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공공언어 소통의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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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04   |  발행일 2019-07-04 제30면   |  수정 2019-07-04
스마트그리드·바우처·잠제…
공공기관 어려운 용어 남발
국어기본법 실천 노력 부족
국민들이 알기 쉽도록 쓰고
윤택한 생활 누리게 해줘야
[우리말과 한국문학] 공공언어 소통의 방정식
김덕호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스마트그리드, 퍼블리시티권, 바우처, 수의시담, 우심해역, 잠제, 감용기, 폐수오니, 빈산소수괴. 국민은 이런 말들을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용어들은 우리나라 행정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 사용하고 있거나 사용한 적이 있는 공공언어이다.

공공언어란 좁게는 공공기관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사용하는 언어로 공문서, 보도자료, 민원 서식, 법령, 게시문, 안내문, 설명문, 홍보문, 정책 보고, 대국민 담화 등이 있다. 넓게는 공공성을 띤 기사문, 계약서, 제품설명서, 포스터, 광고, 간판, 현수막, 방송언어가 모두 포함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행정, 공공기관과 관련 단체에서 무분별한 외래어, 어려운 한자어, 외계어 수준의 신어 등 일상 언어와 동떨어진 표현을 사용하여 대국민 소통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

1980년대 영국에서는 플레인 잉글리시(Plain English) 운동을 전개하여 영어를 있는 그대로 쉽고 간단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이 운동을 벌이게 된 계기는 1979년 겨울, 영국의 리버풀에서 노부부가 집에서 동사한 사건 때문이었다. 언론이 그 사연을 추적한 결과, 어이없게도 해당 관청의 난방비 신청서류의 용어가 너무 어려워서 이를 이해하지 못한 가난한 노부부는 결국 신청서를 작성하지 못하고 얼어 죽었다는 것이다.

이후 1996년에 쉬운 영어(Easy English) 운동이 전개되었고, 이 운동의 영향으로 2010년 미국에서는 쉬운 언어 쓰기 법(Plain Writing Act)이 제정되었다. 이런 노력으로 영국과 미국에서는 어려운 단어와 표현으로 작성된 많은 정부 문서들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고치는 운동이 꾸준히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법적인 체제가 마련되어 있고, 관련 기관도 꾸준하게 노력하고 있다. 2005년 문체부에서 제정한 ‘국어기본법’의 제14조에는 공공기관은 공문서를 국민들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2014년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쉬운 공공언어 쓰기 길잡이’를 보면 공공언어는 쉬운 어휘로, 간결하고 명료하게, 가능한 한 짧게, 권위적이지 않게 사용하고, 수동태나 외국어를 남용하지 말고, 번역투나 명사를 나열하는 표현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런 법적 기준을 잘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017년 전국 행정, 공공기관에 국어책임관을 지정해야 한다는 국어기본법 제10조가 개정되면서, 현재 중앙행정기관에 1천587명, 지방자치단체에 243명 등 전국적으로 총 1천830명의 국어책임관이 임명되어 있다. 국어책임관의 주요 역할은 원활한 대국민 소통을 위하여 해당 기관에서 쉬운 공공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체부는 전국적으로 20여 개의 국어문화원을 지정하여 국민들이 윤택한 언어생활을 누리고, 공공언어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학계에서는 2018년에 한국공공언어학회가 창립되었고, 올해 5월17일에는 ‘공공언어학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학술토론회’가 국회에서 개최되었다.

공공언어 소통의 방정식에서 ‘참’이라는 목표는 공공언어를 쉽고 바르게 사용하여 국민들이 언어생활을 좀 더 편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해 주는 것이다. 공공언어 소통의 방정식을 잘 풀어내려면 관련 기관의 적절한 제도 마련과 국어책임관의 실천 의지, 국어문화원의 조력과 학계의 학술적 지원, 그리고 국민들의 관심과 같은 열쇠들이 다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참’이라는 목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공언어에서 스마트그리드는 ‘지능형전력망’으로, 퍼블리시티권은 ‘인격표지권’으로, 바우처는 ‘이용권’으로, 수의시담은 ‘가격 협의’로, 오염우심해역은 ‘오염이 심한 해역’으로, 잠제는 ‘수중방파제’로, 감용기는 ‘압축기’로, 폐수오니는 ‘오염침전물’로, 빈산소수괴는 ‘산소 부족 물덩어리’로 바꿔 사용함으로써 국민들의 언어생활이 더욱 쉽고 편하게 이루어질 날을 기대해 본다. 김덕호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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