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바다인문학] 성게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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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9   |  발행일 2019-08-09 제38면   |  수정 2020-09-08
여름에 잡는 검붉은 ‘보라성게’…노란 덩어리 성게알, 미역국과 환상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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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성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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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똥성게

여름철에 이만한 맛이 있을까. 비싼 게 흠이지만 맛과 향기, 그리고 품격으로 볼 때 최고다. 단 배불리 먹기로 친다면 절대 선택해서는 안 된다. 음미하듯 먹어야 한다. 온몸을 가시로 치장을 하고 해조류를 먹고 사는 성게.

성게는 극피동물로 수백 종에 이르지만 우리나라에는 30여종, 그중 보라성게, 말똥성게, 분홍성게 등이 식탁에 오른다. 성게는 생김새에 맞게 밤송이, 밤생이, 밤씨, 밤까시, 앙장구, 운단, 솜, 구살, 율구합 등으로 불렸다. 보라성게는 봄부터 여름까지, 말똥성게는 겨울부터 봄까지 제철이다. 보라성게보다 말똥성게가 더 고소하며 진한 맛이 난다. 우리가 즐겨 찾는 성게알은 사실은 성게의 생식소이다.

성게는 바다에서 막 건졌을 때 은은한 바다맛과 달콤한 향기가 입안에 고인다. 특히 말똥성게는 단맛이 강하다.

겨울부터 봄까지 제철 말똥성게
보라성게보다 고소하고 진한 맛
가시에 독 있어 손질땐 조심해야

제주에서 부르는 성게는 ‘구살’
미역·오분자기와 끓인 ‘구살국’
생으로 먹거나 비빔밥도 맛좋아

겨울철에 먹으면 황금빛 알 가득
깊은 곳에서 물질하는 제주 해녀
얕은 곳에서 물질하는 부산 해녀

성게 개체 증가 인한 해조류 감소
꾸준히 소비돼야 해양생태계 균형
바다숲 조성·정화활동 노력 필요


◆여름바다에서 성게를 탐하다

여름철이면 제주 해녀들은 성게를 잡기 위해 물질을 한다. 이때는 소라와 전복도 금채기다. 하지만 성게는 금채기가 없다. 오히려 더 많이 잡아내야 한다. 바다 숲을 해치는 해적생물로 찍혔기 때문이다. 우도의 연평리, 비양동, 영일동 등 바닷가마을은 물질을 하는 해녀들로 분주하다. 모두 성게를 잡는 중이다. 여름철에 잡는 성게는 보라성게다. 가시가 길고 검붉은 색을 띠고 있다.

몇 년 전, 전남 완도군 생일면 덕우도에서도 선창에서 성게알을 까는 해녀들을 만났다. 해삼을 잡으러 갔던 해녀들이 성게만 가득 잡아왔다. 물속이 흐려서 돌 틈에서 생활하는 해삼을 잡는 데는 실패했지만 대신 보라성게는 많이 잡았다. 주인은 마뜩잖은 얼굴이다. 해삼은 채취량에 따라 해녀와 주인이 나누지만 성게는 오롯이 해녀들 차지다. 남은 일은 선창에서 성게알을 꺼내는 일.

성게알을 손질할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가시에 독이 있어 찔리면 고통이 오래간다. 두꺼운 장갑을 끼고도 조심스럽다. 해녀들은 성게를 맨손으로 잡고 익숙하게 다룬다. 먼저 성게입부터 제거한다. 가위나 칼로 성게알이 다치지 않게 껍질을 두 조각으로 나눈다. 성게알은 5조각으로 나뉘어 벽에 붙어 있다. 차스푼을 사용해 하나씩 성게 알을 꺼낸다. 이 때 알이 뭉게지지 않게 꺼내야 한다. 바닷물로 깨끗하게 씻으며 내장을 제거하면 알이 탱글탱글해지고 단맛도 강해진다. 집에서 손질할 때는 소금물을 준비해야 하지만 물질을 하는 해녀들은 곧바로 바닷가에서 성게알을 꺼낸다. 절대 민물에 씻어선 안 된다.

