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여경의 날’을 보내며

  • 김수영
  • |
  • 입력 2018-07-05   |  발행일 2018-07-05 제30면   |  수정 2018-10-01
경찰조직 여성 10.8% 불과
채용과정 남성과 분리 모집
인원 적은데다 하급직 몰려
선진국에선 여성경찰 많아
성별따른 고정관념 탈피를
20180705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올해 7월을 여는 첫날은 태풍과 함께 맞이하느라 마음을 졸이긴 했지만 여러모로 뜻깊은 날이다. 지방정부가 민선 7기 새로운 4년을 시작하는 날이고, 지방의회 의원들도 의회를 구성해 의정활동을 시작하는 날이다. 특히 여성들에겐 7월1일이 더욱 각별하다. 매년 7월1일부터 7일까지 실질적인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 법으로 정한 ‘양성평등주간’이기 때문이다. 한편 모르는 사람이 많겠지만 7월1일은 ‘여경의 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여성경찰은 언제부터 등장했을까? 여성경찰은 8·15 광복 직후인 1946년 경무부 공안국에 여자경찰과가 신설되면서 탄생했다. 그 뒤 미군정은 여경을 500명으로 늘려 일선경찰서에 배치하였고, 이들이 여성업무와 아동보호 등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자 중앙에 이어 대구, 부산, 인천에 독립적인 여자경찰서를 설립하게 된다. 여자경찰서는 놀랍게도 서장, 경사, 순경이 모두 여성으로만 구성된 경찰서였다. 대구여자경찰서는 1947년 6월에 설립되어 대구경북 일대의 여성 및 아동보호 업무, 성매매여성 선도, 미장원 영업 감시, 가정문제 해결 등을 맡았다고 한다. 초대서장은 경성사범학교(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전신)를 졸업한 교사 출신의 정복향이었다. 어느 날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벽에 붙은 경찰간부 모집 공고를 보고 ‘이름을 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응모하게 된다. 정복향은 필기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지만 유부녀에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불합격 처리된다. 그녀는 이에 불복, 당초 채용조건에는 기혼자도 응모가 가능하다고 되어 있었다는 점을 들어 강력하게 항의한 결과 합격통보를 받게 된다. 그 덕분에 대구지역 최초의 여자경찰서장이라는 타이틀도 얻게 되었다. 여성경찰이 독립적으로 활동했던 대구여자경찰서는 10년 동안 지속되다 1957년 문을 닫고 만다. 이후 1967년 민간기 피랍사건이 터지면서 공항검색요원으로 여경 채용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여경을 다시 뽑기 시작했고, 대구경북지역에서는 1972년 경북경찰청에서 30여명의 여경을 공채함으로써 비로소 여경 채용이 재개되었다.

여경 역사 72년, 현재 대구지역의 여성경찰은 660명으로 수적으로 많이 증가했다. 하지만 유리천장의 벽은 여전히 높아 1947년 정복향 초대서장을 배출했던 대구여자경찰서가 1957년 제5대 최태향 서장을 끝으로 사라진 후 2007년 설용숙 총경이 여성서장(대구남부경찰서)으로 임용되기까지 다시 5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유리천장을 깨는 것도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지만 이후 얼마나 많은 여성이 그 영역으로 진출할 수 있었는가를 살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최근 3년간 경찰조직 내 여성 비율은 10.8%에 불과했다. 여전히 남성경찰 9명에 여성경찰 1명의 구도다. 반면 채용 경쟁률은 여성경찰이 남성경찰보다 평균 2.7배 더 높았다고 한다. 더구나 상위계급으로 올라갈수록 여성경찰의 비율은 더 떨어지는데, 남성경찰 중 경사 이하 계급은 46.7%인 반면 여성경찰의 80.4%가 경사 이하 하급직에 몰려있다. 이처럼 여성경찰 비율이 낮은 이유는 채용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을 분리 모집해 여성의 채용인원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또한 경찰대는 정원 100명 중 여학생 수를 12명으로 제한하고 있고, 간부후보생 선발 시 50명 중 여성은 5명만 선발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랜 기간에도 경찰 내 여성 비율이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경찰청은 2020년부터 우선적으로 경찰대와 간부후보생 선발에서 남녀 통합모집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반 경찰 통합채용에 대해서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여성경찰이 증가하면 치안력이 줄어든다고 우려하지만 여성경찰이 많은 선진국을 보면 이도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이 작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제72회 여경의 날’을 보내면서 여성경찰의 비율도 역할도 획기적으로 늘어나 ‘여경’이란 말도 ‘여경의 날’도 별도로 필요 없는 날이 빨리 오길 바라본다.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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