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論語’속의 미래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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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01 08:14  |  수정 2016-02-01 08:14  |  발행일 2016-02-01 제17면

노동의 종말이 현실화되는 미래사회에서 교육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교육이 더 이상 노동력의 생산에 봉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아이들을 교육해야 할까.

동양의 고전 속에는 미래교육의 설계와 관련하여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경전이 적지 않다. 그것은 대부분의 동양 고전이 다루고 있는 것이 노동력의 생산이 아니라 ‘수행(修行)과 낙도(樂道)’로서의 공부이기 때문이다. 즉 미래 사회에서의 교육은 노동력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직업교육에서 수행과 낙도교육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이는 사실 변화가 아니라 교육이 자신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 것이다.

‘논어’는 유학의 가장 중요한 고전이다. 비교하자면 ‘성경’의 4복음서와 같다. ‘논어’는 공자와 그 제자 사이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책과 같이 체계적이고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그 대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읽는 재미가 적지 않다.

미래 교육과 관련하여 ‘논어’에서 가장 중요한 세 구절을 뽑는다면 먼저 공자가 자신의 수행에서 궁극적인 목표로 제시한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와 ‘절사론(絶四論)’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수제자 안회에게 말해 준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이 있다. 이 세 가지가 수행과 낙도로서의 미래교육과 관련하여 논어에서 추출할 수 있는 핵심적인 구절이다.

주지하다시피 종심소욕불유구란 공자가 자신이 70세가 되어 도달했다고 말한 경지다. 여기서 구(矩)란 그가 나이 50세에 알게 되었다는 천명(天命)을 말한다. 내 마음이 욕망하는 대로 살아도 천명에 어긋나지 않는 삶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이는 분명히 현대 문명이 추구하는 ‘욕망추구의 자유’가 아니라 그 반대로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절사론에서 공자는 의도하고(意), 기필하고(必), 고집하고(固), 나라는 생각(我)을 끊었다고 하였다.

이 구절에서 앞의 세 가지와 마지막의 ‘나라는 생각’은 범주가 다르다. 의도하고 기필하고 고집하는 마음이 곧 ‘나’라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곧 ‘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공자는 수제자인 안회에게 ‘자기를 이겨 예(禮)로 돌아가면 인(仁)이 된다’고 가르쳤다. 여기서 예란 주자(朱子)가 잘 설명했듯이 천리(天理)의 절문(節文) 즉 하늘의 이치, 곧 자연의 질서를 말한다. ‘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곧 자연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매년 겨울이면 찾아오는 천수만의 가창오리는 아침과 저녁에 한 차례씩 군무를 한다. 수천, 수만 마리가 한꺼번에 하늘을 뒤덮으면서 날아올라도 서로 부딪히는 가창오리는 한 마리도 없다. 그 까닭은 가창오리에게는 ‘나’라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분리 독립된 개체로서의 ‘나’라는 생각을 벗어나면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때서야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의 존재가 될 수 있다.

분리 독립된 개체, 즉 에고(ego)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엔소니 드 멜로 신부는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라는 책에서 에고의 사랑을 ‘사랑으로 변장한 감정이 거래되는 장터 풍경’이라고 했다. 에고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고 굶주림이다. ‘너 없이는 못산다’고 말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고 굶주림의 아우성일 뿐이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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