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미군부대 맛 역사 함께하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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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3   |  발행일 2017-10-13 제33면   |  수정 2017-10-13
[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칠곡군
20171013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4개의 교량이 몰려 있는 낙동강 왜관권역. 6·25전쟁 때 파괴된 ‘호국의 다리’(맨 왼쪽)는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개설된 철교이지만 지금은 호국공원과 맞물린 관광루트로 변모했다. 그 옆에는 차량이 다니는 왜관교, 일반 열차가 다니는 상·하행선 철교가 가설돼 있다.

선입견이 무척 짙은 고장이 있다. 선입견이 너무 진하면 뒤에 아무리 매력적인 관광인프라가 포진해도 어필이 덜 될 수밖에 없다. 칠곡군도 ‘6·25의 고장’이란 선입견 때문에 관광마케팅전략을 짜는 데 고전을 면치 못했다. 파괴된 왜관철교, 다부동전적지, 그리고 낙동강 방어선에 가해진 융단폭격…. 칠곡은 그래서‘다크투어리즘 고장’의 이미지에서 그다지 벗어나질 못했다. 오죽했으면 ‘호국도시 칠곡’의 대표음식으로 ‘6·25주먹밥’밖에 거론되지 못했을까. 그런데 최근 들어 칠곡의 푸드투어 인프라의 밑그림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달 22~24일 낙동강지구전투전승행사와 함께 열린 제5회 ‘낙동강세계평화문화대축전’은 전쟁마케팅의 신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6월1일에는 칠곡의 대표 캐릭터인 ‘호이’를 앞세운 ‘호이푸드페스티벌’이 열렸다. 이 행사를 통해 칠곡이 처음으로 주먹밥, 부대찌개 등 ‘칠곡5미’를 띄웠다.

다들 칠곡은 전쟁밖에 볼 것이 없다고 하지만 속을 파헤쳐보면 그게 편견이란 걸 안다. 칠곡 지천면에 가면 광개토한우농업법인이 운영하는 ‘칠곡양떼목장’도 있다. 멋진 한옥촌인 매원마을, 전주의 전동성당 못지않은 퇴락미를 간직한 왜관읍 낙산리 ‘가실성당’의 끝물 백일홍과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그 시절 추억의 우물펌프(뽐뿌)가 이 가을 호젓함을 배가시켜준다.

◆칠곡…다크투어리즘의 고장

칠곡은 한국 식품사에 한 획을 긋는 음식이 태어난 곳인데 다들 그걸 간과하고 있다. 나는 지난 추석연휴에 등잔 밑이 어두워 제대로 짚어보지 못했던 칠곡으로 푸드투어를 떠났다. 왜관부터 먼저 찾았다. 왜관역은 내게 묘한 추억을 선사하는 랜드마크다. 서울이 마냥 궁금한 학창시절, 무작정 서울행 완행열차를 탔다. 대구역을 떠난 비둘기호는 이내 지천역에 도착하고 이어 신동·연화역을 지나 왜관역에 도착했다. 상경에 대한 욕망은 집 걱정 등으로 인해 금세 시들해지고 말았다. 덜컥 겁이 나 왜관역에 내려 한나절 ‘젊음의 해방구’나 마찬가지였던 왜관미군부대인 캠프캐럴 후문 근처를 배회하다가 되돌아온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왜관역 다음이 약목역이고, 한말 때까지 그 언저리에 합법적 일본인 거주구역이었던 ‘왜관(倭館)’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왜관은 여러 곳에 산재했다. 본부 격은 부산역 앞 초량에 있었다. 예측불허의 왜놈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조정에서 왜관을 허락해준 것이다. 낙동강 조운이 활성화돼 있던 그 시절, 왜인의 물품들은 한양으로 가져가기 좋게 임시 창고에 보관했는데 그 공간이 바로 ‘왜물고’다. 낙동강변 달성군 화원읍에도 그게 있었다. 왜관이 훗날 지명으로 남은 데는 칠곡 왜관밖에 없다.

모르긴 해도 왜관은 국내에서 단위면적당 가장 복잡한 도로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구도로와 신도로, 국도와 고속도로, 기존 철도와 고속철도가 실뭉치처럼 얽혀있다. 왜관교 남단 왜관소방서 앞 원형로터리는 무려 6개 방향으로 도로가 뚫려 있다. 다리를 건너면 만나게 되는 관호오거리 역시 외지인들을 혼동스럽게 만드는 갈래길이다.

왜관읍에서 약목읍으로 이어지는 낙동강 교량은 무려 4개다. 예전에는 무심하게 봐서 그런지 2개밖에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젠 관광상품이 된 ‘호국의 다리(6·25전쟁 때 파괴된 다리)’, 그 옆에 차량이 이용하는 ‘왜관교’, 그 옆에 상·하행선 경부선 철교가 100m 사이에 놓여 있다. 거기서 구미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칠곡보’와 ‘고속철도교’까지 다닥다닥 설치돼 있다. 이렇게 별별 다리가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데는 왜관권밖에 없다.

◆ 수도원과 미군부대의 묘한 앙상블

칠곡 푸드투어의 출발지를 왜관으로 정한 이유가 있다. ‘소시지’ 때문이다. 웬 소시지? 이유가 있다. 왜관에 오면 결코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상극적 공간이 묘한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 광경을 만나게 된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바로 옆에 캠프캐럴이 이웃해 앉은 것이다. 평화와 전쟁, 둘은 이렇게 담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머릴 맞대고 있다. 1953년 무렵에 수도원이 먼저 자릴 잡았다. 7년 후 캠프캐럴이 들어선다. 이 수도원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유럽(구대륙)식 소시지’를 선보인 곳이다. 바로 옆 미군부대는 유럽식이 아니라 한국인에게 더 익숙한 ‘신대륙식 소시지’를 선보였다. 그런데 최근 칠곡군에서 의정부부대찌개에 도전장을 냈다. 한국 최고의 소시지 수도원을 가진 칠곡, 그리고 6·25전쟁과 맞물려 10여년간 민초들이 먹었던 꿀꿀이죽의 추억을 융합하면서 신개념 ‘꿩부대찌개’를 개발한 것이다. 한국 소시지 역사의 흥미로운 단면이다. 나는 그 단면 속으로 들어갔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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