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왜 ‘까칠한 남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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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23   |  발행일 2018-01-23 제30면   |  수정 2018-01-23
대구근대골목 기획자
변화와 혁신을 위한 돈은
정산이 안되는 경우 많아
돈보다 인간활동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고가
정책에 실현되어 있어야
[3040칼럼] 왜 ‘까칠한 남자’인가
권상구 시간과 공간 연구소 이사

대구에서 누구 못지않게 ‘까칠한 남자’로 소문나 있는 필자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연속으로 써보고자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대구 북성로인데 그곳에선 최근 ‘보리까끄레기’로 회자되었다. 며칠전 한 교수님이 ‘자네는 사람을 더 품어야 하지 않겠나?’ 하시길래 웃어넘겼지만 내가 까칠한 건 몇가지 이유가 있다. 오늘은 그 총론이다.

필자의 나이는 74년 범띠, 44세다. 난 아직 달려야 한다. 한국축구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히딩크의 ‘난 아직 배고프다’라거나 스티브 잡스의 ‘Stay Hungry. Stay Foolish(배부르지 말고, 늘 어리석어야 한다)’라는 말도 나에겐 식상하다. 문제해결에 집중하고 그곳에 돈을 쓰다 보니 자비든 지원금이든 나에게 돌아오는 건 늘 부족했다.

2001년 대구근대골목 활동을 시작한 지 18년째 난 한번도 취업면접을 본 적이 없고 고정월급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 연구소’의 살림은 왜 넉넉해지지 않을까를 고민하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래’에 마음을 둔 게 문제였다. 어느 선배의 말처럼 ‘고등학교 학력이 지배하는 대구’에서 늘 타인을 설득하는 게 어려웠고 명쾌한 사고는 접하기 힘들었다. 디자인계의 명언으로 쏘나타를 디자인하면 벤츠를 타고, 벤츠를 디자인하면 쏘나타를 탄다는 말을 답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 김수근 선생의 건축사무소 ‘공간’의 벽돌사옥이 안타깝게 팔렸다는 소식과 함께, 김덕수와 공옥진을 데뷔시키며 누구나 부러워했던 ‘공간’의 재정이 한번도 넉넉한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구나 비주류에,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면 늘 이런 거였구나. 강남좌파는 그래 금수저에게나 해당되지 그래.”

이전 정부가 국정원 특활비를 착복했다는 소식에 오히려 관심이 갔던 부분은 국가 돈에 정산을 안 해도 되는 돈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나에게 그런 돈이 필요하다며 친구들 앞에서 웃었다. 변화와 혁신을 위한 돈은 정산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인건비, 강사비, 비품비, 인쇄비와 같은 항목 안에서 과연 우린 어떤 상상을 할 수 있을까? 만주에서 독립운동하시던 분들도 군자금을 쓸 때 5만원 이상이면 현금영수증이나 세금계산서를 달라고 했을까? ‘정산 하지 않아도 되는 돈’은 ‘정산을 꼭 해야 하는 돈’보다 우수하고 월등한 방식이라는 말이 아니다. 혹은 정산을 안 하고 막 쓰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달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중요한 점은 ‘돈’보다 ‘인간활동’이 더 중요하다는 사고가 이 정책에 실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지점과 비슷한 일들에서 나의 까칠함이 발동한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먼저 하자는 거다. 우리의 생각이 이 일을 하게 하는지를 말이다.

혁신적인 일들은 ‘혁신적 정산’이 필요하다. 예술가들을 공무원 본인들처럼 서류전문가로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공무원 중 알아듣지 못하거나 혹은 알아들을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까칠해지는 것이다. 당신과 함께 굳이 혁신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 친한 척, 착한 척, 매너 좋은 척만하는 무리속에서 말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상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난 까칠한 방법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대구 중구청 도시재생과와 시간과 공간 연구소는 지난 몇년간 이 ‘정산의 벽’을 넘었다. 북성로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사업은 정산이 없는 사업으로 시민이 근대건축물을 소유하고 리노베이션하고자 함에 4천만원 이상을 지원해왔다. 중구청은 이 사업에 2015년부터 10억원이 넘게, 시민은 5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정산을 하지 않았기에 시민은 오히려 자기 돈을 더 많이 투자했다. 사실 정산을 하지 않은 게 아니다. 북성로에서 시민이 수리한 근대건축물들이 ‘레알 정산’이며 ‘레알 결과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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