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처 시인 두번째 시집 ‘말뚝에…’

  •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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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4-24   |  발행일 2015-04-24 제17면   |  수정 2015-04-24
9년만에 그녀가 꺼낸 詩語는 ‘억압된 본성’
빛·숲…자연의 언어 시집 전체 관통
음악-문학 경계 넘나드는 작품 선봬
서영처 시인 두번째 시집 ‘말뚝에…’
서영처 시인 두번째 시집 ‘말뚝에…’
상실된 본성, 억압된 인간 존재를 그린 시집 ‘말뚝에 묶인 피아노’를 발표한 서영처 시인과 시집.

‘갈라져 타오르는 강바닥, 악어는 상류를 향해 비칠비칠 기어오른다 습한 동굴을 찾아 긴 꼬리 끌고 간다 전봇대 근처 사글세 동굴을 발견하고 기어든다 온 몸이 식욕이던 놈 우기의 추억을 쩌업 다시며 진흙에 턱을 묻는다 얕은 잠이 들었다 깼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묵묵부답 버티는 동굴엔 전단지 같은 햇살만 덕지덕지 붙었다 떨어진다 시간이 증발해버린 강가 악어는 먼 호수의 비린내를 되새김질한다’(‘눈물’ 일부)

서영처 시인의 신작시집 ‘말뚝에 묶인 피아노’(문학과지성)는 상실된 본성, 억압된 인간 존재에 대한 시인의 처연한 비가(悲歌)이다. 이제는 기억 속에 아련하게 남은 원시의 생명력, 고난과 외로움으로 점철된 신산한 삶에 보내는 엘레지인 것이다.

2003년 계간 문학/판에 5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한 시인은 첫 시집 ‘피아노 악어’ 이후 무려 9년 만에 이번 시집을 발표했다. 그사이 한국도서관협회 우수도서로 선정된 산문집 ‘지금은 클래식을 들을 시간’을 발표해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서 시인은 “시는 나에게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다. 여유로운 시간과 공간이 갖춰졌을 때, 저절로 스며나온다. 그동안 시를 쓰고 싶다는 욕망은 가슴 밑바닥부터 들끓었는데, 먹고사느라 차분하게 시를 쓸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는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경북대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으며, 영남대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명대 교양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작품은 해박한 음악적 지식을 바탕으로, 인문학적 사유를 변주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문학과 음악,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마른 담쟁이덩굴에 덮여 침묵은 자란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져서 창틀을 흔드는 바람, 삐걱대는 계단, 죽은 수도사들의 추억까지 우물우물 되새김질한다… … 종 줄은 침묵의 둔부에서 자라나는 고리, 잡아당기면 목젖을 열고 큰 소리로 울어 젖힌다’(‘침묵 수도원’ 일부), ‘째깍, 째깍,/ 조심해라! 밟으면 터진다, 노~란/ 발목을 날려버리는 대인 지뢰// 하늘에도 피었다/ 흰 구름 폭발하는 곳 꽃,/ 절름거린다/ 목발 짚은 봄//’(‘경고, 민들레’ 일부)

이번 시집은 ‘빛’과 ‘숲’ ‘소리’와 ‘노래’ 등 영성과 자연의 언어들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집이 경산이라 산과 가까워요. 매일 산 밑의 오솔길을 걸어서 학교까지 출근했는데,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이번 시집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서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해 소개하면서 특별히 지난여름 지인들과 다녀온 몽골 여행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예술인 등과 1주일간 몽골의 대평원을 마음껏 질주했다. 난생 처음 만난 몽골의 풍광은 그에게 놀라움 그 자체였다. 넓은 초원에 일렁이는 꽃과 풀, 코끝을 간질이던 바람, 대지의 정령들까지….

“저를 재충전시킨 여행이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쉼 없이 재잘거리던 종달새…. 몽골 여행을 다녀오고 정말 잘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할까요? 이번 시집은 물론 앞으로 더 많은 작업에 가속도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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