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타이밍의 성공학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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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12   |  발행일 2018-02-12 제31면   |  수정 2018-02-12
[월요칼럼] 타이밍의 성공학

Being kodaked(코닥이 되다)는 ‘옛것만 고집하다 망하다’는 뜻의 신조어다. 디지털 생태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파산한 130년 전통의 필름 명가 ‘코닥’을 빗댄 말이다. 사실 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 개발에 성공한 업체다. 하지만 디지털 플랫폼이 구축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디지털 카메라는 세인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한 번은 너무 앞서갔고 또 한 번은 느림보 변신으로 좌절했다.

휴대폰업계의 거인 노키아도 타이밍을 맞추는 데 실패하면서 몰락했다. 노키아가 1996년 내놓은 시제품 ‘노키아 9000 커뮤니케이터’는 e메일과 검색 기능을 갖춘 휴대폰으로 스마트폰의 원조격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와이파이 같은 무선 통신망이 구축되지 않아 실용화될 수 없었다. 그리고 2000년 이후 블랙베리를 선두로 애플과 삼성전자가 글로벌 스마트폰 시대를 열 때는 꾸물거리다 경쟁대열에서 밀려났다. 두 번이나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서 트렌드에 뒤처진 게 코닥과 영락없는 판박이다.

기업 경영이 그럴진대 정부 정책 역시 예외가 될 순 없다. 기실 타이밍과 속도조절은 정책의 성공을 좌우하는 최대 변수다. 최근 부쩍 잦아진 조령모개(朝令暮改)식 정책 엇박자도 타이밍 조절의 실패로 봐야 한다. 유치원·어린이집 영어특별활동, 가상화폐 규제 등을 둘러싼 오락가락 행보는 정부의 불신만 키웠다. 공론화 같은 뜸 들이는 과정이 생략된 탓이다. 조기에 정책적 성과를 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조급증의 발로로 여겨진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 양극화 완화라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과속’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소상공인들에게 과부하가 걸리면서 을과 을의 갈등만 야기하는 형국이다. 정부는 일자리안정자금, 카드 수수료 인하 등으로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어주겠다지만 근본 해결책이 되진 못한다. 일자리안정자금 신청건수는 지난달 말 기준 전체 대상자의 1.5%에 불과했다. 최저임금 인상 체계를 휘젓지 말고 차라리 일자리안정자금 재원으로 저임금층을 직접 지원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탈원전 정책도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가급적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 신재생 에너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원가는 낮아지고 효율성이 높아진다. 너무 서두르면 전력 생산비 부담은 물론 풍력·태양광 발전시설로 인한 난개발도 피할 수 없다. 천천히 갈수록 경제적으로 득인 데다 환경도 보전할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원전기술 사장(死藏)과 탈원전 국가의 ‘원전 수출 딜레마’에 대한 해법이기도 하다. 굴욕외교 논란을 빚은 지난해 12월의 문 대통령 방중도 조급함의 산물 아니었던가. 사드 보복 조기 종식과 평화 올림픽의 초석을 놓겠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까칠한 대응은 국민 자존에 상처를 남겼다. 공을 들였지만 시진핑 주석은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오지 않았다.

정치도 외교도 연애도 요리도 타이밍의 예술이다. 밥도 뜸을 들여야 제맛이 난다. 성급하게 들이대면 백전백패다.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왜 ‘천천히 서두르라’고 했겠나. 역사적으로도 급진개혁은 모두 실패했다. 중종 반정 후 조정에 출사한 조광조는 유교적 이상정치를 현실에 구현하려는 개혁을 시도했지만, 기묘사화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훗날 율곡 이이는 급진적 개혁을 실패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코닥에 밀려 만년 2등이던 후지필름은 필름 제조에서 얻은 기술력을 활용해 2004년부터 화장품·의약품·액정용 필름 등으로 사업을 재편해 나갔다. 변신의 타이밍과 속도는 절묘했다. 후지는 연 24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강고한 기업으로 거듭났다. 문재인정부의 성공 키워드를 묻는다면 필자는 ‘속도 조절’이라고 말하고 싶다. 중국 대부호 쭝칭허우 와하하그룹 회장의 금언(金言)에도 답이 있다. ‘성공하려면 반보만 앞서 가라.’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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