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너지어스 퍼실리테이션 그룹 문재웅 대표이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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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05   |  발행일 2016-02-05 제37면   |  수정 2016-02-05
“대구시민원탁회의 실무 역할…소통할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게 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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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공자 같은 인상과 달리 학창시절 생계를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고 그로 인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한 문재웅 대표. 그는 소통을 위한 비즈니스를 기획하지만 소통보다 참여와 반영이란 말을 더 중시한다. 시너지어스 퍼실리테이션 그룹은 살맛나는 직장을 위해 누구나 회의를 소집할 수 있고 기본급도 모두 동일하다.

“죽지못해 한다”는 선배들의 직장談 절망
돈보다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것 궁리

방우정씨 강연 들으러 간 게 새 출발점
공대생서 행사MC 변신…소통법 고민
5년 前 지방 최초 ‘소통 사업화’ 성공

낯선 사업에 처음 사이비단체 오해도
토론 참여·반영 통한 시너지창출 설계
직원들 주인의식 갖게 됐단 말에 보람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소통’을 사업화하는 젊은 CEO가 있다고 해서 지난 월요일 재미있게 만나고 돌아왔다. 새로운 대지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은 늘 독특한 설렘을 발산시킨다.

5년차 사회적기업 <주>시너지어스(Synergious) 퍼실리테이션 그룹 대표이사 문재웅씨(30). 영화배우 못지않은 이목구비를 가진 그의 첫인상은 무척 겸손하고 자상했으며 쑥스러움까지 감지됐다. ‘외유내강’, 그게 소통의 기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칭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다.

시너지어스와 퍼실리테이터, 둘 다 우리에겐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영어 사전에도 없는 시너지어스란 단어는 문 대표가 생각해낸 ‘시너지를 창출하는’이란 의미의 신조어. 퍼실리테이터란 ‘촉진자’란 뜻인데 어떤 회의에 조력자로 참여해 이해 당사자간 이견을 조정해 공동의 목표로 효율적으로 진입할 수 있게 조직에 활성에너지를 주는 ‘경영심리상담 전문가’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대구시 중구 북성로 뒷골목, ‘이런 곳에 어떻게 사무실을 낼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대구역전 눅눅한 언저리에 과감하게 사무실을 냈다. 사무실 한 쪽 벽에 문 대표의 지인이 선물한 스티브 잡스의 흑백 초상화가 강렬한 인상을 내뿜으며 걸려 있다. 어지럽게 놓여있는 화이트보드에 브레인스토밍 관련 개념어 포스트잇이 나뭇잎처럼 달려 있다. 블루오션을 겨냥한 신생업체답다. 현재 문 대표를 비롯한 5명이 회사를 움직인다. 이 회사는 권영진 대구시장이 론칭한 시민원탁회의의 시민스태프 겸 퍼실리테이터로도 활약했다.

그는 소통이란 말보다 ‘참여와 반영’이란 단어를 더 중시한다. 자기 의견이 반영되어야 어떤 일에 참여하는데, 그는 그것이 전제되어야 진정한 소통이라 믿는다.

“‘우리 모두를 합친 것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는 핵심 메시지를 세상에 확산시키고자 합니다. 끊임없이 조직 내에서 수평·자율·창의성을 추구합니다.”

이 회사 내규는 지극히 자유분방하다. 출퇴근은 자율이다. 휴가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기본급도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데 이 또한 ‘우리 모두 일을 잘하고 싶어 한다’는 상호신뢰에서 비롯됐다. 사내에서는 이름 대신 닉네임을 부른다. 누구나 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 토론하고 이견충돌을 미덕으로 안다. 함께 참여하고 함께 결정한다. 당연히 그렇겠지. 소통을 사업 아이템으로 가진 회사이니.

▶경남 진주 출신인 문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어린시절부터 까불고 소위 말하는, 나대는 걸 참 좋아하고 잘했죠. 반장, 응원단장, 주장 등을 빠짐없이 했을 정도로 제가 드러나는 것에 대해 전혀 두려움이 없었고 늘 즐겼던 것 같습니다. 특히 태권도로 특기생까지 됐는데 나중엔 진주시 태권도 대표 주장까지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뭔가 반전 드라마가 있었을 것 같다.

“대구로 전학왔는데 또래들과 소통이 참 안되더군요. 지역 정서 탓인 것 같았습니다. 그때 지금 회사에서 경영·회계·세무 파트 담당 이사인 곽관경이라는 친구를 만나 정말 재밌는 일을 많이 꾸몄어요. 수업시간 때 사이비종교를 콘셉트로 수업을 아예 개그공연처럼 만들어 버린 기억도 납니다.”