◆성게알… 민물 엄금

제주에서는 성게를 ‘구살’이라고 한다. 구살을 미역, 오분자기 등과 함께 끓이면 ‘구살국’. 모자반으로 끓이는 몸국과 함께 경조사에 내놓는 제주의 대표음식이다. 성게알과 미역은 환상의 조합. 우럭이나 옥돔은 오래 끓여야 하지만 성게미역국은 불을 끄기 직전에 성게알을 넣어야 한다.

제주 토박이 양용진 셰프가 안내한 향토식당에서 성게미역국을 시켰다. 그는 제주음식 지킴이이자 연구자로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제주지부를 이끌고 있다. 그는 “생물 성게알은 절대 풀어지지 않고 노란 덩어리는 검은 미역국에 너무 잘 어울린다”고 강조했다. 생각해보니 경남 통영 욕지도 해녀의 집에서 주문한 말똥성게알 미역국도 노란 알 덩어리가 유달리 선명했다. 작은 알이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신선했다. 성게는 비리지 않고 부드럽고 고소하다. 짭짤하고 씁쓸한 맛이 교차한다. 술안주로 즐겨찾는 것도 이런 독특한 맛 때문이다. 성게는 생도 좋고 돔 등 고급 생선, 젓갈, 비빔밥용으로도 좋다. 일부 해안지방에서는 말려서 먹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성게알파스타도 내놓는다.

일본 사람만큼 성게알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을까. 일본 오사카 구로몬시장은 오사카여행 때 꼭 들르는 곳이다. 그런데 요즘 여기도 중국여행객한테 접수돼 너무 북적댄다. 그곳에서 꼭 들르는 곳이 수산물 코너다. 이곳에서도 성게알(우니)을 볼 수 있다. 지난해 갔을 때 말똥성게 알을 까서 껍질에 올려넣고 7천엔에 판다. 보라성게는 5천~6천엔이면 먹을 수 있다. 다른 수산물에 비해서 비싼 편이다. 모두 훗카이도 산이다.

일본에서는 홋카이도 우니(성개알)를 최고로 인정하며 쿠릴열도 성게도 알아준다. 미국에서는 산타바바라 성게알, 러시아에서는 사할린산이 품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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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게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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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게알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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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토박이들이 잔칫국으로 부르는 ‘몸국’과 함께 가장 사랑하는 전통음식인 성게알로 끓인 미역국의 일종인 ‘구살국’.

◆겨울에도 성게다

여름철만 아니라 겨울에도 해녀들은 바쁘다. 매년 12월과 1월, 부산 기장 해녀들은 추워도 날씨만 좋으면 물질을 한다. 이 시기에 해녀들이 잡는 것이 앙장구, 바로 말똥성게다. 생김새가 말똥과 비슷하다. 겨울철에는 황금빛 알이 가득하다. 말똥성게는 수심 7m 암초나 바위 밑에 서식한다. 긴 가시를 가지고 있는 보라성게와 다르게 가시가 짧고 강하다.

제주나 부산, 경남 거제 등 남해안 겨울철 수온은 10℃ 초반. 말똥성게를 잡기 위해서는 이때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바닷속이 흐리지 않다면 매일 5시간 작업한다. 그냥 물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가 찾는 것이 아니다. 몸무게에 견줄 만한 바위를 뒤집고 그 아래 숨어 있는 말똥성게를 찾아내야만 한다.

부산 기장과 영도 해녀들 중에는 제주에서 온 해녀가 적잖다. 대체로 깊은 곳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는 제주 해녀, 얕은 곳에서는 부산 해녀가 물질을 한다. 해녀들의 평균 경력은 30~50년. 한 번에 돌을 넘기지 못하고 떨어뜨리면 밑에 있는 성게가 깨진다. 힘들어도 한 번에 넘겨야 한다. 많이 잡을 때는 한 번에 70~100㎏. 이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몇 시간 쪼그리고 앉아서 알을 까야 한다.

