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미의 브랜드스토리] 에밀리오 푸치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06-16   |  발행일 2017-06-16 제40면   |  수정 2017-06-16
지중해의 오묘한 色과 촉감을 담다
[장현미의 브랜드스토리] 에밀리오 푸치
에밀리오 푸치의 2017 SS 컬렉션 작품.
[장현미의 브랜드스토리] 에밀리오 푸치
창립자 에밀리오 푸치

낮 기온이 30℃를 웃도는 등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더운 날씨와 강한 햇볕에 잘 어울리는 브랜드 ‘에밀리오 푸치’가 올 4월 갤러리아 명품관 이스트에 한국 부티크를 오픈했다.

이 브랜드의 창립자 에밀리오 푸치는 전후 이탈리아 디자인산업 부흥에 큰 영향을 끼친 공헌자다. 오늘날 우리가 즐겨 입는 ‘카프리 팬츠’의 창시자이기도 한 그는 의상의 컬러와 패턴, 소재에 중점을 두고 디자인했으며, 추상적이고 과감한 패턴과 톡톡 튀는 색감에 심플한 형태를 적용해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프린트의 왕자’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프린트와 색 조합, 소재에 일가견이 있던 그는 의상 디자이너라기보다는 패브릭 디자이너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카프리 팬츠’ 창시자이자 ‘프린트의 왕자’
컬러·패턴·소재에 중점 둔 디자인 명성

1947년 스키복 디자인으로 브랜드 탄생
한 패턴 10색 이상 사용 등 화려함 특징
몸 타고 흐르는 실크저지 의류 큰 인기


창립자 에밀리오 푸치는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명문가 바르센토가에서 태어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등 명작으로 장식된 피렌체의 대저택에서 풍요로운 어린시절을 보냈다. 여행을 좋아하며 펜싱, 비행, 스키 등 운동에 능했던 그는 이런 귀족적 문화보다 현실적인 변화와 현대문화에 더 흥미를 느껴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아 대학과 리드 칼리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그 후 이탈리아로 돌아와 이탈리아 공군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여러 차례 훈장을 받았다.

이런 그가 디자인분야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후반~50년대 초반이다. 47년 그는 우연한 기회에 그의 친구이자 패션 사진작가인 토니 프라셀에게 자신이 디자인한 후드가 달린 아노락 스트레치 소재의 타이트한 고리바지와 셔츠로 구성된 스키복을 보여줬고, 그것을 본 토니 프라셀은 우아하면서도 여성의 체형에 딱 맞는 스키복이라며 사진을 찍어 당시 미국 하퍼스 바자의 편집장이자 패션계에서 높은 영향력을 행사하던 다이애나 브릴랜드에게 전했다. 그가 디자인한 스키복을 본 다이애나 브릴랜드는 그의 성공을 감지하고 1948년 하퍼스 바자 12월호에 ‘이탈리어 스키어의 디자인’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실었다. 또 뉴욕 5번가의 큰 백화점인 로드 앤 타일러를 위한 스키복 컬렉션을 디자인하도록 하며 에밀리오 푸치를 패션계로 이끌었다.

49년 그는 카프리섬에 ‘에밀리오’라는 이름의 첫 부티크를 오픈하고, 수영복을 중심으로 한 작은 컬렉션을 발표하며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카프리섬은 그의 문양과 컬러 및 디자인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친 섬으로 카프리의 하늘과 지중해 연안의 화려한 꽃, 바닷가의 야생식물 등은 그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고, 카프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는 지중해의 정취에 어울리는 카프리 팬츠를 탄생시켰다.

51년 피렌체에서 열린 패션쇼에는 미국 바이어들이 대거 참석해 미국시장에 에밀리오 푸치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를 통해 그는 니만 마커스, 삭스 피프스 애비뉴 등과 같은 미국의 큰 백화점과 협업하며 매장을 확대했다. 그 결과 미국 백화점에서 가장 중요한 매장으로 커갔으며 54년 ‘니만 마커스상’을 수상해 예술적 창조성과 시장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장현미의 브랜드스토리] 에밀리오 푸치
1947년에 디자인한 후드가 달린 아노락 스트레치 소재의 타이트한 고리바지와 셔츠로 구성된 스키복으로 미국 패션계의 주목을 받았다.

에밀리오 푸치가 선보인 독창적이고 화려한 프린트 디자인은 이 브랜드의 성공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이탈리아의 자연과 전통문화, 예술작품,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통한 이국적인 정취와 문화에서 다양한 영감을 받은 추상적이면서도 사이키델릭한 프린트와 컬러는 그를 돋보이게 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화려한 프린트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49년 카프리에서 첫 부티크를 열 당시에는 프린트가 아닌 밝고 화려한 색채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그가 선보이던 스키복, 수영복, 사이클복과 같은 스포츠웨어와 리조트웨어는 그 특성상 색채만으로 관심을 끌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실크 스카프와 셔츠 등에 카프리의 주변 환경을 섬세하게 그린 지도를 직접 그려 넣으며 그가 디자인한 의상에 프린트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와 주변 지중해 국가인 프랑스, 러시아,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등에서 영감을 받은 독특하고 이국적인 요소들은 60년대 그의 모든 컬렉션의 패턴, 컬러, 실루엣으로 표현됐다. 새로운 디자인을 발표할 때마다 조금씩 변형된 색다른 조합의 색채를 보여준 그는 하나의 패턴에 10색 이상의 컬러를 사용해 화려하고 밝은 색감을 만들었으며 500가지 이상의 그러데이션 시리즈에 고유한 이름을 붙여 자신의 패턴 디자인에 활용했다. 컬러리스트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던 그는 이전에는 부조화로 여겨졌던 색채 간의 새로운 조화를 시도하며 고정관념을 깨는 작업을 시도했다.

에밀리오 푸치는 소재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며 소재와 관련된 특허도 얻었다. 당시 여성의 몸을 속박하며 인위적인 실루엣을 만들어내던 거들, 코르셋, 페티코트 등을 거부하며 여성의 몸을 타고 흐르는 소재의 혁신과 심플한 디자인을 통해 자연스러운 여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최상급의 섬유 원료를 사용한 실크 저지로 만든 가벼우면서도 고급스럽고, 구김이 가지 않는 실용적인 의류를 디자인했다. 이 실크 저지는 그를 상징하는 소재로 여겨질 정도로 1960년대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이런 전형적인 오트쿠튀르 스타일에서 벗어난 에밀리오 푸치의 독특한 프린트 의상들은 당시 젯셋족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그들만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갔다. 에밀리오 푸치는 당시 디자이너들이 의류 외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과는 달리 옷과 동일한 패턴이 들어간 핸드백, 우산, 모자, 스카프, 신발, 속옷, 향수, 타월 등 많은 액세서리와 홈 퍼니싱 상품을 디자인했다.

70년대 후반에 들어서 에밀리오 푸치는 위기를 맞았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격동의 시기여서 그가 선보이던 화려한 프린트와 밝은 색상, 우아한 상류층 이미지 디자인은 사람들에게 외면받았다. 그런데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해 나가던 그는 80년대에 스포츠룩의 유행과 복고 경향이 나타나면서 다시 사랑받기 시작했다.

92년 78세의 나이로 사망한 그의 뒤를 이어 딸 라우 도미 아 푸치가 사업을 이어받았고, 글로벌 패션기업 LVMH사가 에밀리오 푸치의 지분을 확보하며 브랜드가 급속히 성장했다. 현재는 전 세계 50개 부티크를 가진 글로벌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다.

프리밸런스·메지스 수석디자이너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