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올랭피아가 당당한 이유

  • 서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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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4   |  발행일 2018-08-14 제30면   |  수정 2018-08-14
[취재수첩] 올랭피아가 당당한 이유
서정혁기자<사회부>

지난 5월16일 전석복지재단은 대구시립희망원 운영권을 포기했다. 전석재단은 희망원 운영권을 반납하며 언론과 대구시 등 외부적 요인이 문제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희망원 내부는 곪을 대로 곪았다. 일부 원장의 무능력과 무책임, 내부 권력다툼, 이를 묵과하는 재단 등 희망원 내부 문제는 임계점을 넘고 있었다. 희망원 운영권을 포기한 날 전석재단 한 간부는 “희망원 운영과 관련해 안팎으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일련의 사태로 ‘사회복지사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했던 사회복지협의회 ‘공대위’는 전석재단의 포기로 설 곳을 잃었다. 그들은 ‘체면치레’를 선택했다. 공대위 간부는 “희망원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지난 10개월 동안 이사장과 직원들 모두 정말 고생했다”며 1천명의 거주인을 남겨둔 채 떠나는 전석재단을 오히려 응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그들의 체면치레는 과거의 행적에서도 드러난다. 사회복지협의회 한 간부는 2016년 희망원 사태가 처음 알려지며 논란의 중심에 서자 ‘언론이 희망원 사태를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다’고 했다. 현장에 있던 사회복지사가 ‘희망원 사태를 제대로 알고 말하느냐’고 반발하자 답을 하지 않았다. 희망원 관련 의혹들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관계자가 구속될 때도 그들은 입을 굳게 다물며 끝까지 체면을 지켰다.

그들이 별 문제 없이 잘 운영됐다고 주장한 희망원에서 최근 여성 거주인 불법촬영, 시설 미복귀자 미신고, 쓰러진 거주인 방치, 시설 원장의 공금유용 등이 있었다는 투서가 접수돼 대구시가 점검에 나서자 이들은 또다시 침묵을 택했다. 지난 4월 대구시와 충북도의 지도점검 결과를 보도하자 사회복지사 명예훼손, 허위 및 거짓이라고 즉각 반박하며 집회에 나섰던 모습과는 크게 대비된다.

최근 희망원에서 연이어 발생한 사건들을 보며 거주인을 고려하지 않은 사회복지사와 시설 간부들, 그리고 원장들의 행위가 오히려 사회복지사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아닌지 되레 묻고 싶다. 또 사회복지사들을 대변한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최근 사건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침묵하고 있는 이유 역시 궁금해진다. 이들은 지역에서 시설 비리가 터질 때마다 자성의 목소리를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들의 행태를 보며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란 작품이 떠올랐다. 매춘부인 올랭피아가 옷을 벗은 채 정면을 당당하게 응시하는 그림은 당시 군중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성병인 매독이 감기처럼 흔한 질병이었지만 ‘절대 선’을 외쳤던 위선 가득한 19세기였음에도, 그들 대부분이 선물과 돈을 바쳐서라도 올랭피아를 원했던 사람이었음에도 겉으로는 올랭피아를 비난했다.

올랭피아는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을 보며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도도한 척하지 마라. 고상한 척하지 마라. 각이 선 중절모와 하얀 셔츠, 그리고 고급스러운 까만 턱시도 안에 숨는다고 해도, 유명한 철학자 이름을 거들먹거려도, 정치가 문제니 사회가 문제니 떠들어대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고.

올랭피아를 비난했던 19세기 군중과 ‘그들’이 겹쳐 보이는 것은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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