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전 만난 大文豪 펄벅의 응원 큰 힘” 뇌병변 장애 딛고 시집 출간

  • 입력 2016-05-18   |  발행일 2016-05-18 제13면   |  수정 2016-05-18
대구시 동구 신천동 조혜자씨
여고시절 품은 문학의 꿈 이뤄
“56년전 만난 大文豪 펄벅의 응원 큰 힘” 뇌병변 장애 딛고 시집 출간
조혜자씨가 신천동 자택에서 자신의 첫 시집을 내보이며 미소 짓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조혜자씨가 1960년 10월31일 경주 불국사호텔 로비에서 펄벅 여사와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죠.”

장애를 갖고 있는 70대 여성이 시집을 출간해 화제다. 주인공은 대구시 동구 신천동에 살고 있는 조혜자씨(75). 조씨는 뇌병변 시각장애 2급으로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는 여고시절부터 품어왔던 꿈을 마침내 지난해에 이뤘다. 74세의 나이에 시집 ‘감사의 꽃’을 출간한 것.

조씨는 신명여고 재학 시절 학교 문예반 활동을 할 만큼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뜻을 펼치려 했지만 운명의 여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결혼과 육아, 급성폐렴과 교통사고 등 잇단 어려움이 닥쳐 창작활동에 대한 꿈을 접어야 했다.

교통사고 당시 두 달 넘게 의식불명 상태가 지속되면서 담당의사와 지인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저었지만그는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했다. 아마도 꼭 이루어야할 목표가 그런 기적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다시 문학을 공부하고 창작활동도 멈추지 않았다. 등단을 하면서 조씨는 신체의 불편함에 좌절하지 않고 삶을 시로 표현했고 시는 곧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사실 그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하나 있다. 시간은 1960년 가을로 거슬러 간다. 당시 신명여고 2학년이던 그는 학교 교지를 편집할 만큼 문학에 열정적이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지역 신문사 기자로부터 미국의 여류소설가 펄벅 여사가 인근 계성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펄벅 여사는 1931년 중국의 한 빈농과 하녀 출신 부인이 대지주가 되기까지의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장편소설 ‘대지’로 퓰리처상을 받고 1938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작가다. 학창시절부터 대문호인 펄벅 여사의 장편소설 ‘대지’를 읽으면서 꼭 만나보고 싶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귀를 의심하고 꿈인가 싶어 손등을 꼬집어도 보았다.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짧은 영어 회화도 준비했다. 강연이 있던 날 맨 앞자리를 사수하고 사인을 받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바쁜 일정 탓에 경주로 이동하는 펄벅 여사의 뒷모습을 바라만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평생에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명의 친구와 부모님을 설득해 대구역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펄벅 여사가 머무는 숙소인 경주 불국사호텔로 달려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 대문호에게 자신도 노벨문학상을 받고 싶다고 서툰 영어로 당당하게 밝혔다. 그 순간 펄벅 여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등을 토닥이며 “난 널 믿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 생생하다. 사인을 받고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그때의 기분을 생각하면 지금도 큰 활력소가 된다.

최근엔 소통 창구가 하나 더 생겼다. 다음카페를 통해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하루가 즐겁기만 하다. 요즘 청소년들이 연예인을 동경하고 공연을 보려고 줄을 서고 몰려다니는 것처럼 55년 전 그 시절도 예외는 아닌 듯했다. 또 다른 시집 출간을 준비 중인 그는 75세란 나이도 잊은 듯하다. 마음만큼은 오직 액자 속 하얀 칼라의 밝은 미소 여고생으로 남아있다.

글·사진=김점순 시민기자 coffee-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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