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정치인의 야성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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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7   |  발행일 2016-08-27 제23면   |  수정 2016-08-27

‘야성적 충동’이란 용어의 지적 소유권은 경제학자 케인스에게 있는 셈이다. 케인스는 1936년 발간한 저서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서 인간의 비경제적 본성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을 처음 언급하면서 1930년대 대공황의 발생과 소멸을 심리적 변화로 설명했다. 미래의 불확실성과 맞닥뜨려서도 동물적 감각이나 직관(直觀)에 의해 과감한 투자 결정을 하는 기업인을 비유할 때도 흔히 야성적 충동이란 말을 끌어다 쓴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야성적 충동의 전범(典範)이 될 만한 기업인이다. 맨땅에 헤딩하듯 현대조선소 투자 유치를 성공시킨 정 회장의 일화는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조선소 건설 초기 현대는 영국 바클레이은행과 4천300만달러의 외자 도입을 협의했다. 그러나 바클레이 측은 현대의 조선 능력과 기술 수준이 부족하다며 거절했다.

1971년 9월 정주영 회장은 수소문 끝에 바클레이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인 선박 컨설턴트 회사 애플도어의 롱바텀 회장을 찾아갔다. 롱바텀 회장 역시 처음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 회장은 재빨리 지갑에서 거북선 그림이 있는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보이며 한국은 이미 500년 전에 가장 과학적인 배를 만든 나라라고 설득했다. 정 회장의 기개와 도전정신은 결국 롱바텀 회장의 마음을 움직였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반열에 오른 것도 1세대 기업인들의 야성적 충동이 그 밑거름이 됐을 터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 어디에서도 야성적 충동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대구·경북지역 정치인과 지방자치단체장의 야성이 아쉽다. 중앙정부의 부당하고 불합리한 정책 결정에도 금방 순응하는 모습이 일상화되고 있어서다.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김해공항 확장이라는 터무니없는 결론에도 지역 정치인과 단체장의 대응은 도식적(圖式的)이고 무기력했다.

하버드대 출신 ‘푸른 눈의 수행자’ 현각 스님은 ‘과도한 순응’이 한국의 혁신과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구·경북 정치인과 자치단체장들이 과도하게 순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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