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총의 나라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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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13   |  발행일 2017-11-13 제31면   |  수정 2017-11-13

전 세계에서 민간인의 총기 소유를 허용하는 나라는 32개국이다. 그중 미국의 총기 보급률이 가장 높다. 현재 미국 내 총기 유통수는 약 3억5천만정으로 미국 인구(3억2천만명)보다 많다. 이 통계를 단순하게 해석하면 미국인 모두 총을 한 자루 이상 가지고 있는 셈이어서 미국을 총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인의 유별난 총기 사랑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개척자의 후손인 그들은 과거 전쟁과 약탈이 끊이지 않던 살벌한 세상 속에서 총이 없인 살아남기 힘들었다. 이 때문에 총은 위험한 무기라기보다는 생존과 자유를 지키는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미국인의 총에 대한 경외심은 점점 공포감으로 바뀌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 총기 참사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은 사상 최악으로 꼽힌다. 60대 남성이 야외 공연장에 운집한 군중을 향해 자동화기로 무차별 총격을 가해 무려 58명이 숨졌는데, 아직까지 범행 동기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니 황당할 따름이다. 라스베이거스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5일에는 텍사스주 서덜랜드의 시골 교회에서 20대 남성의 총기 난사로 2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희생자의 절반이 어린이였고 3대에 걸친 일가족 8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등 안타까운 사연이 꼬리를 물고 있다.

미국에서의 총기 사건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갈수록 빈도가 잦아지고 대형화·흉포화되는 게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미국 내 총기 희생자는 한 해 평균 3만명이 넘는다. 15분에 한 명꼴로 총에 맞아 숨지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총기 규제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미국에선 술을 사려면 21세가 넘어야 하지만 총기는 18세 이상만 되면 간단한 신고만으로 구입할 수 있다. 이처럼 총이 생활용품화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심에는 미국총기협회(NRA)가 있다. 협회의 로비가 얼마나 강력한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총기 사고는 총이 아닌 일부 사람의 비뚤어진 정신건강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주장한다. 또 교통사고 사망자도 많은데 자동차는 왜 규제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이 같은 궤변이 난무하는 나라에서 총 안 맞고 사는 게 행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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