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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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01 07:58  |  수정 2017-03-01 07:58  |  발행일 2017-03-01 제25면
[문화산책] 말해주세요
권현준 <오오극장 기획홍보팀장>

얼마 전, 레베카 밀러 감독의 로맨스 드라마 ‘매기스 플랜’과 크리스티안 크로네스 외 2명의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어느 독일인의 삶’을 봤다. ‘매기스 플랜’을 보러 영화관에 가면서 옆 사람에게 했던 말이 기억나는데, 당시에 난 이렇게 말했다. “말 많은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아”라고. 하지만 이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매기스 플랜’의 말들은 무척이나 웃기고, 재치 있고, 사랑스럽다. 이를테면 대학교수인 존이라는 인물이 식당에서 같은 테이블의 사람들에게 “‘~같다’는 언어적 콘돔이야”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장면 말이다. 이 영화에서 단연 빛나는 말의 장면은 존과의 애정 문제에 봉착한 매기가 존의 전처인 조젯을 찾아가 “난 존과 당신이 재결합하길 원한다”고 말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장면이 시사하는 바는 굉장히 크다. 그건 바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선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과 그 용기를 표현해 낼 수 있는 방법은 ‘말’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결국 그 말의 행위가 있었기에 이 영화는 낙관을 머금은 채 결말에 이를 수 있었다.

또 다른 영화 ‘어느 독일인의 삶’(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 The German Life가 아니라, A German Life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은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브룬힐데 폼셀, 단 한 사람과 나눈 인터뷰 형식의 다큐멘터리다. 인터뷰 당시 그녀는 103세였는데, 너무 깊게 패어 흑백 화면에서 더욱 드라마틱해 보이는 주름살만큼이나 그녀가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역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인터뷰에서 쏟아내는 무수한 말들은, 가해자 혹은 부역자인 그녀의 생각과 감정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한다. 그것이 이 영화(혹은 말)의 함의이기도 하다.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 그녀는 “정의는 없다”고 말하지만 곧바로 “난 잘못이 없다”고 이어 말한다. 그 순간 입 밖으로 나왔던 그녀의 말들은 결코 나치가 청산되지 않은 역사임을 확인해주는 소름 돋는 기록으로 탈바꿈해버린다.

말은 본디 소통을 위한 도구임을 우린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오랫동안 그리고 간절히 누군가의 (일방적이지 않은) 말을 원하고 있다. ‘아무 말 대잔치’의 시대에서 오히려 그 함구는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내뱉는 말이 용기가 되든 역사가 되든, 결국 말로 내뱉어진 후에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말인데, 부디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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