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미로에 갇힌 ‘문송’들…재교육·정보공유 강화가 탈출구

  • 김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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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2   |  발행일 2017-04-22 제12면   |  수정 2017-04-22
이공계 남성에 쏠린 취업시장
인문계생 취업교육 지원 필요
20170422
지역의 인문계열 취업준비생들이 취업을 하고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중소기업 온라인 홍보기획자 양성’ 과정을 듣고 있다. <벤처기업협회 제공>

#1 쓰고 버려지는 ‘티슈 인턴’

지역의 한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한 김민지씨(24)는 졸업을 하지 않고 졸업유예를 결정했다. 친구들은 대부분 휴학을 한 뒤 어학연수를 떠나거나 공무원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집안 형편상 휴학을 할 수 없었던 김씨는 졸업을 미루고 인턴자리를 찾아 입사했다.

몇 달만 고생하면 정식 입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회사 담당자는 인턴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는 남성 엔지니어들만 공채로 뽑을 예정이니 정규직으로의 전환은 없다는 점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게 현실이구나 생각했다. 어차피 정직원이 될 수 없지만 3개월 인턴이든 1개월 인턴이든 그것조차 절실했다”고 말했다. 자기소개서에 한 줄이라도 더 적기 위해선 그야말로 ‘티슈 인턴’(인턴을 뽑아 쓰고 버린다)도 마다할 순 없었다.


#2 졸업식도 못가는 취준생

또 다른 대학에서 국제통상학을 전공한 곽봉제씨(27)는 지난해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졸업식은 졸업식이 아니라 ‘취업식’이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직한 사람들이 해당 업체의 로고가 그려진 배지를 달고 졸업식에 참석하기 때문이다. 곽씨는 “취업 못한 친구들은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는다”며 “취업한 친구들 보면 괜히 마음 아플 것인데 굳이 왜 가나”라고 말했다. 지역업체에 부지런히 이력서를 내고 있는 곽씨는 업체의 채용공고를 살펴보며 인문계열 파트가 할 수 있는 직종을 찾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채용 분야에서 기술직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이공계생들을 우대했기 때문이다.

곽씨는 “주변 취업준비생들을 보면 취업하고 싶은 곳으로 1순위는 대기업, 2순위는 공기업, 3순위로 공무원을 꼽는다. 하지만 취업준비생들이 마냥 눈이 높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취업준비생들은 ‘무조건 대기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기업이 어느 정도의 월급을 줄 수 있는지, 근무 분위기는 어떠한지, 본인의 성향과 회사경영 방침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회사의 성장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다양하게 살펴본다”고 말했다.


대구시 13년째 맞춤 인력양성 사업
올핸 인문계생 비중 50%로 확대
온라인 홍보 등 장점 활용에 초점

“대부분 지원사업 있는지도 몰라
지역中企 취업정보도 찾기 힘들어”


‘인구론, 문송, 지여인.’

이게 다 무슨 소릴까. ‘인구론’은 인문계 출신 대학생의 90%가 졸업 이후 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송’은 ‘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준말이며 ‘지여인’은 지방대학교 출신 여성, 그중에서도 인문대를 졸업하면 취업하기가 더 힘들다는 의미다. 이들 신조어는 인문계 출신 취업준비생들이 직장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17년 상반기 500대 기업 신규 채용 계획’에 따르면 응답한 200개 기업 중 27개사(13.5%)는 채용 규모를 지난해보다 줄이기로 했다. 신규채용이 없는 곳도 18개사(9.0%)나 됐다. 5곳 중 1곳 이상(22.5%)이 채용을 줄이거나 없애기로 한 것이다.

이공계와 남성을 선호하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올해 상반기 대졸 신규채용 인원 중 이공계 졸업생 선발 비중은 평균 54.5%로 나타났다. 또 여성의 비중은 평균 26.2%로 조사됐다.

인문계열 졸업자가 겪는 취업난이 갈수록 심해지자, 인문계열 청년층의 취업 사교육에 대한 투자도 늘어나고 있다.

김경태 벤처기업협회 대구경북지회 위원은 “대구·경북의 주력업종이 차 부품, 기계 등이다 보니 이공계 출신에게 유리한 점이 있고 인문계열을 필요로 하는 업체들은 비교적 수도권에 많다보니 훌륭한 인재들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 구인과 구직 사이에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다”며 “오히려 전문대졸 인력이 대졸 인력보다 취업이 더 쉽다. 인문계열 취업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갈수록 취업문이 좁아지는 상황에서, 인문계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와 ‘교육’이다.

김민지씨는 “대기업에 관한 정보는 인터넷으로 쉽게 찾아 볼 수 있지만, 지역 중소기업은 관련 정보를 찾기가 어렵다”며 “좋은 기업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해당 기업에 아르바이트를 해보며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곽봉제씨 역시 “취업준비생들을 위한 지원프로그램이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취업도 정보력인데, 지역의 인문계 취업준비생들을 위한 정보공유가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문계 취업준비생들을 위해 대구시는 지난 17일부터 ‘2017 맞춤형 인력양성 사업’을 시작했다. 맞춤형 인력양성사업은 2005년부터 시작됐다. 지역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우수 기술인력을 양성해 제공하고 지역 기업은 신규 직원의 재교육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도입된 사업이다.

지금까지 맞춤형 인력양성사업의 80%는 이공계열 취업준비생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올해부터는 양성 목표 인력 750명 중 인문사회계열 취업준비생을 50%로 배분한다. 프로그램은 비즈니스 서비스 7개 과정, 중소기업 온라인 홍보 기획 2개 과정, 서비스산업 분야 2개 과정, 공공기관 취업 지원 2개 과정, 광고기획 1개 과정으로 이뤄진다.

지난 17일엔 ‘중소기업 온라인 홍보기획자 양성’(1기) 과정이 첫 수업을 시작했다. 지역 중소기업의 특성상 사무직군 업무와 영업직군 업무가 병행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에 대한 수요를 충족하고, 인문계 취업준비생의 장점인 기획력, 문서 작성력, 외국어 구사 능력 등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개설된 교육프로그램이다.

하루에 6시간씩 총 20일, 짧지 않은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지만 수업에 참여한 취업준비생들은 비장한 눈초리였다. 제안서 작성 실습 등 실제 회사에서 쓸 수 있는 PPT작업 등을 미리 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소은아 대표강사는 “수업 시간마다 긴장감이 흐른다. 그만큼 절실하게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소 강사는 “지역업체들은 오랜시간 신입사원을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이 안돼 바로 실무에 투입하길 원한다”며 “기업에서 실제적으로 쓸 수 있는 업무능력을 배워 기본기를 갖추는 것도 채용 시 본인을 어필 할 수 있는 강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대구시 고용노동과 관계자는 “지역 중소기업, 그중에서도 강소기업을 선정해 업체탐방을 진행하는 등 지역에도 괜찮은 업체가 많다는 점을 소개해 일자리 매칭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미지기자 miji469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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