▶대학시절이 궁금하다.

“영남대 화학공학과를 가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냥 남자는 으레 공대 가는 거라면서 큰 고민없이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적성에 참 안 맞았습니다. 고민과 갈등의 연속이었어요. 속으론 ‘그래, 어차피 대학 졸업하고 취업해서 먹고 살 걱정하면 공대 졸업해서 얼른 직장 구하는 게 낫겠지’라면서 버텼어요. 그러다 20대 초중반에 겪은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학 선배한테 실망하고 돈 때문에 엄청 고생을 합니다.”

▶이렇게 말쑥한 얼굴인데 돈 때문에 고생을 했다니.

“어린시절부터 집안 형편이 안 좋았어요. 대학 때부터 모든 생활비는 스스로 벌어 쓰고, 학비도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마련했습니다. 아르바이트며 막노동부터 안 해본 일이 없었을 정도인데, ‘내 통장에 돈 200만원 정도만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를 자주 독백했어요. 정신없이 아르바이트 여러 개를 하다보니 진짜로 통장에 200만원이 넘는 돈이 모여 있더라고요.”

▶뭔가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겠다.

“돈만 있으면 정말 행복할 줄 알았는데 참 공허하고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행복해지려고 돈을 버는 건 아니구나.”

▶대학 선배한테 어떤 절망감을 받았나.

“제가 믿고 따랐던 선배들이 취업 1년 뒤 다시 만났을 때 다들 ‘사는 게 재미가 없다. 그냥 일하는 기계 같다’고 말했어요. 그 선배들이 생각과 달리 다들 죽지 못해 직장생활을 하고 있더군요. 제 롤모델들이 깨지는 모습을 본 거예요.”

▶대안을 찾았는가.

“어느새 저는 행사 MC·레크리에이션 강사가 돼 있었습니다. 경북대 북문에 위치한 카페에 유명한 MC인 방우정씨의 강연을 들으러 간 게 완벽한 시발점이 됩니다. 그날 그 강연을 운영한 단체가 ‘강연기업’이라는 형태로 사업을 하는 대학생 기업이더라고요. 어차피 주체적으로 살기로 생각한 이상 이 세상에 없던 형태의 조직을 스스로 새롭게 만들어야만 했죠. 그때는 시대적 키워드가 ‘소통’이었어요. 일방적인 교육이나 훈련이 아닌 소통을 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무지개’라는 소통을 통한 행복을 전해주고 싶은 ‘무지개장수’(시너지어스의 전신)라는 조직이 탄생합니다.”

▶첫술에 배가 부를까.

“처음에는 진짜 사무실도 없는 ‘유랑회사’였지만 처음부터 정체성을 분명히 했습니다. 일단 ‘이야기에 스미다’라는 소통프로그램을 무료로 열었습니다. 대학생 혹은 일반인 참가자를 10명 정도 모아 소통 워크숍을 열었어요. 그렇게 꾸준히 여섯 기수를 열었죠. 1년 지나 반지하 원룸을 구했습니다. 참가비를 1만~2만원씩 받아 겨우 사무실은 유지했지만 여전히 수익은 없었습니다. 기업이 돈을 못 버니 말이 기업이지….”

▶소통사업을 한다고 하니 주위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스피치 학원, 심리상담사, 명상단체, 사이비단체, 다단계회사 등의 오해를 받았습니다. 이해가 갑니다. 소통이란 좀 낯선 아이템으로 사업을 했으니.”

▶제대로된 첫 고객은 언제 찾아왔나.

“‘우리 조직의 소통을 활성화시켜주세요’ 같은 워크숍을 하기 위해 맨땅에서 2년 정도 헤딩하다 보니 결국 기회가 오더군요. 영남대 신문방송사 학생기자단의 소통활성화 워크숍 주문이었습니다. 조금의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사무실도 반지하 투룸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소통의 철학과 방법론을 녹여낸 교육워크숍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었고 이런 콘텐츠를 청소년·대학생용으로 활발히 전개하게 됩니다. 그런 성과들이 모여 개인사업자에서 주식회사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소통을 주제로 사업을 한다니 참 애매모호하다.

“처음엔 저희도 매우 고민했고 몇 년을 답답해했습니다. 모르긴 해도 예전에는 대표, 사장 등이 의사소통을 독점했지만 지금은 그러면 다 망하죠. 다른 파트의 이견을 경청하려고 하는 CEO가 많아지고 있어요. 자연히 우리 같은 기업이 할 일이 많아지죠. 보스보다는 리더, 리더보다는 촉진자(Facilitator)를 원하는 시대입니다.”

