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핵무장 공포는 다가오는데 우파의 엔진은 꺼지고

  • 박재일
  • |
  • 입력 2017-09-06   |  발행일 2017-09-06 제31면   |  수정 2017-09-06
[박재일 칼럼] 핵무장 공포는 다가오는데 우파의 엔진은 꺼지고

문재인정부의 대북(對北) 정책은 초반부터 거의 실패로 보인다. 이제 갓 태어난 정권인 만큼 물론 만회의 기회가 있다는 전제에서다.

북쪽은 자신들에게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남쪽 정권의 출범에도 불구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포함해 10번의 미사일 실험을 했고, 급기야 수소폭탄이라고 주장하는 핵실험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비대칭 전력, 핵무장에서 남한은 북한에 완패하고 있다. 이른바 국제정치의 제1원칙 ‘세력균형’이 무너졌다.

더구나 핵실험에 동반한 그들의 레토릭(수사)은 지구상 그 어느 국가보다 호전적이다. 원수들을 향해 불바다, 초토화는 기본이고 ‘영원히 끝장’에다 세계 최강 군사대국 미국의 핵기지 괌에 미사일을 포위 사격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말로만 따진다면 이미 전쟁이 났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서로 묻는다. 전쟁이 나느냐고. 물론 전쟁은 쉽게 나지 않는다. 전쟁에는 조건이 있다. 감정이 격화되고, 서로 이긴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한편 전쟁은 엉뚱하고도 사소한 자존심 섞인 일들로 촉발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마치 지성인 양 포장되는 풍조도 있다. ‘증권가의 확신’처럼 밀집된 무장, 전대미문의 피해를 들어 전쟁 불가론을 예측한다. 그 불가론에는 어쩜 그럴 수 없다는 절실한 바람을 담았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우리는 그러려니 넘어간다. 전쟁 가능성을 수치화하기는 불가능하다. 분명한 점은 한반도 전쟁이 과거 1%의 확률 정도라고 가정한다면, 현재는 10%쯤 될까. 열배 늘었다는 뜻도 된다.

지금 돌이켜보면 근 30년, 북한은 핵무장을 향해 단단한 결심을 했다. 이는 마치 중국이 통일 이후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란 인고의 세월 속에서도 1967년 수소폭탄 실험으로 핵무장 대국에 오기까지 일로매진한 것과 똑같은 경로라는 분석도 나온다.

핵무장 국가, 북한의 탄생은 문재인정부만의 탓은 아니다. 그래도 상대의 전쟁불사 공갈에 반대편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다’고 한 발언은 공허하다. 마치 싸우지는 않겠다는 패를 상대에게 보인 셈이다. 전쟁을 두려워해서는 전쟁을 막을 수 없다.

설령 제재보다 대화에 무게를 실은 문재인정부의 ‘투 트랙’이 극적으로 살아나 남북정상 회담이 열린다 해도 누가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지는 명확해진 상황이다. 세계는 김정은의 입을 주시할 것이다. 더 결정적인 것은 대화하는 순간 우리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골목대장의 윽박에 끙끙 앓는 착한 모범생이 연상된다.

설상가상 우리를 더 어둡게 하는 것은 이상을 좇는 좌파정부의 안보정책 트렌드의 빈약함이 아니라 오히려 우파의 결집 부재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좌파는 안보보다는 평화, 민족대화에 방점을 뒀다. 대결, 체제 우위론, 힘을 바탕으로 한 압박론은 그들의 몫이 아니다. 그건 우파의 전유물이다. 그런 우파가 위기의 순간에 산산히 부서져 있다. 갈라진 것도 모자라 내분으로 가관이다.

그저께 국회 로텐더 홀에서 있었던 일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를 보이콧하고 ‘문재인 정권 방송장악’ 시도를 규탄하는 집회를 했다. 이를 목격한 바른정당의 하태경 의원이 “북한이 쳐들어 올 판에 안보정당이 뭐하느냐”고 비아냥거리자 한국당 의원들은 “배신자는 조용히 하라. 배신자가 무슨 보수 XX이냐”고 삿대질했다. 박근혜 탄핵 사태 이후 우파의 현주소다. 합쳐보라는 주문에 ‘상대가 항복하면 모를까’ 내지는 ‘각자 갈 길 가고 국민이 한쪽 손을 들어줄 때까지 기다려보겠다’고 한다.

힘과 체제 우위론을 바탕으로 여차하면 남측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란 신호를 북측에 보내야 할 우파가 지리멸렬한다면 김정은의 행동반경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문 정권에 대한 우파의 내부적 압박은 장기적으로 문 정권의 대북 전략과 협상에도 도움이 된다. 그런 우파의 엔진이 지금 거의 꺼졌다. 국가안보에서나 우파의 생존을 위해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