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낯선 땅에서 낯익은 역사를 만나다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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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30   |  발행일 2016-09-30 제36면   |  수정 2016-09-30
일본 규슈 사가현 가라쓰<상>-가라쓰 성시(城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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띄엄띄엄 남아있는 옛 성벽길을 따라 돌담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왼쪽은 미즈노 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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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가라쓰 성. 오후 8시 이전의 모습이다. 주변에 불빛이 모두 꺼져 섬의 등대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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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마당에 만들어 놓은 도자기 판매장. 고가라쓰 도기라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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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몬 해자 남쪽의 시간을 알리는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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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몬 해자. 왼쪽이 번청 구역이다.


오후 6시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 할 사이 깜깜해진다. 대부분의 밥집은 오후 7시면 문을 닫는다. 사가현 제2의 도시, 가라쓰(唐津). 우리의 충남 당진과 한자가 같은 이곳은 옛날 당나라로 가는 사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항구였다. 임진왜란 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나고야 성(아이치현의 나고야성과 다르다)을 짓고 왜군들을 출정시킨 곳이기도 하다. 도시라는 단어가 주는 휘황한 불빛은 이곳에 없다. 높은 언덕 위 불 밝힌 성채만이 등대마냥 밝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희미하게 불 켜진 작은 식당을 발견하고는 들어선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출정 기지이자
조선 도공들 끌려와 도기를 만든 곳

400여년 前 성벽 따라 돌담 산책길
니노몬 해자·시간 알리는 북 볼거리

◆ 춤추는 학의 성, 가라쓰 성

“이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어디인가요?” 동네 사람들이 늦은 식사를 해결하는 식당 겸 술집에서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한 사람이 ‘가라쓰 성’이라 한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가라쓰 성이라 메아리처럼 말한다.

성이 지어진 것은 1608년이다. 히데요시가 가라쓰의 서북쪽 끄트머리에 나고야 성을 지은 지 약 16년 뒤다. 그때 이미 나고야 성은 허물어져 있었고, 그 부재들을 가져와 7년에 걸쳐 지은 것이 가라쓰 성이다. 축성한 이들은 히데요시의 가신들이었다 한다.

다음 날, 새벽부터 내리던 비는 오후까지 폭풍처럼 휘몰아쳤고 4시가 넘어서야 조금 성질이 누그러졌다.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성, 지난 밤 저 홀로 하얗게 불 밝혔던 성은 일광 속에서 조금 초라해 보였다. 성까지 오르는 방법은 계단과 엘리베이터 두 가지다. 금일 휴업이라 쓰인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숨을 쉰다.

성에 오르면 가라쓰 만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사람들은 가라쓰 성을 학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마이즈루(舞鶴)성이라고도 부른다. 성을 학의 머리로 보고 양쪽으로 백사장이 펼쳐진 것을 날개로 본 것이다. 지금 내려다 보이는 백사장을 날개라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옛날에는 더 넓고 선명했을 것이다.

성을 떠받치고 있는 작은 언덕의 숲은 자연림이라 한다. 가라쓰 성이 지어진 후 마을은 성하도시로 발달해갔다. 성은 19세기 중엽 메이지 유신 이후 황폐해졌고, 지금의 것은 1966년에 복원된 것이다. 봄 벚꽃과 여름 등나무 꽃이 유명하다는데, 꽃철은 모두 지났다.

◆성 아래 성내 마을

성 아래에 중고등학교가 있는데 축담이 성벽이다. 이 성벽에서부터 거의 일직선으로 돌담 산책로가 이어진다. 학교의 뒷문처럼 보이는 곳에 짧은 안내문이 있다. 지금의 학교 자리가 옛날 가라쓰 성의 중추부로, 번주의 거주지와 번청이 있던 자리라는 내용이다.