▶외국에도 비슷한 소통 비즈니스 사례가 있는가.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이라는 소통 기법이 있는데 1950년 대 영국에서부터 활발하게 연구·시행되고 있습니다. GE의 전설적인 회장 잭 웰치는 ‘퍼실리테이션이 아니면 회의를 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했어요. 소통 전문 컨설팅 업체들이 외국엔 많지만 아직 국내엔 소수로 존재합니다. 저희 같은 업체가 대구에는 유일하고 전국에도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소통이란 뭔가.

“2010년대부터 정말 소통이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많이 쓰였는데, 정작 소통이 무엇이고 그에 대한 방법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 소통이라는 말은 참여가 실현되고 각자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입니다. 약자의 목소리가 반영되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이죠. 그래서 소수와 약자의 목소리를 지원하는 기술인 퍼실리테이션이 필요하죠. 퍼실리테이션은 ‘모든 의견은 동등하게 귀중하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퍼실리테이션은 강자의 의견과 약자의 의견에서 중립을 지킵니다. 자칫 다수와 강자의 목소리에 묻힐 수 있는 소수와 약자의 목소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진지하게 검토함으로써 참여의 욕구를 충족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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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준비를 어떻게 하는지 구체적 사례를 들어달라.

“대구시 정신건강사업 실무자 100인 원탁회의를 예로 들어 설명해볼게요. 우선 주최측이 저희에게 일을 의뢰하면 관계자 인터뷰부터 들어갑니다. 일이 끝날 때까지 짧게는 2주일, 길게는 3개월간 뒷작업이 필요합니다. 인터뷰 다음에는 주최측이 원하는 여러가지 내용과 도출하고자 하는 정확한 결과물, 그리고 어젠다에 대해 주최측이 인식하고 있는 내용을 파악해 소통을 위한 기본 방향을 잡습니다. 이어 토론 참가자를 분류하고 분석합니다. 그들이 어젠다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생각을 갖는지 또 인터뷰를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상황에 맞는 디테일한 수단을 설계하죠. 디데이 업무는 전체 업무의 30%이고 나머지는 준비작업입니다. 저는 퍼실리테이터를 관장하는 메인 퍼실리테이터로 참여합니다.”

▶굳이 안 해도 되는 워크숍도 주문을 받는가.

“우리는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이미 결론을 전제로 한 짜맞추기식 용역은 회사 이미지상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사절합니다. 일단 주최 측이 진정으로 회의 참석자의 속생각을 듣고 싶은지 회사 발전에 대한 아이디어를 갈구하고 있는지부터 먼저 파악합니다. 주최측 책임자로부터 회의 내용을 경청하고 그걸 업무에 반영하겠다는 동의를 얻어냅니다. 저희는 회의 과정에 모든 사람이 갑과 갑의 관계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거죠.”

▶가장 큰 보람은.

“그동안 대구시민원탁회의, 합천로컬푸드워크숍, 소셜픽션콘퍼런스 등 여러 회의를 주관했는데 저희들 때문에 소통이 더 잘되었고 더 많은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었으며 직원이 주인의식을 갖게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요즘 많이 창업되는 사회적기업의 문제점은 뭐라고 보는가.

“지원받는 기업이라고 보면 안됩니다. 사회적기업은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야 합니다. 비즈니스와 사회적가치 둘 중 그 어느 하나도 놓쳐서는 안됩니다. 많은 선배님의 조언처럼 우선 저희는 정부지원을 받을 생각은 최대한 안했습니다. 기업으로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비즈니스는 못하고 지원금만 받는 식물기업은 결코 하고 싶지 않았죠. 지원금 받을 재주도 솔직히 없었습니다. 저희들도 대구시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막 받은 상태입니다.”

▶대구의 대표적 불통영역은.

“제 스스로가 청년이다 보니 청년과 관련된 영역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일자리 문제의 경우 취업준비생과 대구기업의 소통이 부족하다고 느껴집니다. 구직자는 대구쪽은 취업할 만한 기업이 없다 하고 기업은 일할 청년이 없다고 하는 미스매치가 다른 지역보다 더 뼈아프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구 청년 순유출이 워낙 심각한데 이는 구직활동에 기인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사업이 잘되면 어떤 블루오션을 더 개척하고 싶은가.

“IT기술을 이용한 O2O(Online to Offline) 시장이 아주 강력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저희는 계속 오프라인에서 인적 인프라를 구축해나가고 있는데 이를 온라인적 요소로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소통 관련 플랫폼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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