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혁신의 길] 일본을 가다 ⑤·끝 -교토대학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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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26 07:36  |  수정 2018-12-26 07:36  |  발행일 2018-12-26 제6면
노벨상 수상자 17명 배출 비결 ‘좋아서 연구하는 환경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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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대를 상징하는 시계탑 전경. 예전에는 총장 집무실이 있었으나 현재는 주민을 위한 다양한 공간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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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대 캠퍼스 풍경.

일본의 고도(古都) 교토에 위치한 교토대학교는 자타 공인 일본 최고 명문으로 1897년 개교했다. 1949년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 교수를 비롯해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혼조 다스쿠 특별교수 등 지금까지 17명(동문 포함)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학부생 1만3천여 명, 대학원생 9천300여 명에서 보듯 학문연구 기능이 강한 대학이다. 교직원은 5천500명 정도. 캠퍼스는 요시다 캠퍼스, 우지 캠퍼스, 가츠라 캠퍼스가 반경 10㎞ 내에 있다. 요시다 캠퍼스가 본캠퍼스다. 2019년 QS세계대학순위가 35위로 도쿄대(23위)에 이어 일본 2위를 차지했다. 2018년 Times Higher Education(THE) 랭킹은 일본 1위다. 전체적으로 도쿄대에 밀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도쿄대와 쌍벽을 이룬다.

◆연구 자체가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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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하지매 코 네이져 국제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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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교토대 혼조 교수가 노벨상을 받고 있다.

매년 10월 노벨상 수상자 결정 시즌이 되면 교토대 정문 도로변에는 방송국 중계차량이 진을 친다. 학교 한 연구실에서는 정장에 넥타이를 맨 교수가 노벨상 수상 소감을 다듬고 있고, 대학 홍보실은 기자회견장을 마련한다. 교토대 소속 수상자가 발표되면 곧바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대학, 후보자, 언론이 모두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연례행사가 될 정도로 교토대는 매년 노벨수상자 후보를 배출하고 있다. 그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데이비드 하지매 코네이저 국제홍보실장은 “노벨상 수상을 목표로 연구하는 연구자는 한 명도 없다”고 단언했다. 교토대 연구자들은 목적을 갖고 연구하는 게 아니라 연구 자체에 목적이 있다고 코네이져 실장은 강조했다. 자신의 연구를 좇아가는 자세, 연구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혼조 다스쿠 교수도 단기성과가 아닌 수십년에 걸친 연구성과가 합쳐져서 결실을 본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새로운 현상을 발견한 후 인간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지, 어떤 분야에 사용될 수 있는지를 오랜 시간 연구하고 있다. 교토대 연구자 가운데는 66년 동안 암흑 속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고, 50년 동안 바다만 관찰하면서 새로운 발견을 한 학자도 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연구가 의미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고, 어떤 결말이 날지도 모르고, 인간에게 유용한지 아닌지도 모르지만 오랜 시간 데이터가 쌓이고 분석 결과가 더해지면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코네이저 실장이 알고 있는 한 대학원생은 논문을 쓰기 위해 10년 동안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그 연구과제를 지도하는 교수도, 이를 받아들이는 학생도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설명이다. 이런 연구는 기초연구분야가 더 활발하고, 연구의 출구나 성과가 없는 상태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많이 실패하기도 하지만 누구도 할 수 없는 연구업적을 쌓기도 한다는 것이 코네이져 실장의 설명이다.

◆자유스러운 학풍

교토대 졸업식은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학생들이 온갖 치장을 하고 나타난다. 졸업식이라기보다는 코스프레 현장을 방불케 한다. 저마다 독특한 장식으로 자유분방함을 만끽하는 것이다. 또 구마노기숙사 학생들은 1년에 한 번 학교 상징인 시계탑 건물 점거에 나선다. 이 건물은 과거 총장 집무실이 있던 곳으로 학생들은 자유 학풍을 지키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 같은 이벤트성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학생자치가 억압돼 가고 있는 것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자 ‘자유학풍’을 지키려고 하는 몸부림이다. 점거 시도 소식이 알려지면 대학 홍보과 직원들은 스크럼을 짜 인간벽을 만들고 학생들이 시계탑을 점거하지 못하도록 제지하는 퍼포먼스를 한다.


