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원장의 한의학 레터] 건강염려증

  •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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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06 07:58  |  수정 2018-02-06 07:58  |  발행일 2018-02-06 제21면
불안이 낳은 건강염려증…지나친 걱정·공포가 원인
“병 두려움보다 편안한 마음이 중요
싸워 이긴다는 긍정적인 생각해야”
[최재영 원장의 한의학 레터] 건강염려증

할머니 한 분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다 아픈 것이 뭔가 큰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불안한 표정으로 질문을 해왔다. 대학병원에서 담당교수에게 왜 아픈지 물었더니 우스갯소리로 희귀병이라고 약이 없다고 하며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주었다고 한다. 복용하고는 좀 덜하긴 한데 여전히 힘들다며 하소연이다. 아마 노환으로 아픈 것이라고 여러 번 설명을 들었겠지만 불안함에 납득을 못 하니 희귀병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여기서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은 현재 본인이 느끼는 증상을 견딜 수 없게 만들고 더 나아가 증상을 악화시키는데, 이것 역시 건강염려증의 일례라고 할 수 있다.

슬픈 영화들을 보면 주인공이 건강하게 보이다가 어느 부위가 아픈 느낌이 들어 병원에 갔는데, 시한부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 상황들이 많이 나온다. 그 이후 주인공이 급속히 증상이 악화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병의 진행상 증상이 나타날 때가 되어 그런 부분도 있지만, 마음이 무너져 버리면서 몸이 병을 이겨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병과 싸울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 마음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몇년 전 신종 플루가 유행했을 때, 공부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께서 제자들을 다 불러놓고 신종 플루를 예방할 수 있는 일차적인 치료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여러 처방이 나왔지만 선생님은 전혀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그것은 바로 신종 플루를 너무 의식하지 않아야 된다는 말씀이었다.

요즘 텔레비전을 틀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건강에 관련된 것이다. 정말 값진 정보이며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지만 어설프게 그 정보를 받아들였을 때는 오히려 질병에 대한 불안함만 가중될 수도 있는 것이다.

몇해 전 일산 국립암센터장이 9시 뉴스에 나와 인터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당시 아나운서는 국립암센터는 말기 암 환자들이 가는 곳이라고 들었다면서 그동안 환자들을 많이 보면서 혹시 나을 분과 낫지 않을 분이 구분이 가는지 질문을 던졌다.

암센터장은 바로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구분할 수 있는 기준으로 편안함을 꼽았다. 병이 나을 사람은 뭔가 편안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편할 수 있는지 본인이 궁금해 물어보았다 한다. 환자는 “지금까지 바둥거리며 살았는데 결국 암 말기”라면서 “그 바둥거림을 놓았더니 마음이 너무 편해졌다”는 것이다.

반대로 낫기 힘든 환자는 너무나 불안해하며, 지금까지 내가 이런 방법, 저런 방법으로 해왔는데 결과가 이랬고 여기서는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이냐며 계속 의문을 던지는 경우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앞의 사례가 나을 의지를 포기한 것처럼 보이며, 뒤의 환자가 살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앞의 환자는 정말 모든 것을 포기했다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의 포기란 나을 의지를 상실해 버린 것이 아니라 죽을 수 있다는 것마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말한다. 걱정과 우울, 그리고 공포라는 또 하나의 병을 암에 더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동안 암을 만들어 왔던 과거의 감정들마저 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승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한의학에서는 ‘肯定心思(긍정심사)’라고 한다. 환자에게는 병을 이겨내는 기본적인 마음이며, 의사에게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마음이다.

우리는 항상 예측하지 못하게 아프며, 병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적인 생명을 가졌고 병이란 그 죽음의 전조증상이다. 하지만 병에 대해 공포를 가지게 되면, 이는 싸우기도 전에 백기를 드는 것과 같다. 어떤 일에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해졌을 때는 그 일이 끝나면 다시 회복될 수 있지만, 병에 대해 공포를 가지게 되면 죽기 전에는 해결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불교경전인 ‘금강경’에선 모든 것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된다고 말한다. 그 욕심 중에 아프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가장 큰 욕심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렇듯 사람은 살아가면서 아플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어떤 할머니께서 자꾸 아픈 것 보니 죽을 때가 다 된 모양이라고 하소연했을 때 해준 말이 떠오른다. “아프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현재 내가 삶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가장 큰 증거입니다.”

홍석천기자 hongs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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