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성의 북한일기 .20] 조선족 일행이 “조선놈은 도둑”이라고 말했다가 흥분한 군중에 몰매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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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1-23   |  발행일 2015-01-23 제34면   |  수정 2015-01-23
[조문성의 북한일기 .20] 조선족 일행이 “조선놈은 도둑”이라고 말했다가 흥분한 군중에 몰매를 맞았다

◆1998년 5월9일 토요일

북·중 국경에서 나진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모자를 차에 태웠다. 아들은 아직 총각이다. 큰아들(농사꾼) 집에 가서 식량을 좀 얻어가지고 선봉에 있는 집으로 가는 중이다.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에서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 도시 사람보다 식량 사정이 나은 편이다. 나라에 바쳐야 할 식량을 조금씩 숨겨두고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남한이 잘 사는 줄 알고 있다. 남한에서 쌀과 밀가루 등을 북쪽에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남한에서 온 밀가루를 배급받아 국수와 수제비를 끓여 먹었는데 “밀가루가 그렇게 희고 고우며 맛이 있었다”며 “중국의 밀가루와 비길 수 없다”고 했다. 아들도 거들었다. 남쪽은 곡창지대가 많으니 잘살 수밖에 없다는 투다. 그저 먹는 것이 전부인 이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선봉에 차를 세우면서 고깃국이나 한번 끓여 잡수라고 인민폐 50위안을 할머니 손에 쥐여드렸다. 귀한 만남이었다. 꼭 한번 나를 찾아오겠다고 한다.

◆1998년 5월10일 일요일

중국(조선족 동포) 직원들과 나들이를 갔다. 나진 앞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작은 고기잡이배 한 척을 빌렸다.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았다. 그물 다루기가 쉽지 않다. 그물을 끌어당기는 것도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모두 처음 해보는 솜씨 때문인지 잡혀 올라오는 고기는 손가락만 한 작은 고기가 대부분이다.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즉석에서 끓여 먹었다.

요즘 차를 몰고 원정을 오갈 때 들판에 주민들과 중학생이 많이 나와 농사일에 한창이다. 지금은 농사철이다. 무지개 식당 박 여사의 딸 순복이도 오늘부터 한 달 동안 농촌 지원을 간다며 이불까지 가지고 농촌으로 출발했다. 인민학교(초등) 3학년 학생도 농사일에 동원되고 있다. 우리 회사 운전수 K씨의 아들들도 마찬가지로 집을 떠났다고 한다.

‘전당 전군 전인민 농촌을 힘껏 지원하자’는 구호가 걸려 있다. ‘쌀은 곧 공산당이다’는 간판도 보인다.

어제 또 장마당에서 사고가 났다. 중국인(조선족 동포) 3명과 북조선 여성 접대원이 장마당에 갔는데 현지 아이들이 그들이 타고 간 차 안에서 주스 한 병을 훔쳤다고 한다. 주스를 훔치는 것을 목격한 접대원이 훔친 아이를 잡아 한 대 때렸는데 맞은 아이가 쓰러지자 현지인들이(상인과 주민) 차를 가로막은 채 차 유리창에 돌을 던지고 발길로 박살을 냈다 한다. 또 차 안에 있던 중국인을 끌어내려 죽도록 패주고 접대원 또한 머리채를 잡혀 죽도록 맞았다고 한다.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맞은 사람이 죽지는 않았는지 한다. 조선족 동포가 도둑질을 한 아이에게 “조선놈은 도둑이다”고 말을 한 데서 흥분한 군중에 몰매를 맞은 것이다. 몰매를 맞은 사람은 가슴에 화가 가득 차 화를 풀 길이 없는 군중에 당한 것이다. 개방을 한다고 하면서 외국인을 이 지경으로 만들면 어쩌자는 것인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외국인은 어떻게 생각을 할까. 누가 나진에 투자를 하며 나진과 교역을 하려 할까 염려스럽다.

전 연변과학기술대 건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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