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익숙하지 않은 ‘野性’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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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11   |  발행일 2017-09-11 제30면   |  수정 2017-09-11
첫 장외투쟁 나선 한국당
비장의 카드만 소진하고
사실상 허무한 빈손 퇴각
과거 야당 흉내 내기보다
새로운 야당의 길로 가야
[송국건정치칼럼] 익숙하지 않은 ‘野性’

“앞으로 4년 반 동안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단련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우리가 장외투쟁을 하는 건 ‘야성(野性)’을 키우기 위해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국회 보이콧과 장외투쟁을 선언하며 소속 의원들에게 한 말이다.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공영방송 장악 음모 중단과 대북정책 수정이지만, 문재인정부 첫 정기국회 초반부터 싸움을 걸어서 기선을 제압할 필요도 있다는 의미다. 홍 대표는 이를 위해 정우택 원내대표가 하기로 돼 있던 국회 본회의장에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무산시켰다. 지난 주말에는 대규모 장외집회도 열었다. 국회 일정뿐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주 여야 5당 대표와 청와대 회동 계획을 짜고 있지만, 홍 대표는 일찌감치 불참 의사를 밝혔다.

홍 대표는 청와대에 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번 제안은 들러리 회담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 7월에 문 대통령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결과 설명을 위해 마련한 자리에 불참하면서는 “뱁새가 아무리 재잘거려도 황새는 제 갈 길을 간다. 저들이 1·2·3 중대를 데리고 정치쇼를 벌여도 우린 갈 길을 간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들러리’ ‘1·2·3중대’라는 용어를 보면 자신은 다른 야당 대표와는 격이 다르다는 식의 행보를 작정한 듯하다. 문 대통령이나 여당인 민주당의 추미애 대표만 맞상대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실제로 말뿐이 아니라 전략과 행동에서도 그런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줬으면 홍 대표는 다시 보수의 대안으로 떠올랐을 거다. 그러나 7·3 전당대회 당선 후 두 달여 제1야당 자유한국당을 이끌고 있는 홍 대표의 정치리더십에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 구석이 많다.

가장 납득이 안 되는 건 김장겸 MBC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를 국회 보이콧의 첫째 이유로 삼은 점이다. 새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을 저지하기 위해서라지만 북핵 위협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 ‘국가안보’를 우선 가치로 두는 보수정당이 꺼내든 카드 치고는 설득력이 약하다. 앞으로 문재인정부 첫 정기국회가 진행되면서 여러 쟁점이 불거지고 여야가 극한 대치를 이어갈 사안들이 많을 텐데 국회 보이콧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너무 일찍 써버리는 전략적 미숙함을 드러냈다. 차라리 국회 대표연설, 대정부질문을 정상적으로 진행하면서 안보정당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국회 보이콧이었으니 불과 1주일 만에 슬그머니 복귀 채비를 차릴 수밖에 없게 됐다.

청와대 회동 역시 마찬가지다. 공영방송 문제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대통령 면전에서 따져 대답을 얻어내는 게 야당 지도자가 할 일이고, 국민이 원하는 바가 아닐까.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선 문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이 소폭 하락한 반면, 한국당 지지율이 그 폭만큼 올라갔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한국당의 선전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계속 오판을 낳는다. 현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대북정책에 불안감을 느낀 중도층의 민심이 움직였다고 봐야 한다. 만일 한국당이 안보위기에서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 정부를 질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면 국민, 특히 보수층에 더 많은 신뢰를 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전략 부재로 인해 과거 국정을 운영하던 시절 김정은 체제의 북한을 다뤄본 경험을 스스로 묻어버리고 말았다. 국회 보이콧이나 장외투쟁은 한국당에 익숙한 일이 아니다. 꼭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우리도 ‘야성’이 있다는 흉내를 내기 위한 장외투쟁을 할 때가 지금은 아니다. 그러면 정말 여야가 함께해 나갈 정국운영에서 들러리 역할조차 못할 수도 있다. 앞으로 4년 반 동안 혹독한 겨울에 스스로 갇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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