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강의…웃음문학 전도사 오상태 전 대구대 교수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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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22   |  발행일 2015-05-22 제36면   |  수정 2015-05-22
“고금소총, 선조 한분 한분이 엮은 국민 교양서…음담패설 치부해선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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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태 전 대구대 국문학과 교수는 ‘웃음문학’ 전도사다. 퇴직 후 8년째 대구시민을 대상으로 고금소총 등을 무료로 강의하고 있다.

笑話 작품에는 코믹함과 교훈 가득
판소리, 恨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것

매주 화요일 대구노인종합복지관서
수요일 봉덕3동 주민자치센터 강의
믹스카페에선 ‘시민문학’강좌 열어

한자 지도 연수과정 이수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서 봉사
일생 중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선물한 그림 아직도 보관

“사서삼경이란 중국 송나라 때 중국인이 골라 정한 유학 필독서입니다. 도덕성에 논의를 집중시키고 있지요. 하지만 고금소총(古今笑叢)은 근세 우리의 선조 한 분 한 분이 엮은 국민교양서입니다.”

오상태 전 대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76)는 ‘웃음문학’전도사다. 웃음문학을 통해 ‘일소일소(一笑一少, 한번 웃을 때마다 한번 젊어짐)’의 삶을 경험하고 있다.

웃음치료사나 웃음강사가 있지만 그는 한문이나 한시 등 고전문학 속에서 소위 ‘웃기는 이야기(笑話)’들을 찾아내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고 그 웃음이 천박하거나 상스럽지는 않다.

“소화(笑話) 작품에는 선조들의 삶과 예지가 담겨 있어 역사적, 도덕적, 예술적인 진실을 굴절 없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코믹함과 교훈이 있지요. 하지만 사서삼경과 경사자집은 향교나 학교에서 강의와 연구가 계속되는 반면, 정작 우리 조상이 쓴 고금소총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찬밥신세입니다. 조상들이 남긴 재미있고 유익한 문학을 한갓 음담패설로 치부해버리던 것을 다시 살려 동양학 공부에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오 박사는 국문학을 전공할 때부터 고전문학 속 ‘웃음의 미학’에 빠졌다.

그는 대구대 약학과에 입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6개월 후 국문학과로 옮겼다. 시인으로 데뷔해 문인협회 회원이 됐지만 ‘골계(滑稽, 웃음을 자아냄)’를 접하고부터 ‘골계문학’에 심취하게 됐다.

“골계에 대한 용어를 처음 문학적 관습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사마천입니다. 그는 사기열전에 ‘골계열전’항목을 따로 두었습니다. 골계는 말이 빠르고, 지계가 많아 그른 말도 옳은 듯, 옳은 말도 그른 듯해 다르고 같은 것을 혼란시킵니다. 고금소총에 수록된 성담론은 주인공이 대부분 사대부입니다. 부부, 과부, 주인과 종, 소금장수, 벼슬아치도 등장합니다. 성에 대한 관심은 상층민이나 하층민 구분이 없습니다.”

그는 70년대 초 석사논문을 ‘한국문학에서의 풍자’로 했다. 또 80년대 초 ‘연암 박지원의 한문소설의 풍자성’로 영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대 초 대구대 재임 시절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에서 교환교수를 하다 ‘세타이어(Satire·풍자문학)’가 교양강좌 과목으로 개설돼 있는 것을 보고 귀국 후 ‘한국문학의 풍자와 해학’ 커리큘럼을 만들었지요. 강의실이 늘 만석이었습니다.”

그는 웃음에도 주관적 웃음과 객관적 웃음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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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태 전 대구대 국문학과 교수가 중구 북성로 믹스카페 앞에서 ‘커피향과 함께하는 북성로 시민문학’강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웃음이라도 다 같은 웃음이 아닙니다. 객관적 웃음이 있고, 주관적 웃음이 있지요. 전자는 누구든지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모자를 삐딱하게 쓴 것을 본다거나 길을 가다 넘어지는 것을 보며 웃는 것입니다. 후자는 작가가 우습게 만드는 것입니다. 풍자 즉 세타이어엔 인간의 속물성과 사회악을 개선하려는 의도가 있지요. 해학은 동정심이나 눈물을 동반하고, 기지란 뜻으로 이해되는 위트는 낱말의 조합에서 빚어지는 형식적인 웃음이에요. 웃음의 상대적 의미는 숭고함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리고 있는데 웃음이 나오겠습니까. 영국인은 유머, 프랑스인은 위트가 강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판소리에 ‘골계’가 많습니다. 한(恨)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것이지요.”

오 박사는 올해로 대학을 퇴직한 지 12년째다. 하지만 퇴직 후의 삶이 더 분주하고 보람 있다고 말한다.

오 박사는 매주 화요일 오전 10~12시 대구시노인종합복지관(대구시 수성구 청수로 35길47)에서 8년째 고금소총을 비롯한 웃음문학을 무료로 강의하고 있다.

또 수요일에는 대구시 남구 봉덕3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오전 11시~ 12시30분 무료강좌(cafe.daum.net/o-baksa)를 하고 있다. 2008년 앞산 고산골관리사무소 파고라에서 하던 강의를 장소만 옮겨 지속하고 있다.

올해 2월부터는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믹스카페(대구시 중구 북성로)에서 ‘커피향과 함께하는 북성로 시민문학’강좌를 열고 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 일어 등 인문학 강좌보다 제 강의가 인기가 있는 모양이에요. 조상의 슬기와 지혜가 담겨있는 고전문학을 다들 좋아합니다. 노인에게 무조건 암기하라고 하면 안돼요. 옛날엔 수십 번 읽어 그 뜻을 이해하고자 했다면 요즘엔 먼저 이해를 하고 암기를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얼마 전 스승의 날에는 선물도 받았어요. 하하하.”

그는 퇴직하기 전에 시민문화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며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도 해봤고,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 학생들도 지도해 봤지만 초등학교나 유치원 어린이를 가르쳐보고 싶은 마음에 한자 지도 연수과정을 이수하고 대구시가 하는 큰나무교육강사 자격을 따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3년간 봉사를 하기도 했다.

“서너 살 되는 아이들하고 노는데 땀을 뻘뻘 흘렸지요. 그런데 다섯 살쯤 되면 말귀를 알아듣습니다. 아이들이 저에게 선물한 감사의 그림을 아직까지 파일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일생 중 가장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그는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당시 남구 봉덕3동 주민자치위원장을 맡아 김현철 전 남구의회 의장과 함께 대회가 끝날 때까지 아프리카선수단을 뒷바라지하기도 했다.

“봉사를 하려면 건강이 허락돼야 합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3년 전부터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고 걸어다닙니다. 늘 풍류와 여유를 잃지 않고 미소를 자주 지으려고 노력하지요. 또 고전음악을 자주 듣습니다. 내용을 잘 몰라도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는 최근 주역을 다시 공부하며 삶을 살아가는 데 금과옥조로 삼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게 아니라 겨울이 도와주어 봄이 오는 겁니다. 사람들은 일출에 환호하지만 일몰은 또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주역은 변화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자꾸 하는 건 자신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고 실존철학에서 말하지 않습니까. 변화와 혁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이 있지요. 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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