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북미 정상회담과 미국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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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29   |  발행일 2018-09-29 제23면   |  수정 2018-09-29
[토요단상] 북미 정상회담과 미국의 한계
박재열 시인·경북대 명예교수

금년 들어 한반도에는 남북 화해의 훈풍이 불어와 산천초목도 다 생기를 얻은 듯하다. 남북정상회담이 세 번이나 열렸고 북미회담도 열려 광복 후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과 대결의 분위기는 사라졌다. 남북관계는 상상보다 더 빠르고 더 긍정적으로 발전해서, 북한도 우리가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희망도 갖게 한다.

이런 기류는 무엇보다도 남북 양 정상 간의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지난 6월 싱가포르 북미회담에서도 북한과 미국의 양 정상은 상당한 신뢰를 쌓았다. 그때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는 ‘딜러’로서 사람을 잘 알아본다고 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나 보니 총명하고 신뢰할 만하다고 하였다. 그 신뢰 위에서 2차 북미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한다. 북미회담에 관련된 저간의 미국 언론 보도를 보면 우리가 미처 모르는 것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미국 언론이나 국민에게 북핵 문제가 다급하고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미국 언론에서 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캐버노라는 대법관 후보자의 상원 청문회를 앞두고 번져가는 그의 성 추문이다. 캐버노 사건이 숙진다 하더라도,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성 추문, 2016년 대선 때 러시아의 개입 여부 문제 등 내놓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다. 북핵 문제는 안보 라인에 있는 외교·안보 담당의 관료, 언론인, 연구원 외에는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지 않다.

또 한 가지는 이 안보 라인에 있는 미국의 관료 등도 한국인의 특유한 정서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들이 북핵 문제를 분석하는 데에는 합리적이다. 그들은 김정은 위원장의 과거 행적을 모아 분류하고 분석하여 그는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문제는 그들이 가진 정보 너머에 있는 다른 차원을 못 읽는 데 있다. 예컨대 한 위정자의 심리나 욕망, 분단국가의 국민이 갖는 특별한 정서를 그들은 못 읽는다. 그것들은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는 사실이 아니라, 한국 국민의 가슴에서 가슴으로만 전해지는 것이기에 그들에게는 안개보다 더 막막한 것이다.

남북의 두 정상이 백두산에 올랐을 때를 예로 들어보자. 한반도의 8천만 동포는 정서적으로 다시 하나가 되는 감격과 환희를 맛보았고 더러는 눈물까지 흘렸다. 지금까지 많은 갈등과 대결에서 흘린 피를 그 성산(聖山)에서 꼭 잡은 두 정상의 손이 다소 치유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서로 미워하지 말자’ ‘이제 내가 먼저 양보하마’. 이때의 고조된 정서가 힘이 되어 민족 화해의 큰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을 미국인이 느낄 수 있을까? 북핵에 대한 그들의 분석과 예단은 지정학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미국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는 거기까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던 폼페이오가 국무부 장관으로 승진하고 그 자리를 물려받은 지나 해스펠이라는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직업 정보원으로 잔뼈가 굵은 전설적인 인물로 정치에 대해서는 입이 대단히 무겁다. 그런데 최근 모교에 가서 작심하고 이런 말을 했다. “북한은 핵을 지렛대로 이익을 챙기려고 해요. 저는 북한이 쉽게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아요.” 겉으로는 대통령의 심기를 생각해서 얌전하게 말했지만 이 말의 진의는 ‘트럼프 네가 아무리 용을 써도 김정은이 당신을 핫바지로 만들고 있어요’라는 경고였다. 미국의 최고 정보기관 수장의 인식이 이렇다.

뉴욕타임스 사설도 비슷한 경고를 내놓았다. ‘남북한의 화해 속도가 너무 빨라 자칫 한미동맹이 다칠 우려가 있다’ ‘한반도의 긴장 완화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가 더 어려워졌다’. 이런 보수파들은 분단민족의 응어리진 정서를 전혀 역지사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역지사지하지 못하니까 김정은을 신뢰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소나마 이런 차원을 넘어선 것이 다행이다. 그가 김정은 위원장에게 신뢰와 감사를 보내는 것이 참으로 기특한 일이다.박재열 시인·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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