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인형의 집에 살고 있진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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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3 07:55  |  수정 2019-01-23 07:55  |  발행일 2019-01-23 제23면
[문화산책] 인형의 집에 살고 있진 않나요?

우리 극장의 2019년 첫 기획공연이 이번 주 무대에 올려진다. 사실주의 근대극의 선구자라 칭송되는 헨릭 입센의 작품으로 대구시립극단이 제작한 연극 ‘인형의 집’이다. 내용은 가부장적인 남편으로부터 귀여움을 받고 순종하던 노라가 어느 날 닥친 부부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그동안 남편의 인형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고 자아를 찾기 위해 가출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1879년 발표될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가치관을 깨고 노라가 가출을 한다는 결말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주체적 여성의 권리를 이야기하며 여성해방을 일깨우는 작품으로 인식되었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무조건적인 규범과 관습에 저항하는 인류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이 발표된 지 140년이 지났지만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여전하다. 특정 집단이 만든 관습을 개인에게 강요하고 그것을 따르지 않을 경우 그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관습에 매여 잘못된 사회적 규범을 인지조차 못한 적도 있었지만 개인의 삶이 중시될수록 나를 찾으려는 노력, 주체적인 삶에 대한 관심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유독 올해 신간도서 코너에는 주체적 삶을 주제로 한 도서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중 지난해 12월 나온 김민섭의 저서 ‘훈(訓)의 시대’를 잠시 소개하면 저자는 ‘훈’이라는 단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훈’은 집단에 소속된 개인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의 언어이고, 지배계급이 생산·해석·유통하는 권력의 언어이며 한시대의 욕망이 집약된 언어다. 저자는 우리가 이른바 ‘훈’이라는 것들에 갇혀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에 맞추어 살려고 노력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고 보면 학교에서의 ‘급훈’과 ‘교훈’, 가정에서의 ‘가훈’은 우리에게 그 사회에서 어떻게 행동하여야 할지를 알렸고 우리는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 왔다.

‘인형의 집’ 공연을 준비하면서 ‘진정한 나의 삶’에 대해 되돌아 보게 되었다. 어쩌면 사회가 정한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익숙해서 혹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것을 미루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체적 인간으로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 관객들도 혹시 인형의 집에 살고 있진 않은지, 객체로서의 삶이 아닌 주인으로의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현정 (어울아트센터 공연기획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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