜로 탁구를 칠 수 있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복지관에 다녔다. 그때 그녀 나이 59세. 2천명이 넘는 곳에서도 한눈에 들어올 정도의 수려한 외모에 학식과 자상함까지 겸비한 한 할아버지를 그곳에서 만났다. 남편을 떠나 보낸 뒤 새로운 사랑은 생각조차 못했던 할머니에게 그는 때로는 탁구로, 때로는 일본어로 스승이 되어줬다. 그리고 할머니의 지난한 인생 이야기를 유려한 글 솜씨를 발휘해 회고록을 써주기도 했다.

할아버지를 만난 후에도 할머니에게 끊이지 않던 온갖 시련에 할아버지는 몸을 아끼지 않고 흑기사처럼 척척 해결해줬다. 그렇게 17년 동안 친구이자 연인으로 동고동락하던 할아버지는 ‘목욕하고 갈 테니 갓바위 가서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90세의 나이로 작년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에게는 소원이 하나 생겼다. 2012년 할아버지와 갓바위 나들이 길에서 만난 등산객이 할아버지와 같이 찍어준 사진을 구하고 싶은 것. 타고난 노래 솜씨로 <사>한국 연예예술인협회 등록된 가수이기도 한 할머니의 노래를 생전에 좋아하던 할아버지와 갓바위에 갔다가 휴식 삼아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녹음기 튼 것 같다며 아는 체를 해왔다.

“두 분 모습이 참 보기 좋아 인터넷에 올리고 싶다면서 사진을 찍어갔는데, 할아버지가 이래 돌아가실 줄 알았으면 ‘사진 좀 주이소’ 카면서 전화번호라도 적어놨을 건데…. 그 사람을 만날 수가 없다”고 아쉬움을 토하며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사연을 알려서 그 사진을 구하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의 사연은 우연한 기회에 지식·나눔 공동체 ‘이데아고라’ 대표 전상건씨(48·대구시 동구 신천동)에게 전해져 강의에 초대되기도 했다. 화랑공원에 자주 운동을 나간다는 그는 “순수하고 천진한 모습으로 정자에서 휴식을 취하는 할머니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대화를 나누던 중 할머니의 순애보를 듣게 됐다”며 “할아버지의 사진을 찾기 위해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할머니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이데아고라에서 수요일마다 열리는 독서모임에 회원들과 블로거를 초청해 할머니의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고 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친정할머니 생각에 눈물이 났다는 회원 이은영씨(여·36·영천시)는 “연세가 많으면 소녀 감성도 같이 늙어가는 줄로만 알았는데 생활 때문에 감정을 억누르고 살았을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며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뵙지 못한 미안함을 전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할머니는 “집에 갈 때가 젤 싫어요. 내 같은 노인 서너 명이라도 모여서 외롭지 않게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밤이 되면 길에서 잘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가긴 하지만. 한 사람만 더 있어도….”라고 말끝을 흐렸다.

할 수만 있다면 세상 모든 사람의 애인이 되고 싶다는 할머니는 그럼에도 행복하다고 했다.

“노인은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러나오는 마음만은 젊은 사람 못지않아요. 컨테이너 집에 살지만 할아버지가 있어 무척 행복했어요.”

할머니는 요즘 헌 책방에서 구한 일본노래 가사집과 일본 동화책을 보면서 즐겁게 일본어 공부 중이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글·사진=최지혜 시민기자 jihye79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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