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영웅 이야기가 아니라 병사들 ‘피의 역사’

  • 유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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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1   |  발행일 2018-08-11 제16면   |  수정 2018-08-11
전쟁의 재발견
선사시대 부족전투∼이라크전까지
치열하게 싸운 병사들의 이야기
승패 원인과 전략·기술 등 담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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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군이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의 중북부 거점 도시 하위자로 진입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900만명의 사상자를 낸 1차 세계대전은 유럽인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대규모 살상률, 거대한 전선, 전면적인 기계화 전쟁, 독가스의 살포, 전차전의 시작 등 1차 세계대전은 전쟁사의 신기원을 열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탱크가 첫선을 보였을 때 사람들은 탱크를 신무기라며 지지를 보냈다. 이후에 독가스가 전면적으로 등장했는데 독가스는 탱크와는 반대로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이유는 정당하지 못한 전쟁 수행 방식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독가스는 다른 무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죽음을 초래했다. 영국군 6천명, 독일군 9천명, 프랑스군 8천명 정도가 독가스에 희생됐다.

이처럼 이 책은 전쟁을 다룬다. 하지만 다른 책과는 조금 다르다. 다른 책들이 문화적·지형적·사회적으로 전쟁을 다뤘다면 이 책은 전쟁터에서 피를 쏟으며 죽어간 ‘병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참혹한 전장 속에서 직접 적군과 싸운 병사들의 처절한 생존과 죽음을 그린 ‘밑에서 본 역사’인 것이다. 병사들은 어떻게 싸웠으며 어떤 문화와 전략이 그들을 전장으로 이끌었는지, 어떤 무기로 치명적인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죽음의 위험에 직면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등을 볼 수 있다. 전쟁의 역사 주변부에만 늘 머물던 병사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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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스티븐슨 지음/ 조행복 옮김/ 교양인/ 648쪽/ 2만8천원

책은 전쟁을 연대기로 구성했다. 선사 시대의 부족 전투부터 고대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전쟁, 알렉산드로 대왕의 전쟁, 중세 십자군 전쟁, 유럽의 왕위 계승 전쟁, 미국의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두 차례의 세계대전, 현대의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까지 다양한 전쟁과 전투를 만날 수 있다. 고대의 전사들은 왜 일 대 일 전투를 선호했는지, 중세의 기사들은 왜 말 위에서 싸웠는지, 아군이 공습을 벌이기 전에 장애물을 제거하려고 쏟아부은 예비 포격은 과연 효과적이었는지 등 전쟁사에서 우리가 궁금해 할 법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전쟁 전개뿐만 아니라 책은 전쟁의 기억 또한 강조한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독재자 임모탄 조는 물과 기름을 차지하고 인류를 지배한다. 임모탄의 곁에는 그를 신처럼 따르며 숭배하는 전사들인 ‘워보이’가 있다. 어느날 한 워보이는 임모탄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기꺼이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다. 당당하게 죽음에 임하며 외치는 최후의 말은 ‘기억해줘’였다. 동료들은 그를 보며 ‘기억할 게’라고 답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살아남은 워보이들은 희생당한 워보이들을 잊는다. 저자는 책에서 “기억이 우리를 망각에서 구원할 수 있다는 관념은 역사가의 교묘한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억하고 기념하는 행위는 인류만큼이나 오래된 마법을 불러낸다”고 말한다. 우리는 전쟁을 기록하면서 원인과 결과, 승패, 전략과 전술 등을 기록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와 같은 기록은 너무나 논리적이고 차분하며 깨끗하다고 지적한다. 피가 낭자한 참혹함이나 살육에서 오는 쾌락과 체념과 죄책감이 부족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뛰어난 전쟁 역사가 빅터 데이비스 핸슨은 전쟁을 “기관총의 총탄이 사춘기 청년의 이마에 박히는” “이름 없는 갈리아인의 복부를 갈라 동맥과 장기를 도려내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전쟁은 몇몇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병사와 그 병사들의 피가 만든 것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이와 같은 피의 역사를 담대하고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전쟁을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의 1장은 고대, 2장은 중세, 3장은 흑색 화약의 시대, 4장은 미국 남북전쟁 시대, 5장은 식민지전쟁 시대, 6·7장은 각각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다루고, 8장은 현대를 배경으로 삼는다. 이외에도 두 개의 부록이 있다. 첫 부록은 전장 의학의 역사를 간략하게 서술한 글이다. 죽이기 위한 전쟁의 현장에서 역설적으로 사람을 살리려고 애쓴 구원의 역사를 볼 수 있다. 둘째 부록은 본문에 등장하는 주요 전쟁과 전투를 정리했다. 싸움의 원인과 승패의 결과를 담았다.

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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