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국회의 존재 이유는 도대체 뭔가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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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5   |  발행일 2018-08-15 제22면   |  수정 2018-09-21
특활비로 밥값, 생활비까지
약속했던 개헌도 합의 못해
선거구개편 논의는 제자리
사사건건 대립만하는 국회
언제 ‘꽃’같은 존재되려나
20180815
지현배 동국대 파라미타칼리지 교수

여름 더위가 입추를 지나서도 누그러들지 않는다. 올여름 내내 폭염이라는 말을 일상으로 듣고 있다. 낮 기온 35℃ 정도는 오히려 가볍게 느껴진다. 네이버에 ‘더위’ 연관 검색어를 보면 졸음, 내일의 날씨, 은행 쉼터 등이다. 내일은 어떠한지, 그것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지 등이 관심사로 확인된다. 1990년대까지 더위의 연관어로 불쾌지수가 있었다. 날씨가 더워지면 불쾌의 감정 지수가 올라가니 서로를 배려하고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읽히는 지수였다.

최근 우리의 불쾌지수를 올리는 사건으로 자동차 화재를 꼽을 수 있겠다. 화재가 이어지는데 그것의 원인조차 규명되지 않고 있다. 업체와 정부 기관은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국민은 연일 이어지는 화재 소식에 조마조마하다. 독일인에게 수출된 한국 기업의 자동차에서 같은 일이 벌어져도 이럴까 하는 비판과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안전 점검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리콜 대상이 아닌 차량에서도 화재가 이어지고 있다. 존재만으로 주변까지 불편하게 하는 상황이다.

국회 특활비 폐지에 합의했다는 소식도 불쾌지수를 올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 몫의 특활비는 완전 폐지 여부를 미룬 데다 국회 특활비 일정 부분을 업무추진비로 돌리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어 더욱 그렇다. 특수활동비는 정부 기관의 정상적인 회계와 구분되는 ‘특별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고, 그런 특수성 때문에 어디에 얼마만큼 쓰였는지를 밝히지 않는 것이 오히려 국익에 도움이 될 경우에 쓰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 이유로 특수활동비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부서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의 역할이 첩보원과 다르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그동안 특활비를 밥값 심지어 생활비로 썼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국회의원들은 그간 받았던 특활비를 모두 반납하고 국민 앞에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현실 인식은 무디고 사리 분별력은 흐릿했으며,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에서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았고,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할 귀는 닫혀 있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은 제쳐둔 채 논리와 팩트를 기반으로 한 토론과 의견 수렴은 생략했다. 영수증을 첨부하겠다는 ‘바보 같은’ 소리를 하며 부끄럼 없이 카메라 앞에 서고 SNS에 올렸다. 영수증은 특수활동비와 병립할 수 없다. 그것이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국회의원 자리를 걸고 국민을 설득하고 그 논리를 개발해야 마땅하다. 국민의 비난 수위가 높아지니 약속이나 한 듯이 사이좋게 손바닥을 뒤집음으로써 바닥을 드러냈다.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자 지난 대선 때 자기들 입으로 국민 앞에 약속했던 개헌, 그것에 대해서 국민의 뜻에 반하면서까지 이들은 합의하지 못했다. 현재의 선거구가 민의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지고, 그것의 개선이 시급한 일임에도 이들은 선거구 개편에 합의는커녕 논의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국민의 80%가 지지를 보낸 남북 화해, 판문점 선언에 대해서도 이들은 흔쾌히 합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국민의 불쾌지수를 올리는 데 몰두했다.

세상 모든 것은 존재의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 국회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법원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니가 있다는 것이 나를 존재하게 해/ 니가 있어 나는 살 수 있는 거야.” 가수 김종환이 불렀던 ‘존재의 이유’의 한 대목이다. “내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니가 있기 때문이야.” 국민에게 국회는, 법원은, 정부는 이런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나. 또 김춘수 시인의 ‘꽃’에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꽃과 같은 존재를 기대한다. 지현배 (동국대 파라미타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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