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시리즈 통·나·무] 대구 10호 아너소사이어티 김장덕 (주)빙고 대표

  • 최미애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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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23   |  발행일 2015-05-23 제5면   |  수정 2015-05-23
직원 7명뿐인 작은 업체 사장…청소년 사랑만큼은 ‘거인’

1970년대 후반 대구 동부정류장. 어린 티를 못 벗은 열아홉 살 소년이 경주에서 온 버스에서 내렸다. 그에게 대구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친구들과 달성공원에 놀러간 것이 대구에 대한 첫 기억이다. 버스에서 내린 그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직업 안내소. 그는 안내소 직원에게 “월급은 상관 없고 어떤 일이든 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첫 직장으로 일하게 된 곳은 중구 태평로의 한 얼음공장이다. 2년간 기술도 배우고 관련 자격증도 따면서 밤낮없이 일을 했다. 이후 병역의 의무를 1년2개월간 이행한 후 냉동기 관리업무를 6~7년간 하다가 독립해 냉동설비업체를 차렸다. 대구에 온 지 30여년 만에 그는 부지런히 모아온 돈 중 1억원을 대구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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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아너소사이어티 10호 회원인 김장덕 <주>빙고 대표. 김 대표는 “우리 사회가 소외된 사람이 없어져 공동체가 한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는 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라고 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대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0호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 회원 김장덕 <주>빙고 대표(56)의 이야기다. 그는 2013년 5월22일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하면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다.


형편 어려워 가족생계 책임
3만원 들고 무작정 대구행
첫 직장에서 밤낮없이 일해
냉동설비업체 독립 꿈 이뤄

바쁜 와중에도 늘 이웃 생각
15년째 라이온스클럽 활동…
환경 탓 비행소년 전락 보며
아이들 돕기 위한 기부 결심


대구에 기부를 하긴 했지만 김 대표는 대구 출신이 아니다. 그는 1960년 경주 내남면 비지리에서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탓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농사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러다 열아홉 살 되던 해 그는 무작정 3만원을 들고 대구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지금 돈으로 30만원 정도였다. 이후 주인이 숙식을 다 해결해 준다던 얼음공장에서 2년 일하고, 도축장에서 6~7년 냉동관리업무를 한 끝에 독립해 냉동설비업체인 <주>빙고 플랜트(지금의 주식회사 빙고)를 세웠다.

처음에는 4년 정도 임차해 살다가 공터를 사서 지어 독립했다. 독립의 기쁨 때문일까. 김 대표는 밤도 없이 낮도 없이 일에 전념했다. 김 대표는 그때를 떠올리며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안 하고 정말 정신 없이 일해왔던 것 같다”며 웃었다.

바쁜 와중에 그는 기부와 봉사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가입한 지 15년째인 라이온스 클럽 활동을 하면서 봉사활동을 여러 차례 했고, 2013년 5월부터는 대구의 한 학교에 연 500만원의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그가 1억원 기부를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2005년부터 시작한 청소년 선도위원회 활동이 있었다. 이 활동을 하면서 만난 어려운 가정의 자녀들이 비행 청소년이 되기 쉬운 조건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김 대표는 “학생인 데도 공부가 아닌 범죄를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사회공동체는 자기 아이만 잘 키우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잘 되어야 한다”며 “가정 환경이 어려운 아이들도 모두 같은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어려운 형편의 청소년을 돕기 위한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신문에 나온 아너소사이어티 관련 기사를 보게 됐고,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화를 걸어 기부 의사를 밝혔다고.

그의 기부에 자극 받아 대구에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도 있다. 16호 회원인 정태일 한국 OSG 회장이다. 2013년 김 대표로부터 1억원을 기부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같은해 겨울 1억원을 기부하기로 결심한 것.

김 대표는 회사에서 나온 이익을 직원들과 나누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그의 회사는 총 7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소규모지만 이익금도 직원들에게 분배한다. 김 대표가 몇년 전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으면서 대학 중퇴 후 회사에서 같이 일해온 조카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그는 “언젠가는 대표이사직을 승계하는 게 맞다고 봤고, 내 자식이 아닌 조카지만 회사 일도 잘하고 주인의식도 강하기 때문에 회사를 물려줬다”며 “회사에서 창출된 이윤에 대해선 직원들이 노력한 만큼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그의 경영철학을 이야기했다.

김 대표는 자식에게 유산을 남기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이었다. 유산은 사회로 환원하는 것이 맞고, 주변에 자식에게 회사나 재산을 물려줘서 오히려 실패한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는 것. 대신 김 대표는 자녀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했다. 그는 “사업을 해도 나 한사람이 잘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 조언을 해줘야 되지 않겠느냐”며 “어떤 사람이 성장하려면 능력도 있지만, 그 과정에 여러사람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를 통해 기부 문화가 확산됐으면 했다. 우리 사회가 소외된 사람이 없어져 공동체가 한목소리를 냈으면 하는 바람도 내비쳤다. 김 대표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도 있지만, 기부 사실을 알릴 필요도 있다. 기부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만큼, 기사를 보고 기부를 하겠다는 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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