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시험 올인한 無스펙 ‘공시바보’…생활비 탓에 알바 시장 내몰려요”

  • 이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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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1   |  발행일 2017-10-11 제20면   |  수정 2017-10-11
■ 지역 공시생 이 모씨
“공무원시험 올인한 無스펙 ‘공시바보’…생활비 탓에 알바 시장 내몰려요”
스스로를 ‘공시 바보’라고 토로하는 이모씨가 지역의 한 도서관에서 뒷모습을 보인 채 책을 읽고 있다.

구미에 사는 이모씨(여·31)는 올 초 문재인정부가 내세운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 소식을 듣고 경악했다. 청년 취업난의 심각한 문제를 인식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린다는 취지에는 공감했지만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에 떠밀려 뛰어든 뒤 결국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되는 공시 바보들만 수두룩하게 키우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더 앞섰기 때문이다.

이씨는 20대 초중반 청춘을 꼬박 공무원 시험에 매달렸다. 국가직 일반행정 7급이었다. 지역의 한 대학 법학과에 재학 중이었지만 주변에서는 ‘요즘은 대학 나와도 취업이 안돼서 고생이라더라. 몇년만 고생해서 공무원이 되면 안정적인 월급과 노년의 연금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는 부추김이 많았다. 학교를 다니며 틈틈이 공무원 시험 책을 폈다. 공부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시간은 흘러 대학을 졸업했고, 졸업한 고시준비생들을 위해 마련된 학교 기숙사에서 본격적으로 공무원 시험 준비에 돌입했다. 한 기숙사에서 7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이들만 열댓명에 달했다. 그때가 스물여섯살.

그녀는 이듬해 응시한 시험에서 탈락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7시부터 독서실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점심·저녁 식사시간 각 1시간을 제외하고 매일 12시간 넘게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집에 손벌리는 것은 책값과 인터넷 강의료만으로도 부담스러웠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시험 공부에 몰입하려 했지만 300만원가량의 대학 학자금 대출이 발목을 잡았다. 학교 인근 카페에서 알바를 시작했고, 몸이 피곤해서 공부를 쉬는 날도 늘어갔다. 그렇게 시험과 멀어지면서 겨우 학자금 대출을 갚아나갔다. 하지만 대출을 갚고나니 다시 공시생이 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전국 공시생 수, 즉 경쟁자 수는 매년 급격히 늘었다. 일반 기업 취업으로 눈을 돌렸다. 그녀가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다른 취업준비생들이 쌓은 스펙은 어마어마했다. 토익이니 대외활동이니를 할 돈과 시간이 없었다. 다시 아르바이트 시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씨는 한 학원에서 월급 120만원을 받으며 안내데스크 업무를 맡고 있다. 4대 보험은 물론 제대로 연차도 쓸 수 없는 비정규직이지만, 꼬박꼬박 월급 받으며 자리잡고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것이 이씨의 생각이다.

그녀는 “지나고 보니 정부가 일자리 확충뿐만 아니라 직업교육, 즉 직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정보 제공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어쨌든 이렇게 된 게 돈이 없고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내 탓이지 하게 된다. 노량진에 갔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한창 빛나야 할 청춘들의 모습이 온통 잿빛이었다. 외면하지 말아야 할 청년들의 현실”이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글·사진=이연정기자 leeyj@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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