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수성못을 만든 일본인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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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3-23   |  발행일 2015-03-23 제31면   |  수정 2015-03-23
[자유성] 수성못을 만든 일본인

대구 수성못은 일제강점기때 처음 조성됐다. 일본인 미즈사키 린타로가 주도적으로 나서 만든 저수지다.

수성못이 조성되기 전, 수성들 일대 농민들은 신천의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당시 대구부청(大邱府廳)에서 신천의 물을 끌어다 상수도로 이용하면서 수성들 일대는 농업용수가 부족해졌고, 이 때문에 큰 어려움에 처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이가 바로 미즈사키 린타로였다. 개척농민으로 대구에 정착한 그는 곧바로 수성못 축조를 위해 수리조합(水利組合) 설립에 나선다. 완강하게 반대하는 총독부를 설득해 사업비를 지원받고, 1924년 5월26일 수성수리조합 설립 인가서를 받아낸다. 수성못은 그해 9월27일 착공에 들어가, 1927년 4월24일 마침내 완공한다.

미즈사키 린타로는 임종 직전까지 수성못에 특별한 애착을 가졌다고 한다. 생전에는 늘 “내가 죽으면 장례는 전통조선식으로 하고, 수성못이 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고 당부했다. 1939년 12월 세상을 뜨자 그의 유언대로 수성못이 바라보이는 곳에 묻혔다. 광복 이후 “일본인 무덤을 왜 이렇게 잘 돌보느냐”고 의아해 할 때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우리에게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즈사키 린타로에 대해 배타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과거사와 그가 일본인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제는 유연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대구에서의 그의 이력은 식민 지배국과 피지배국의 경계를 넘어선 행보였다. 맹목적인 반일정서는 오히려 깊은 늪에 빠지는 악재가 될 수 있다. 올바른 역사인식이라는 대의를 놓쳐서도 안되지만, 일본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무조건 배척하는 시각도 이제는 거둘 때다. 그것이 어쩌면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우리가 풀어야할 과제인지도 모른다.

백승운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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