가라쓰가 시가 된 것은 1932년이다. 군주에게 종속된 제후가 통치하던 시대에 가라쓰는 번(藩)이었다. 그때는 무사의 거주지나 사원과 신사 자리, 도시민의 거주지 등이 엄격하게 구분되었고, 그 흔적이 군데군데 낮은 담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소형 자동차가 한 대 지나갈 만한 골목길이 계속 이어지고, 현대의 주택 사이로 ‘미즈노 여관’과 같은 오래된 집들이 드물게 나타난다. 판자에 ‘고(古)가라쓰 풍, 400년 전, 가라쓰 도기’라 거칠게 적어 세워둔 집이 있다. 앞마당이 가게다. 16세기에 가라쓰에는 잡기를 만들던 가마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을 ‘고가라쓰’라 한다. 이후 임진왜란 때 많은 조선의 도공이 이곳으로 끌려오면서 엄청난 기술 혁신을 이루게 되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도기를 ‘가라쓰모노’라 한다. 가라쓰에는 그 가마터가 남아 있고 시내 곳곳에 도자기 전시 판매장이 있다. 풍경에 눈길이 가 문을 두드려 보지만 주인은 출타 중인 모양이다. 깨진 도기 파편이 꽤 많다. 정말 400년 전의 것들일까? 믿어지지 않는다.

곧 꽤 넓은 ‘니노몬 해자’가 나타난다. 돌담 외 성하도시의 흔적이다. 해자의 동쪽은 번청이 있던 구역, 서쪽은 소위 공무원들이 살던 곳으로 두 구역 모두가 성 내에 속한다. 해자의 남쪽에는 시간을 알리는 북이 있다. 정각마다 인형이 나타나 북을 두드린다. 기초대만 남아 있던 것을 1994년에 재현해 세웠다 한다.

◆성 내와 성밖

니노몬 해자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가라쓰의 석탄 왕 다카토리의 옛 저택이 있다. 가라쓰는 20세기 초에 탄광이 개발되면서 석탄의 적출항으로 성황을 이루었는데, 그때 탄광 경영으로 큰 부를 이룬 이가 다카토리다. 그의 저택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저택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가라쓰 신사가 자리한다. 가라쓰 성 건립 이전인 8세기 나라시대에 지어진 오래된 신사라 한다. 1873년에 가라쓰 신사로 개칭했는데, 이전의 이름은 모른다고 한다. 바로 옆에 시민회관과 가을 축제 때 사용되는 수레 전시장이 있다. 신사 앞 일직선의 길을 내려가면 가라쓰 버스 터미널이 있고 그 옆에 아주 작은 규모의 ‘히고(肥後) 해자’가 있다.

가라쓰 성 안내도를 보면 니노몬 해자로 나누어지는 구역들을 환(丸)이라 표현한다. 번청 구역이 제2의 환, 공무원들의 거주지는 제3의 환이다. 그러나 히고 해자의 남쪽부터는 그러한 표현이 보이지 않는다. 성의 서남쪽 일대가 성내, 그 아래는 성 밖이 아닌가 싶다. 히고 해자의 건너편은 가라쓰역 일대다. 즉 상점들의 밀집 지역이다. 한때 번성했을 아케이드 상점가는 텅 비어 있지만, 그 주변의 주점 거리는 등불들 휘황하다. 성 내의 돌담길을 걷는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모두 이곳의 불빛 속에 있다. 가라쓰 성과 이 거리만이 밤늦도록 불 밝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 공항에서 후쿠오카로 가는 비행기가 있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JR지쿠히선이나 고속버스를 타고 가라쓰로 가면 된다. 1시간30분 정도 소요. 현해탄을 보면서 가는 길이다. 역 구내 관광정보센터에 한글로 된 자료가 많다. 가라쓰 역과 가라쓰 성 사이 구역을 시내로 보면 된다. 모두 걸어서 다닐 수 있다. 숙소는 가라쓰 성 서쪽 돌담길 쪽에 몇몇 여관이 있고, 규모가 있는 호텔들은 대부분 가라쓰 성 앞에서 다리 건너 동쪽 가라쓰 바닷가 송림 근처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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