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국제적 ‘호갱님’ 된 국민 소비자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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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29   |  발행일 2016-07-29 제23면   |  수정 2016-07-29
[조정래 칼럼] 국제적 ‘호갱님’ 된 국민 소비자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요즘처럼 부끄러운 적이 없다. 국가와 정부가 나를 ‘개·돼지’ 취급을 하는 통에 새삼스럽게 나의 하찮음을 각성하게 돼서 그렇다. 지금까지 누적돼 온 하대와 무시가 곪을 대로 곪아 터져버려서 더욱 그러하다. 대한민국에 대한 ‘개·돼지들’의 염증이 삼복 염천과 열대야보다 더 짜증나고 참기 힘든 모멸감으로 진저리치게 한다. 옥시와 폴크스바겐 등 다국적기업의 횡포와 대한민국 유린이 도를 넘어도 국가가 이를 제대로 응징하기는커녕 뒷북 대응과 졸속 처리로 우왕좌왕하며 국제적 망신만 사고 있으니, 시쳇말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쪽팔리기’ 그지없다. 경제 10위의 대국이라고 마스터베이션을 해 본들 이제 그건 자위에 불과하다.

정부의 이러한 안하무인과 무능력, 그리고 행정편의주의가 성주군민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성주 사드 배치란 탁상결정으로 이어졌다. 사드 배치 예정지인 성산포대에서 반경 1.5㎞ 이내에 2만여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단 한 번만이라도 현장 방문을 했더라면 한눈에 들어오는 실상을 국방부만 못 보는가. 성주가 세계 유일의 민가 주변 사드 배치의 본보기로 낙점됐다는, 서글프고 슬픈 사드 괴담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민가 인근 사드 포대가 전무하니, 성주군민처럼 기가 막힌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런 의문과 의혹에 혹할 수도 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우리 정부가 국민을 존중할 줄 모르는데 외국이나 글로벌 기업인들 우리를 사람 대접이나 하겠는가. 우리 정부의 ‘나향욱들’은 국민을 ‘개·돼지’로 생각하고 신분제도의 고착을 주장하며 제 배만 두드리는 오렌지 족속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들은 국내에서만 큰소리쳤지 미·영 등 외국과 외국기업들의 배짱과 허세 앞에서는 찍 소리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이기도 하다. 옥시의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폴크스바겐의 ‘디젤 게이트’에 대처하는 우리 정부의 무신경과 미온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할 의지가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마침 국회 ‘가습기살균제 사건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가동됐으니 무엇보다 환경부 등 정부부처를 집중적으로 조사해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민 개무시의 본산이 우리 정부고, 그 고위 공직자들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팔아먹은 매국노의 혐의를 받고 있으니까.

대한민국의 소비자들은 국내외 안팎으로 인간 대우를 못 받는다. 폴크스바겐은 미국에는 약 17조5천억원을 배상하기로 신속하게 합의한 반면 우리에게는 배상계획조차 제시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세계 최고 강대국이고 시장도 거대하니까 겁을 먹을 수밖에 없지만, 그보다 정작 폴크스바겐이 두려워 한 것은 소비자보호제도다. 미국은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힌 기업엔 가혹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린다. 그러나 우리 정부엔 소비자 보호 개념이 있는지 의심스럽고, 법과 판결도 소비자 보호에는 인색하다. 법원에 가도 피해 입증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어 소송 자체를 제기할 엄두도 못 낸다. 그러니 폴크스바겐만 아니라 국내외 모든 기업이 소비자를 봉으로 알고 배째라고 배만 들이미는 것이다. 다국적기업들의 노골적 차별과 무시에 국민적 분노가 폭발한다.

정부의 무시와 다국적기업의 횡포에 안팎곱사등이 신세인 우리 국민들도 이제 더 이상 착하고 고분고분한 ‘호갱’에 머물 수는 없다. 해외 투자 유치와 국내 산업 보호라는 미명 아래 국내 소비자 권리 보호를 등한시해 온 정부의 친기업 정책이 다국적 기업의 횡포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를 응징할 법과 제도가 절실하다. 국회에는 이미 징벌적손해배상제를 포함한 집단소송제가 법안으로 발의돼 있다.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의 90% 이상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에 찬성했다. 소비자들의 똑똑한 소비자 정신, ‘소비자시민성(consumer-citizenship)’도 국민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정부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소비자에 대한 국제적 무시와 홀대가 소비자의식의 열등 탓이 아니라 우리 정부의 국민 하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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