2019년 QS세계대학순위 35위
자타공인하는 일본 최고의 명문
자율성 보장받은 교수·연구자
수십년 동안 한 가지 주제 탐구
누구도 할 수 없는 성과 쌓기도

학생들 자유학풍 수호 의지 강해
매년 시계탑 점거 퍼포먼스 펼쳐
문과·이과 경중 따로 있지 않아
인문사회계와 융합하는 게 중요


교토대의 자유학풍은 학교 그 자체라 할 정도로 뿌리 깊고, 교수·학생·직원들의 피 속에 흐르고 있다. 교토대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생각의 자유, 학문의 자유, 학사운영의 자유 등 모든 분야에 자유학풍이 녹아 있다. 특히 교토대는 연구분야에서 교수와 연구자들에게 상당한 자율성을 보장한다. 발상과 연구에 대한 자유가 많은 편이다. 교토대에서 일정 수준의 연구력을 인정 받은 뒤에는 연구 지원을 받기가 용이하다. 경력있는 교수는 물론 젊은 연구원과 학생들이 연구해 나가는 과정이 자유롭다. 교토대는 기본적으로 젊은 연구원에게 ‘자유로운 연구환경’과 ‘장기간 연구’를 지원하는 풍토가 조성돼 있다. 이 같은 교토대의 자유연구 풍토에 대해 8년 전 문부과학성이 제동을 걸려 했지만 실패했다. 기초연구에 대한 필요·불필요를 판별하려 하자 학교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결국 철회했던 것. 기초학문의 자유연구는 일본 대학의 공통된 현상이지만 교토대가 더 잘 돼 있다.

학생들도 자유를 만끽한다. 너무 자유스러운 학풍에 매몰된 나머지 학점을 날리거나 유급하는 학생도 많다. 특정 학부는 4년 동안 체계적인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도 수두룩하다. 우등생을 입학시켜 폐인(廢人)을 양산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교토대 자유학풍은 상상 이상이다. 교토대가 일본 내 최고 명문대로 자리매김하고, 기초학문 분야에서 세계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배경 가운데 하나는 이런 자유스러운 학풍이 바닥에 깔려 있다.

교토대의 자유학풍은 2001년 12월4일 교토대학평의회에서 결정된 대학 기본이념 제정에도 잘 반영돼 있다. 이 기본이념에 따르면 ‘자유의 학풍’을 교토대의 ‘빛나는 개성’으로 평가하고 앞으로도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 운영에 있어서도 자유학풍을 해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1960년 과격한 학생운동으로 자유학풍이 위협받았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던 지금의 교수진들이 최근 학생들의 자율에 대해 규제를 가하려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경관훼손을 이유로 교내에 대자보도 마음대로 붙이지 못하게 하고, 기숙사의 자율운영에 대해 안전성을 이유로 벌칙조항을 강화하는 등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지난해부터 출석관리를 엄격히 하고 동아리 홍보물 입간판도 없애 학생들 처지에서는 자유가 점점 억압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문·이융합

2년 전 문부과학성은 문과보다 이과를 더 지원해 미래발전을 도모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그러자 여러 대학에서 ‘인문·이공계 둘 다 중요한 학문’이라고 공표하고 정부의 방침에 이의를 제기했다. 당시 국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이던 야마기와 주이치 교토대 총장도 인문계를 축소하라는 정부 방침에 반발했다. 야마기와 총장은 당시 “과학은 과학 그 자체로 큰 도움이 안 된다. 과학은 인간사회와 반드시 관련성이 있어야 된다. 이공계의 과학기술은 인문학적 입장에서 사용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과학기술을 사회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인문학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학부 교수인 야마기와 총장은 직접 아프리카로 가서 인간 사회의 앞 영장류인 고릴라 연구를 통해 인간공동체 형성 기원을 연구하고 있는 교수로 유명하다. 고릴라 연구를 통해 인간의 사고방식, 윤리, 도덕성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연구한 것이다. 야마기와 총장 등의 반대로 문과계열 축소는 유야무야됐지만 아직도 일본의 국가적인 이슈로 남아 있다. 이에 앞서 마쓰모토 히로시 전 총장은 일본 정부의 국립대 법인화로 예산이 줄어들자 종합인간학부 해체를 골자로 한 대학개혁안을 발표했다가 교수들의 엄청난 반발로 물러선 바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세계대학 순위 100위 이내를 목표로 진행하고 있는 슈퍼글로벌창성대학사업에서 A형에 선정된 13개 대학 가운데 하나인 교토대는 학교 비전을 ‘인문·사회·과학분야 균형발전’으로 설정해 주목받았다. 교토대는 학문연구에 있어 문과와 이과의 경중이 따로 있을 수 없으며, 더 나아가 이공계와 인문사회계를 융합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cross curricular harmony among the humanity and the science’라는 말처럼 교토대는 과거부터 문(文)과 이(理)를 같이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다양한 아이디어(발상)는 문·이 융합에서 단서와 힌트가 나온다는 것이다.

글·사진=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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