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능력주의 축소가 정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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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5   |  발행일 2018-11-15 제22면   |  수정 2018-11-15
악화가 양화 구축하는 법칙
엘리트주의에 가동되면서
여러 부작용 생기고 있지만
그렇다고 능력주의 대체할
그 무언가가 제시되고 있나
[여성칼럼] 능력주의 축소가 정답은 아니다
김계희 변호사

법정통화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던 16세기 영국에서 돈은 특정 가문, 영주나 왕이 자유롭게 만들어내는 물건이었다. 통화위조와 그 유통이 무겁게 처벌되는 오늘날에도 그 유혹은 너무나 크고 달콤해서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잊을 만하면 등장한다. 그런데 당시엔 그 주체가 왕이나 귀족이었으니 실제 가치가 명목 가치에 미치지 못하는 화폐가 양산되고 일반화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은화를 금화라고 속일 수는 없지만, 6온스짜리 은화를 찍어내면서 실제로 은은 5.5온스만 넣고, 나머지 0.5는 값싼 합금으로 채우는 수법이 횡행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합금을 섞지 않고 중량도 정확한 화폐가 주조되기도 하였으나, 그러한 ‘양화’는 알아본 이들의 주머니에 들어가서는 시장으로 다시 나오지 않았다. 결국 시장에는 더 많은 합금이 섞이고 중량이 더 부족한 ‘악화’만이 남게 되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그레셤의 법칙은 당시 재무관이던 그레셤이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상급의 중고차는 ‘양화’처럼 알아보는 사람에 의해 빼돌려져서 시장에는 점점 상태가 나쁜 중고차만 유통된다든지, 짝퉁이나 불법복제가 판을 치면서 진품이나 정품이 되레 시장에서 쫓겨나는 현상 등에 이르기까지 그레셤의 법칙은 지금도 실생활에서 다양하게 인용되곤 한다.

문제는 이것이 돈이나 물건에서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온 취업과 입시 과정에서의 부정행위가 그러하다. 담임선생님에게 과외를 받는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초등학교 같은 반에 다녔고, 배치 고사 수석이 이사장의 딸이어서 입학식 날 아버지인 이사장은 단상에 오른 딸에게 상패를 건네고, 같은 운동장을 쓰던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엄마라 꽃다발을 안기던, 이른바 가족 잔치에 3월 초순 칼바람을 맞으며 운동장에서 박수부대의 일원이기를 강요받았던 중학생 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이러한 뜨거운 분노가 반갑기조차 하다. 그 시절 담임선생님이 보는 줄 뻔히 아는 일기장에 유체이탈 화법으로 또박또박 그 부당함을 적는 일이 담임선생님에게 과외를 받지 않는 아이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항의였고, 또 중학교 입학식에선 전후 사정을 알지 못한 채 성실한 박수부대가 되었다가 뒤늦게 잠시 억울해한 게 전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사장 딸은 수석입학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급격한 학업 부진을 보이며 다시는 단상에 오르지 못했는데, 그 때문에 수석 입학이라는 꼬리표가 그 아이에게 되레 족쇄가 된 양상이라 다들 측은하게 여기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채점 권한을 부여받았을 때 나와 자신의 답안지를 고쳐서 자신이 1등을 했다는 고백을 최근에 들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전혀 기억에 없는 일이고, 이후 과외가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던 시기에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학력고사 세대이기에 그러한 일들이 나에게는 불의에 대한 감수성으로나 남았을 뿐 사실상 불이익은 없었다고 할 것이다. 또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처음으로 법전을 펼쳐 들고 채무자와 채권자조차 제대로 구별하지 못해 헤매면서 공부를 시작해 사법시험을 보고 변호사자격을 얻었으니, 나는 누가 뭐래도 능력주의가 제공하는 마지막 사다리에 올라탈 수 있었던 행운아였다.

엘리트주의가 사회를 망친다는 주장은 ‘똑똑함의 숭배’의 저자 크리스토퍼 헤이즈뿐만 아니라 우리 식으로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강준만의 경우에도 일면 타당한 것이 사실이다. 엘리트주의에 그레셤의 법칙이 가동되면서 최근 전세계적으로 그 폐해가 극심했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비판은 충분히 옳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능력주의를 대체할 더 나은 무언가를 제시하고 있는가? ‘개천을 우리의 꿈과 희망의 무대로 삼자’라든지,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가 과연 능력주의를 상당 부분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도입된 현 제도들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더 현명하고 더 용기있는 수험생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답을 구해본다.김계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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