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그 근거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는지…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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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4   |  발행일 2019-01-14 제30면   |  수정 2019-01-14
조금은 당돌한 기자의 질문에
화난표정으로 맹비난하는 與
시나리오 없앤 대통령회견은
뭘 물어도 답변할 수 있다는
청와대의 자신감이 아니었나
[송국건정치칼럼] 그 근거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는지…

필자는 과거 김대중·노무현정부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전국에 TV로 생중계되는 대통령 기자회견 때 각각 한 차례씩, 두번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대통령 기자회견 질문자는 15명 안팎이었는데, 생방송 전에 순서와 내용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 기자실 회의를 열어 신문·방송, 전국지·지역지·경제지·외신 등 매체 종류별로 질문자를 할당했다. 질문내용은 직접 마이크를 잡을 기자의 의견을 가급적 그대로 따르되, 중복되는 경우만 교통정리를 했다. 이 과정까지는 대통령 비서실에서 일절 개입할 수 없었다(그 이전 권위주의 정부에선 질문 내용을 정하는 데도 청와대가 참견했다고 한다). 기자실에서 질문자와 질문내용이 확정되면 비서실에 ‘통보’했는데, 이는 답변준비를 충실히 해 달라는 차원이었다. 필자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건설업과 유통업 침체에 따른 지방경제난 해결 방안’을 물었고, 대통령의 전체적인 답변과 관련부처 장관 두 명의 보충설명을 즉석에서 들었다.

이명박·박근혜정부도 이어받은 그런 방식의 대통령 기자회견은 단골 시빗거리였다. 미리 짜둔 각본에 따라 대통령이 하고싶은 말만 하는 회견이란 지적이었다. 실제로 기자 질문에 대한 대통령 답변이 미진하다고 느껴도 보충질문을 하며 따져묻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과거 박정희 대통령의 ‘연두교서’나 전두환 대통령의 ‘국정연설’과 다를 바 없다는 말도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 가진 2018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격식을 깼다. 대통령이 모두연설 원고를 읽은 뒤부터는 아무런 시나리오 없이 직접 질문자를 지목했다. 청와대 기자들은 질문기회를 잡기 위해 치열한 눈치경쟁을 벌였고, 약간의 혼선은 있었지만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올해도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직접 진행했다. 선택된 25명의 기자가 다양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전체적으론 틀을 잡아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본질적 모순이 발견됐다.

새해 국정운영 기조를 밝힌 기자회견 내용을 덮을 만큼의 화제가 돼버린 경기방송 김예령 기자의 질문과 대통령의 답변, 그리고 이를 둘러싼 날선 공방이다. 질문 요지는 “여론이 냉랭하다. 그럼에도 변화하지 않으려는 이유와 그 자신감의 근거를 알고 싶다”였다. 문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우리 사회가 양극화 불평등 구조를 바꾸지 않고선 지속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오늘 제가 모두 기자회견 30분 내내 말씀 드렸다”는 취지로 짧게 답하고 넘어갔다. 이에 네티즌들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무례하다”는 공격과 “사이다 질문”이란 응원이 엇갈렸다. 특히 여당인 민주당 대변인들은 청와대 출입기자에게 원색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술 한 잔 먹고 푸념할 때 할 얘기”라고 했고, 이재정 원내대변인은 “싸가지 문제보다 실력 부족의 문제”라고 했다.

이전 정부까지 질문 시나리오를 만든 건 중복질문 방지와 충실한 답변 유도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통령을 난처하게 만드는 돌발질문을 차단하기 위한 측면이 더 강했다. 만일 이번에도 시나리오가 있었다면 국민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을 묻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필자는 문재인정부 청와대가 대통령 기자회견 시나리오를 없애버렸을 때 ‘뭘 물어도 대답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받아들였다. 김 기자의 질문이 좀 당돌하지만 대통령이 근거들을 제시하며 ‘당장은 어렵지만 점차 잘될 거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란 취지로 답할 줄 알았다. 여당이 대통령 심기경호를 위해 언어폭력성 비난에 나설지도 미처 생각 못했다. 지금은 필자가 묻고 싶다. ‘뭘 물어도 된다는 그 근거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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