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싱글 라이더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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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08   |  발행일 2017-03-08 제31면   |  수정 2017-03-08
[박재일 칼럼] 싱글 라이더

영화 싱글라이더(single rider)에는 검사, 기자가 나오지 않는다. 부당거래, 내부자들, 검사외전, 더 킹으로 이어지는 근래 한국영화는 검사와 기자가 넘쳐난다. 검사는 정의롭거나 부패하다. 그나마 등장하는 기자는 야비하거나 따귀를 맞거나 둘 중 하나다. 사실 신물이 났다. 안 그래도 현실은 특별수사본부에다 특검이 온 나라를 부여잡지 않는가. 도피라도 해볼까 극장으로 향한다. 장르를 달리해서.

싱글 라이더는 추측대로 ‘기러기 아빠’ 이야기다. 증권사 지점장 남편(이병헌)은 어느 정도의 성공과 넉넉함에 아내(공효진)와 아들을 호주로 보낸다. 영어도 배우고 고상한 경험을 하라는 그 한국적 이유로. 2년간 그는 일에 파묻혀 가족을 잊고 지낸다.

한때 미국에서 연수를 하면서 종종 공효진 같은 기러기 엄마들이 눈에 띄었다. 다들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왠지 쓸쓸하고 또 사서 고생들을 하나 하는 측은함이 한편에 있었다. 멀쩡한 가족을 두 동강 내 영어 배우러 이역만리 자신들의 터전으로 들어온 이들을 미국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기러기 아빠 이병헌은 증권사가 판매한 부실채권으로 인생의 벼랑 끝에 선다. 가족의 분절은 파국의 원인은 아니더라도, 닥쳐올 불행을 치유할 준비된 공간이 될 수는 없다. 유령처럼 헤매던 남편은 뒤늦게 호주행 비행기를 탄다. 찾아간 호주의 아내는 이미 이웃집 백인과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이병헌은 토해낸다.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다.” 물론 영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병헌이 공효진을 목 졸라 죽인다고 상상하지는 말라.

우리는 홀로 외로우면서도 한편 혼자이길 원하는가. 그러고 보니 원튼, 원치 않든 한국의 1인 가구는 가족 구성에서 1위에 등극했다. 1천956만 가구 중 520만, 27.2%다. 4가구 중 하나다. 2인 가구(26.1%), 3인 가구(21%)를 제쳤다. ‘아빠, 엄마, 아들, 딸’이란 전형적인 4인 가족 구성은 20년 만에 18.8%로 떨어져 수치상 가장 비정상적인 가구가 됐다. 5인 대가족은 6.4%밖에 안 된다.(2016년 통계청 발표)

몇 년 전 일본 도쿄를 돌아다니다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에서 묘한 장면을 목도했다. 넥타이를 맨 중년의 신사가 혼자 앉아 햄버거를 먹고 있다. 둘러보니 그만이 아니다. 군데군데 홀로 앉은 남성들은 마치 혼자 산다는 사실을 광고하듯 햄버거 쪽으로 고개를 박고 있다. 하기야 미국서도 교포 자제들이 주(州)정부가 등록금을 절반 이상 싸게 해주는데도, 기어코 멀리 다른 주의 대학을 선택한다고 했다. 학비가 배로 올라도 부모와 떨어지고 싶어서다.

아직은 거북한 혼술, 혼밥까지 트렌드가 된다면 모두가 혼자 사는 세상도 불가능하지 않을 듯하다. 이미 1인 가구 전용 주식형펀드까지 나왔다. 거기다 멀쩡한 가족도 갈라쳐 기러기로 만드는 세상 아닌가. 원룸, 노후파산, 고독사(死)는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우리 미래를 덮칠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종종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은 내 버릇인지는 모르겠지만, 싱글 라이더를 보면서도 그랬다. 탄핵의 소용돌이에 내몰린 대통령도 혼자라는 지점으로 생각이 미친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나는 그가 성공할 필요조건 중 하나는 훌륭한 ‘측근’이라 여겼다. 미안하지만 그는 싱글이기 때문이다. 홀로 결단은 고독하다.

외신에서 최순실 ‘비선’을 ‘confidante’로 번역했다. 비밀도 털어놓는 절친한 친구란 뜻이다. 어쩜 우리는 누구나 ‘콘피단트’가 절실할지도 모른다. 그게 공식 라인이라면 또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둘러보면 한국은 모두가 홀로다. 좌(左)도 우(右)도 홀로고, 촛불도 태극기도 홀로다. 뭉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싸우기 위해 뭉친다. 좌우 양 날개로 힘차게 날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온 것인가. 싱글 대통령이 국민의 박수를 받고 결혼하는 어디서 본 듯한 영화의 한 장면이 갑자기 떠올라 그냥 쓴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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