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폭력, 추억 혹은 현실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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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11   |  발행일 2017-09-11 제31면   |  수정 2017-09-11

교복세대, 특히 남성이라면 대부분 학교나 군대에서 맞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대단한 집안의 자제나 공부를 잘했던 수재, 그리고 처세의 달인이거나 운이 좋았던 사람은 예외일 수도 있겠다. 필자는 이도 저도 아니어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구타의 추억들이 있다. 그렇다고 크게 억울해 하지는 않는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속칭 ‘줄빠따’ 정도는 흔했지 않은가.

1980년대 중반,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전방부대에 배치받기 전 신병보충대에 머문 적이 있었다. 당시 그곳의 경례 구호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할 만큼 특이했다. ‘충성, 구타근절!’ 잘하면 안 맞고 군 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만했다. 착각이었다. 자대에 배치되자마자 그게 얼마나 순진한 기대였는지를 깨닫게 됐다. 소대 고참들의 심기가 불편하다 싶으면 시도 때도 없이 줄빠따가 행해졌는데, 최악은 밤에 자다가 집합당해 맞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졸병 입장에선 몇 대 맞고 자는 게 맘 편할 때가 많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당시 어느 부대에서나 구타가 만연했으며, 그로 인한 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구타 근절’ 경례는 현실과 정반대인 헛구호였다. 그 시절 전두환 정권이 내건 ‘정의사회 구현’과 비슷했다. 하지만 끝내 정의사회를 외면한 전 정권과 달리 군(軍)은 구타 근절을 실천에 옮겨 결실을 거뒀다.

요즘 10대들이 저지르는 살인과 폭행사건들로 사회가 떠들썩하다.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으로 남아 있는 폭력이 일부라고 해도 청소년에게는 현실이 되고 있어 안타깝다. 물론 과거에도 청소년 폭력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조폭 뺨칠 정도는 아니었다. 갈수록 범죄를 저지르는 연령이 낮아지고 수법도 잔혹해지고 있지만 딱히 대책은 없어 보인다. 법을 뜯어고쳐서라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근본 해법이 될지는 의문이다. 도를 넘은 청소년의 일탈은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방기(放棄)한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이 든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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