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네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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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20   |  발행일 2018-09-20 제30면   |  수정 2018-09-20
그때 그곳의 과거로 간대도
후회없이 같은선택 했을 것
해야만 하는, 해도 좋은 일이
하고싶은 일들과 부정합땐
생은 가련해지고 세상 혼탁
[여성칼럼] 네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

학창시절 나를 ‘사탕’이라고 부르던 이들이 있었다. 얼핏 들으면 ‘허니’ 류의 애칭으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차마 ‘사탄’이라고는 부르지 못해 끝에 비음을 살짝 버무린 것이 ‘사탕’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좀 미안했던지 당장은 달콤하나 종내는 이를 썩게 만든다는 점에서 ‘사탕’이 맞다고 했다. 물리적으로 가장 많은 철학서적을 읽었고 필요 최소한의 시간만 학교에 머물렀던 그 시절, 그런 내 주변을 맴돌던 이들이었다. 나의 일탈에 자발적으로 동행했던 그들은 오래지 않아 망가진 학업으로 자의반 타의반 되돌아가야 했는데, 멀쩡해 보이는 나는 여전히 그러고 다녔으니 그들에게는 ‘사탄’이 맞을 듯도 하다. 물론 당시 나는 조금 억울했다. 청유형은 고사하고 적극 만류는 못되어도 ‘그대들’의 동행이 불편하다는 내색은 충분히 했었다. 뿌리칠 만큼 훼방 놓지 않았기에 나는 그저 내 일에 몰두했을 뿐이었다. 다만, 내가 숨기려고 했던 것은 아니나 그들이 간과했던 것이 있긴 했다. 학업의 외형을 유지하는 것이 집과 학교로부터 그만큼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임을 체득한 나였기에 수업시간만큼은 고도의 집중력으로 임했고, 또 시험 전 벼락치기에도 자유를 향한 갈망에 값하는 절실함으로 집중했다. 그들은 그런 나를 놓쳤던 것이다.

‘사탕’이든 ‘사탄’이든 신경쓸 겨를 없이 질풍노도의 시기, 답을 구하고자 닥치는 대로 읽었던 철학서적에는 더 많은 ‘물음’들만 가득했다.(철학이 본질적으로 ‘물음’의 학문인 줄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것에 짓눌려 어느 순간 책을 놓고 말았지만, 그때 읽은 파스칼과 니체는 이후로도 여러 번 다시 찾게 되었다.

‘인간의 위대성은 자기가 비참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에 있으며,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비참한 일이나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비참함과 위대함 사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진폭으로 흔들릴 때 이렇게 말하는 파스칼을 만난다. 니체의 ‘운명애(運命愛·Amor Fati)’를 이따금 되뇌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영겁 회귀를 말하며 니체는 이렇게 묻는다. ‘어느 날 악마가 다가와 이 삶이 영원히 반복될 것이라고 속삭인다면, 지금 이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너는 어떠한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 이에 대한 그의 답은 이러하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반복해도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이것이 삶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영겁 회귀가 무목적인 1회성의 영원한 반복을 말한다면, 운명애는 그러한 허무함과 고통들까지도 긍정한다는 것이며, 나아가 이것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서 ‘네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지금부터는 이것이 나의 사랑이 될 것이다’라고 적기도 했다.

공대를 3년이나 다니고선 졸업장을 받지 않은 채로 다음엔 문학을 하겠다고 8년을 해놓고, 지금은 변호사를 하고 있는 내게 사람들은 이렇게 묻곤 한다. 왜 처음부터 법대를 가지 않았냐고, 그렇게 먼 길을 돌아온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느냐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고3이던 그때로, 다시 학력고사를 치르고 문학을 선택했던 그때로 회귀해본다. 그런데 수백 번 시간을 되돌려보아도 지금의 내가 아닌 그때, 그곳, 그 상황에서의 나는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래서 나는 언제고 상대방이 당황할 정도로 참으로 당당하게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노라고 말한다. 그때, 그곳에 있었기에 만났던 사람들, 겪었던 일들이 졸업장이 아니면, 학위가 아니면 깡그리 부정되어도 좋을 그런 것들이 내게는 결코 아니었다. 내 나름의 ‘아모르 파티’는 이렇게 실현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해야만 하는 일, 해도 좋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선 안 되는 일이 그 경계를 허물며 하고 싶은 일과 부정합 관계에 놓일 때 개인의 생은 가련해지고 세상은 혼탁해진다. 지금 벌어지는 안팎의 어지러움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소용돌이 속 어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격려하는 오롯한 선의로, 아모르 파티!

김계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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