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용기자의 ‘우리곁의 동식물’] 초여름날의 싱그러운 ‘풀잎 사랑’

  • 이지용
  • |
  • 입력 2018-06-22   |  발행일 2018-06-22 제39면   |  수정 2019-03-20
팔공산에서 만나는 식물
바위틈·절벽에 여러해살이풀 고란초
겨울에도 푸른잎, 뿌리제외 약재 사용
백제 의자왕 고란사 약수 이야기 등장
노란색 꽃 피는 희귀식물 국화방망이
앙증맞게 생긴 황백색 꽃 금강애기나리
발길에 차여도 질긴 생명력의 패랭이꽃
꽃잎이 잘고 깊게 갈라진 술패랭이꽃
백색 꽃으로 뒤덮인 진한향기의 밤나무
20180622
고란초.
20180622
밤나무 꽃.

산행하기 좋은 계절은 봄과 가을이다. 물론 여름이나 겨울이라고 등산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높은 기온과 산모기 등과 싸워야 하고, 혹한과 칼바람 등 계절적인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좋은 계절에는 보지 못한 식물들을 만나는 작은 기쁨을 만끽하기도 한다.

‘2014 팔공산자연공원 자연자원조사 보고서’(대구시, 2016)에 따르면 팔공산 생물종은 4천739종인데 그중에서 식물은 1천391종이다.

팔공산 갓바위(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에서 동봉으로 능선을 걷다보면 바위의 북쪽 방향에 붙어 있는 늘 푸른 양치식물(관다발 식물 중에서 꽃이 피지 않고 홀씨(포자)로 번식하는 식물계의 한 문)을 볼 수 있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이 식물은 고란초(皐蘭草)다.

고란초(고란초과)는 바위 틈이나 절벽에 무리를 지어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뿌리줄기가 길게 옆으로 뻗으면서 잎이 달리는데 잎자루는 길이 2~15㎝이고 잎몸은 4~10㎝다. 둥근 홀씨주머니가 잎 뒤에 두 줄로 붙어 있다. 식물에는 시련의 계절인 겨울에도 나무가 아닌 양치식물이 늘 푸른 잎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고란초가 강인한 식물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한방에서는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 전체를 약재로 쓴다고 한다.

고란초는 충남 부여 백마강가에 있는 삼천궁녀의 넋을 기리는 사찰인 고란사의 고란약수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백제 의자왕은 고란사에 있는 약수를 좋아해 매일 물을 떠 오게 했다. 하지만 아무 물이나 가지고 와서 약수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 왕은 약수를 떠 오는 사람이 고란사 주변 절벽에 많이 자라는 풀을 하나씩 띄워서 가져오게 해서 고란약수임을 증명케 했다고 한다. 고란사 주변에 있다고 해서 이 풀을 ‘고란초’라고 불렀다고 한다. 고란초는 국립수목원에서 희귀식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여름 팔공산에서는 국화방망이(국화과)도 만날 수 있다. 이 식물은 깊은 산지의 바위틈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6~8월에 노란색 꽃이 핀다. 높이는 30~60㎝다. 전체에 거미줄 같은 털이 있고 줄기는 곧게 서며 자줏빛이 돈다. 국립수목원에서 특산·희귀식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20180622
금강죽대아재비.
20180622
국화방망이.

금강죽대아재비도 팔공산에서 만나볼 수 있는 식물인데 금강애기나리·진부애기나리로 더 잘 알려진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산의 정상부 근처나 침엽수림 가에서 많이 자란다. 땅 속 줄기는 옆으로 뻗고, 높이는 10~30㎝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피는 작고 앙증맞게 생긴 연한 황백색의 꽃은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원줄기 윗부분의 가지 끝에 1~2개 달린다. 꽃잎에는 자주색 반점이 있다. 열매는 7~8월쯤에 둥글고 붉게 달린다.

산과 들, 길가 등에서 지나는 이의 발길에 차이고 밟히면서도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패랭이꽃도 팔공산에서 볼 수 있다. 순결한 사랑을 의미하는 패랭이꽃은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30㎝ 정도다. 6~8월에 붉은색 꽃이 가지 끝에 1~3개씩 핀다. 꽃잎이 아주 얕게 결각이 되어 있다. 꽃을 뒤집어보면 옛날 서민들이 주로 썼던 패랭이를 닮았다 하여 패랭이꽃이라 부른다.

패랭이꽃은 석죽(石竹)·석죽화(石竹花)라고도 불리는데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중국의 어느 마을에 용감하고 힘이 센 장사가 살고 있었는데 이 장사는 밤만 되면 악령이 나타나서 마을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용맹하고 힘이 강한 장사는 이 악령을 죽이기 위해 산에 올라가서 기다리다 악령이 나타나자 있는 힘껏 악령을 향해 화살을 쏘았는데 너무 힘이 센 장사의 화살은 근처의 바위에 깊숙이 박혀 빼낼 수가 없었다. 나중에 돌에 박힌 화살에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는 예쁜 꽃이 피었는데 사람들은 이 꽃을 바위에서 핀 대나무와 비슷하다고 해 ‘석죽’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서양에서도 패랭이꽃은 중세부터 신부를 치장하는 데 사용됐고 약혼·사랑의 상징이었다.

20180622
패랭이꽃.
20180622
술패랭이꽃.

패랭이꽃과 비슷한 술패랭이꽃이 있다. 연한 홍색 꽃이 피는 술패랭이꽃(석죽과)은 꽃잎이 잘고 깊게 갈라져서 장식용 술처럼 생겨 패랭이꽃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꽃은 가지와 줄기 끝에서 취산꽃차례로 달리는데 향이 좋다.

초여름 팔공산 주변을 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마을이나 도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꽃이 밤나무 꽃이다. 백색의 꽃이 나무를 뒤덮고 있는 모습에 반해 다가가면 밤꽃의 진한 향기에 다시 반한다(?). 사람마다 향기에 대한 취향이 다르겠지만 밤꽃의 약간 비릿한 향기는 오랫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밤나무 꽃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는 스퍼미딘과 스퍼민 때문인데 이 물질은 꽃가루를 퍼뜨리는 벌을 유혹해 번식을 돕는다고 한다. 사람들이 향수를 뿌려 호감을 얻으려고 하듯이.

밤나무는 참나무과의 잎 떨어지는 넓은 잎 큰키나무로 암수 한그루다. 수꽃은 새 가지의 잎이 달린 자리에서 길이 10~15㎝인 꽃차례에 달리며, 암꽃은 수꽃의 아래쪽에 2~3개씩 모여 달린다. 열매는 가시처럼 생긴 껍질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다가 익으면 껍질이 네 갈래로 벌어지면서 드러난다.

많은 식물은 종자에서 싹이 나올 때 종자 껍질을 밀고 올라오는데, 밤나무는 오랫동안 껍질을 그대로 매달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낳은 근본, 즉 조상을 잊지 않는 나무라고 해서 제사를 지낼 때 꼭 밤을 올리고, 사당이나 묘소의 위패를 만들 때도 밤나무 목재를 쓴다. 또한 밤은 다산과 부귀를 상징해 결혼식 폐백 때 자식 많이 낳으라고 대추와 함께 신부에게 던져주는 모습을 지금도 볼 수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식물의 작은 특징에서도 삶의 지혜를 배워온 선조들의 혜안이 그리운 오늘날이다.

글·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