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공허한 균형발전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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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12   |  발행일 2019-03-12 제30면   |  수정 2019-03-12
균형발전·분권 약속에도
반도체 등 경제 실속은
수도권에 여전히 몰아줘
일자리없는 지방은 고사
공허한 정부 정책 드러나
20190312

공허하다. 문재인정부의 국토 균형발전 정책말이다.

노무현에 이어 문 정부 역시 균형발전을 깃발로 내걸었다. 짜릿한 정치적 흥행도 맛봤다. 문 정부는 2022년까지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대 3으로 조정하겠다며, 올해는 재정분권,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행정·입법 노력을 다하겠다고 거듭 약속한다. 분권과 균형발전의 프로파간다는 선명하다. 비수도권에선 정치 성향보다 앞선 정책 수단이다. 그러다보니 이 정책의 레토릭이 차고 넘친다. 다만, 문 정부에선 좀 더 구체화·수치화로 나열된다. 수치는 상징 표현이다. 그것은 정책의 진정성에서 한발 나아가 영향력을 생산한다. 선거용 어젠다로 이 만한 게 없다.

구체적 카드도 내민다. 최근 문 정부에서 내놓은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사업이 그렇다. 경남권의 남부내륙철도, 대구산업선철도 등 23개 사업에 24조원을 투입한다. 균형발전이자 비수도권 살리기란다. 노골적인 구애다. 수도권에선 선심성 토건사업이라며 대놓고 비아냥댄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하지만, 이런 SOC가 불황에 신음하는 비수도권 경제에 얼마나 도움될까. 예산 24조원을 뿌린다고 하지만, 이 돈의 대부분은 다시 수도권으로 간다. 사업 발주처는 정부 부처이고, 과실 역시 수도권에 본사를 둔 건설 대기업이 따먹게 된다. MB정부의 4대강 사업이 선례다. 당장의 지방 경기진작엔 큰 도움이 안 된다. 암환자에게 보약을 처방하는 셈이다.

정작 알맹이는 지방에 내놓지 않는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바로 그것이다. 10년간 120조원 투자 규모다. 예타조사 면제 사업과는 비교가 안 된다. 지방의 거센 반발에도 용인을 낙점한다. 문 정부 들어 첫 수도권 규제 완화라며, 지방으로 가지 못할 온갖 그럴싸한 이유를 댄다.

정부와 대기업의 이런 논리라면 삼성전자의 중국 반도체 공장은 수도권인 베이징 인근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산시성 시안에 있다. 이곳은 베이징에서 고속철로 5시간 거리다. SK하이닉스 중국 공장 역시 장쑤성 우시에 있다. 상하이에서 차로 2시간30분 거리다. 모두 서울~구미보다 먼 거리다. 다른 국내 대기업의 해외 공장 대부분 해당 국가의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자리한다.

대구경북의 침체는 분권이나 SOC사업의 부재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기업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균형발전의 바탕은 기업과 일자리다. 일자리는 기업이 있으면 당연하게 생긴다. 기업이 있어야 돈이 돌고, 자영업자도, 젊은이도 머물게 된다. 이게 균형발전의 답이다. 그런데도 알짜 기업은 수도권으로 배치하고, 건설 대기업만 좋은 SOC로 지역 경제 활성화 운운하며 지방을 현혹한다.

이들은 비수도권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모른다. 2017년 서울의 국민총소득은 4천365만원, 그에 반해 대구는 2천468만원. 거의 절반 수준이다.

정부는 이율배반적인 정책 모순을 다시 현란한 수사(修辭)로 되메운다. 최근 당·정이 나서 ‘재정분권과 균형발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지방 달래기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재정 분권 강화’ 등 올해 균형발전을 위한 정책 추진을 강조한다. 김두관 참좋은지방정부위원회 상임위원장의 수사는 그 절정이다. “분권이 성장이고 행복이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분권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지금이야말로 분권 개혁을 이룩할 수 있는 최적기다.” 이들이 동원한 언어는 현란하지만 현실성이 없다. 따라서 설득력은 미약하다. 지방의 가치와 지향, 집단 소망이 투사(投射)된 균형발전 구호가 허상이 된다. 그렇지만, 지역민의 분노와 절규는 안중에도 없다.

‘지역에도 국민이 산다.’ 정부 관료와 위정자들은 그래도 이 외침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민심을 이기는 정부, 권력은 없으니까.

윤철희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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