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멈춤과 바라봄의 도(道)-주역의 마음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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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16 07:45  |  수정 2016-05-16 07:45  |  발행일 2016-05-16 제17면

내 마음속에 조건화된 것들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할 때 이를 처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그 마음을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다. ‘주역’에서 지켜봄의 대표적인 괘는 ‘바라봄의 도’를 나타내는 풍지관(風地觀)괘이다. 관괘는 괘사에서 ‘관은 손을 씻고 제사를 올리지 않은 듯하니, 믿음이 있고 우러러 볼 것이다’라고 하였다. 제사를 올리지 않은 듯하다는 것은 아직 제사 중임을 말하며, 믿음이 있고 우러러 본다는 것은 제사를 지낼 때와 같이 나의 동작 하나하나에 마음을 둘 때 사람들로부터 믿음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깨어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이 관괘의 뜻이다.

바라봄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뇌지예(雷地豫)괘와 풍화가인(風火家人)괘이다. 기미의 도를 나타내는 예(豫)괘의 괘사에는 ‘예는 제후를 세우고 군사를 행함이 이롭다’라고 하였다. 즉 전쟁의 승리는 기미를 살펴 미리 준비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기미란 우리 마음의 미발(未發)과 이발(已發)의 경계를 말한다. 미발일 때는 아직 알 수 없고, 이발일 때에는 이미 늦다. 그래서 기미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가인괘에서 가(家)란 우리의 내면을 가리킨다. 그리고 인(人)이란 감정과 생각을 말한다. 내면을 다스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허용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여성성이다. 그래서 가인괘의 괘사에서는 ‘내면의 감정을 다스림에 여성성으로 바르게 하니 이롭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을 조용히 지켜볼 때 어지럽게 난립하던 생각과 감정은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고 조용히 멈추게 된다. 중산간(重山艮)괘는 멈춤의 도를 나타낸다. 즉 괘사에서 ‘그 등에 멈추면 그 몸을 얻지 못하며, 그 뜰에 들어가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니 허물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등에 멈춘다’는 것은 오감(五感)에 의한 욕망을 등진다는 뜻이며, ‘그 몸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을 잊는 것 ‘망아(忘我)’이니 멈춤의 지극한 모습이다.

그 뜰에 들어가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밖의 사물과 접하지 않아 안의 욕망이 일어나지 않음 ‘외물불접 내욕불맹(外物不接 內欲不萌)’을 말하니 역시 멈춤의 도가 지극한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대상전에서는 이를 보완하여 ‘상에 이르기를 산이 겹쳐 있는 것이 간(艮)이니 군자가 본받아서 생각이 그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생각이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적·공간적으로 생각이 지금, 여기를 벗어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바라봄과 멈춤의 도는 현대 교육이 결여하고 있는 대표적인 것이다. 현대 교육은 오직 나아가는 방법만을 가르치고 있다. 좋은 성적과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을 향해 나아가도록 끊임없이 아이들의 욕망을 부채질하는 것, 이것이 현대 교육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 교육은 이런 나아감의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부적응자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러한 나아감의 끝은 어디일까. 자신의 무덤이 아닐까. 넓은 묘지와 아름다운 조경과 좋은 석물로 자신의 무덤을 치장하고 싶어 그렇게 열심히 나아가게 하는 것일까. 우리는 가끔씩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고 물어야 한다.

멈춤을 가르친다는 것은 생각의 흐름을 지켜보도록 한다는 뜻이다. 인도의 신비가인 메헤르 바바는 빠르게 흘러가는 마음이 병을 가져온다고 했다. 큰 비가 오기 전에 구름이 순간순간 모양을 바꾸며 빠르게 흘러간다. 예상치 못한 큰일을 당했거나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하면 마음속에는 온갖 상념들이 거칠고 빠르게 일어난다. 이럴 때 빨리 펜과 백지를 마련하여 일어나는 마음을 기록해 본다. 그러면 점차 마음의 속도가 느려진다. 천천히 흐르는 마음은 항상 건강하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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