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대구 취수원 이전과 ‘낙동강물 신사협정’

  • 김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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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31   |  발행일 2018-07-31 제26면   |  수정 2018-07-31
유해 물질 검출 대구수돗물
그렇지 않은 구미 낙동강물
2급수라는 이름으로 동일시
비교하는 것은 납득 어려워
일단 만나 대화부터 해봐야
[화요진단] 대구 취수원 이전과 ‘낙동강물 신사협정’

구미와 대구는 가깝다(30여㎞). 출퇴근시간 길이 번잡할 만큼 왕래 많은 동일 생활권이다. 이런 구미와 대구가 물을 놓고 진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대구의 낙동강 취수원 이전 추진 때문이다.

지난 6월 수돗물 파동이 또 한번 대구를 휩쓸었다. 발음조차 쉽지 않은 유해물질 과불화화합물이 구미산단서 낙동강으로 흘러들었고, 대구시민의 취수원에서 나왔다. 당국은 다른 나라 권고기준에 미치지 않으며 마시는 데 지장 없다고 했다. 검출된 물질을 관리대상 항목에 포함시키겠다는 의례적 답변을 내놓았다. 환경부 차관은 수돗물 한 컵을 깔끔하게 들이켜는 퍼포먼스도 보여줬다. 뻔한 레퍼토리였다. 시민은 믿지 않았고 불신은 가시지 않는다.

1991년 페놀(화학 합성 중간제, 강한 독성) 유출사고, 2004년 발암물질 1,4-다이옥산 유출, 2006년 퍼클로레이트(LCD판 제조 시 세정·살균제) 유출, 2009년 1,4-다이옥산 유출, 2012년과 2013년 불산(반도체 산업 필수물질, 강한 독성) 유출…. 대구 수돗물 파동 중심에는 낙동강 변 구미산단이 있다. 구미산단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은 1천600여종(2015년 기준)이지만 취수 원수에서 확인할 수 있는 물질은 최신 기술로도 270여 가지뿐이다.

2014년 11월부터 가동한 ‘구미산단 화학물질 통합관리시스템’(대구지방환경청, 구미상공회의소, 대구녹색환경지원센터 공동)도 이번 과불화화합물 유출사고를 막지 못했다. 개별 사업장 하나하나를 관리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장담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환경부 관계자조차 업체마다 어떤 화학물질을 쓰는지 제품명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환경부는 폐수 무방류 시스템을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역삼투압(reverse osmosis) 방식을 적용해 처리하는 과정에서 20% 정도의 고농도 폐수가 발생해 다시 하수처리장에 유입되고, 낙동강으로 흘러들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유해물질을 상당수 걸러낼 수는 있지만 근본 대책은 못 된다는 것이다.

대구는 절박하다. 권영진 시장은 직을 건다는 각오로 취수원을 이전하겠다고 천명했다. 정부 주도 공동협의체 구성을 건의했고, 시 차원의 맑은물TF도 출범시켰다. 구미는 단호하다. “구미와 대구의 물은 다 같은 2급수다. 굳이 구미에서 퍼갈 이유가 없다.” 구미가 사용할 물 40만t에 대구의 물 55만t까지 퍼 올리면 물 부족, 수질 악화의 이중고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환경단체도 완강하다. 대구 취수원 이전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수질관리 소홀로 낙동강 하류 수질이 나빠져 부산경남과의 갈등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단다.

문제의 핵심은 대구 취수원과 지근의 상류에 구미산단이 있다는 것이다. 유해물질이 유출될 경우 놀라고 긴장하는 쪽은 대구시민이라는 점이다. 관리항목에도 들어 있지 않은 유해물질이 검출되는 물과 그렇지 않은 물을 동급으로 비교하는 것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 낙동강 수질 관리는 대구 취수원이 상류로 이전하든 하지 않든 강화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정부도 지자체도 분명히 인식해야 하고, 실천해야 한다. 시민사회단체의 엄정한 눈이 지켜보고 있고, 단결된 시민들의 분노한 목소리가 있다. 물 관리는 지금보다 훨씬 엄격하고 첨단화할 것이다.

대구와 구미의 물 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은 보다시피 불안과 불신이다. 낙동강 하류지역과 대구의 관계 역시 물 관리 소홀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문제다. 대화부터 하자. 같은 테이블에 앉아 얼굴 맞대고 깊이 토론해 보자.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 불신의 강을 건너 합의점을 찾는다면, 대구시와 구미시·경북도, 대구시와 낙동강 하류 지자체 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확히 하고, 불망(不忘)의 약속을 담은 ‘낙동강물 신사협정’이라도 맺자. 보증인으로는 물관리의 주체인 정부만 한 기관이 없을 것이다(“취수원 이전은 합리성에 문제 있다. 낙동강 물 정수해서 쓰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는 환경부 장관의 비합리적 발언이 있긴 했지만).

대구시민에게도 구미시민에게도 낙동강 하류의 주민에게도 안전한 물은 복지다. 원초적 복지다. 생명이다.

김기오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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