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세월호의 교훈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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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8   |  발행일 2016-09-28 제30면   |  수정 2016-09-28
20160928

대지진 관련 루머 끊임없어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큰 탓
세월호 참사 900일 다가와
국민의 안전위한 실천통해
믿음의 정부로 거듭나기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떠돌던 ‘24·26일 강진 발생’은 루머에 불과했다.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국민, 특히 대구·경북 지역민의 불안은 여전하다. 지난 12일 경주 강진 이후 400여 차례의 여진과 함께 인근 국가인 일본과 중국에서도 잇따라 강진 소식이 전해진 탓이다. 약한 흔들림이나 큰 소리가 나도 지진이 아니냐는 문의가 이어질 정도다. 필자가 사는 지역은 K2공군부대에 인접해 있어 전투기 소음이 잦다. 예전엔 아내와 아이들이 큰 소리나 굉음이 나면 “또 전투기가 떴구나” 할 정도였지만, 경주 지진 이후에는 전투기 비행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모습이 역력하다.

‘대지진 괴담’은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주요 포털과 SNS에는 지진 전조 현상을 목격했다는 글이 전국 각지에서 쏟아졌다. ‘벌레들이 집 밖에 모여 있다’ ‘구름 모양이 지진운과 비슷하다’처럼 평소 같으면 무심코 넘길 만한 생활 주변의 작은 현상들도 지진 전조로 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주 지진 이전에 찍힌 ‘지진운’ 사진이나 줄지어 이동하는 ‘태화강 숭어떼’ 영상 등이 대표적인 지진 전조 현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전조 목격담 대부분 지진과는 무관한 괴담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민은 지진 괴담에 솔깃하다. 24~25일 부산·울산에선 지난 7월 발생했던 ‘가스 냄새 지진 전조’ 공포가 재현되기도 했다. 10여건의 가스 냄새 신고가 접수됐지만 소방당국의 조사 결과, 석유화학공단이 있는 울산에서 발생한 악취가 바람을 타고 날아온 것으로 추정됐다. 그럼에도 신고자 대부분은 정부 발표를 못 믿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한 환경단체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정부의 지진 대처 능력을 불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응답자의 69%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받더라도, 가만히 있지 않고 밖으로 나가겠다고 답했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2014년 4월16일 발생) 당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만 믿었던 단원고 학생을 포함한 승객들을 배를 빠져나오지 못한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거나 실종됐다.

다음달 1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900일이다. 참사 원인 규명을 위한 세월호 인양 작업은 지난 7월에서 8월, 9월을 넘기며 연내에 힘들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23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세월호의 완벽한 진상규명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고 답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진상규명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했다.

경주 지진 이후 정부의 무책임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경주 지진 원인으로 지목된 양산단층이 활성단층(活性斷層)이라는 지진 전문가들의 보고를 폐기한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2012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소방방재청(현 국민안전처)의 용역을 받아 양산단층 일대의 활성단층 지도를 담은 용역 보고서를 작성하고 공청회를 열었지만, 정부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연구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1994년엔 일본 연구그룹이 양산단층 주변에 대한 지진관측 조사 결과를 토대로 “앞으로 30년 이내에 한 번은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정부(김영삼 정권)도 활성단층이라는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대중정부 시절이던 1998년에는 한국자원연구소가 “양산단층이 50만년에 한 차례 움직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활성단층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보수 정권이든 진보 정권이든 국민의 안전을 우선시한다는 약속을 제대로 지킨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세월호의 교훈이 ‘정부를 믿으면 안 된다’가 아닌 ‘정부를 믿어야 한다’로 바뀌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임성수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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