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 뉴미디어부
  • |
  • 입력 2018-10-30 07:42  |  수정 2018-10-30 07:42  |  발행일 2018-10-30 제20면
[문화산책]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시월의 끝이 다가온다. 가을의 뒷모습은 노랗게 물든 은행 나뭇잎처럼 화사하지만 마른 낙엽처럼 금방 바스러지는 느낌이다. 공교롭게도 ‘문화 산책’을 걷는 것 역시 막바지에 다다랐다. 필자가 연재하고 있는 웹 소설 또한 끝 무렵이다. 이맘때쯤에는 항상 에필로그를 고민하게 된다.

에필로그(Epilogue)란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이야기가 끝난 뒤에 보충되는 부분을 의미한다. 폭넓게는 끝맺음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지만 후일담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즉 이야기의 본문이라기보다는 추가적으로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한적 결말에 가깝게 쓰인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는 이야기 시작 전에 배경을 설명하거나 흥미를 유도하는 프롤로그(Prologue)가 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이 단어들에 대한 어원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프로메테우스의 불’과 ‘판도라’상자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을 사랑했던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물했다. 이에 분노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절벽에 묶어 독수리들에게 쪼이는 형벌을 내린다. 그리고 그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는 아름다운 여인 판도라와 절대 열어서는 안 될 상자를 선물했다. 형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선물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지만 에피메테우스는 그 말을 무시한 채 판도라와 결혼한다. 그 뒤엔 우리가 아는 것처럼 판도라가 상자를 열게 되었고 거기서 온갖 재앙들이 쏟아져 나와 버린다. 눈치 빠른 분들은 진작 아셨겠지만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에서 유래됐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어로 ‘먼저 생각하는 사람’, 에피메테우스는 ‘나중에 깨우치는 사람’으로 풀이된다.

우리는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칠 때 앞으로 어떤 일들이 전개될지 생각해보고 책을 덮은 뒤엔 미처 몰랐던 사건의 원인이나 의미를 떠올려보곤 한다. 필자도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기 전에 대략적인 스토리라인을 잡고 완결에는 혹시 놓치거나 실수한 점이 없는지 찾으려 노력한다. 삶 역시 이 과정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사람을 만날 때 그 뒤에 펼쳐질 결과를 예상하고, 하던 것을 매듭짓거나 이별의 순간이 오면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곱씹는다. 먼저 생각하고 나중에 깨우치는 것이다.

사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이야기를 쓸 때 반드시 필요한 부분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구성하는 것은 본인 또는 타인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우리의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낙엽바람이 부는 지금 벤치에 앉아 잠시 상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내 인생의 프롤로그는 어디쯤이었으며 에필로그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김휘 (웹 소설 작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