회색의 앙장구는 바다 밖으로 나오면 짙은 색으로 변한다. 알이 터지지 않게 옆으로 칼집을 내면서 알을 꺼낸다. 그리고 까만 내장과 알은 분리한다. 알을 꺼낸 후 몇 차례 씻어내며 핀셋으로 이물질을 제거한다. 그렇게 두세 시간 작업해서 수협에 위판해야 통장에 돈이 들어온다. 부산의 해녀들은 여름엔 보라성게, 겨울엔 말똥성게를 잡으며 살아간다. 칠순 넘은 할머니들에게 이보다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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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게를 잡고 돌아오는 해녀들.


◆문화재 등재 해녀, 미래는 밝지 않아

제주 해녀는 2018년 유네스코 세계 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농업유산 등재도 준비 중이다. 바다도 해녀도 늙어가지만 해녀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해녀어업의 미래는 밝지 않다. 물질을 이을 후계자도 없고, 물질을 할 ‘바당(바다)’이 고갈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해녀들이 사용하는 도구는 테왁과 망사리, 고무옷, 수경 그리고 몸을 가라앉히는 납과 오리발이 전부다. 가장 단순한 도구, 가장 원시적인 방식으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어업방식으로 성게를 잡는다. 그게 바로 ‘해녀어업’이다.

제주도 전역 1만4천343㏊ 연안이 작업구역이다. 바당에서 일하는 사람이 여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옛날에는 제주에서 전복을 따는 남자를 포작 또는 포작인이라 했다. 해녀의 전성기였던 1960년대 중반에는 그 수가 2만3천여명에 이르렀다. 지금은 4천여명. 일제강점기 당시 멀리 일본과 러시아까지 물질을 나간 해녀만 해도 많을 때는 5천여명에 이르렀다. 해녀의 감소는 교육기회의 확대, 제주관광의 활성화로 인한 취업기회 확산 등이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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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게의 두 얼굴

성게는 2000년대 초반까지 전량 일본으로 수출했다. 덕분에 어민들 소득향상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중국산 값싼 성게가 일본에 공급되면서 수출이 막혀 국내 성게가 크게 증가했다. 다른 원인도 있겠지만 성게의 증가는 해조류 감소로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성게는 불가사리, 해파리 등과 함께 해적생물로 낙인찍혔다.

해조류 감소는 곧바로 어류의 감소로 이어진다. 어류의 산란장이자 어린 물고기의 서식처인 바다숲이 사라지니 당연한 결과다. 강릉, 울진, 영덕, 포항 연안 조사자료(2014·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를 보면 정상 암반은 38%, 갯녹음 암반은 62%으로 조사되었다. 그 면적이 매년 1천200㏊씩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독도 바다에 성게가 증가하고 갯녹음현상이 확산되자, 우리 바다를 지키기 위해 성게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또 성게 껍질을 깨서 먹는 돌돔 치어까지 방류하고 있다.

해조류는 바다의 1차 생산자이자 이를 기반으로 해양생태계가 유지되고 균형을 이룬다. 우리 식탁에 성게를 올리는 게 바다 생태계 균형에 일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게알 가격은 아직 비싸다. 적정가격의 성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정책도 효과적일 것 같다.

이제 중국산만 아니라 미국산과 일본의 홋카이도산 성게도 들어오고 있다. 점점 어민들에게도 힘들고 바다도 힘들다. 우리 스스로 우리 바다를 자정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 바다를 건강하게 하려면 바다숲을 잘 조성해야 한다. 해조류와 해초류를 바다에 심는 것도 필요하고 바다 오염원을 제거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바다의 관점에서 되짚어 보자. 그 출발은 역시 우리 밥상을 둘러싼 생활용품을 친환경 소재로 사용해주는 것부터다. 일회용이나 플라스틱 사용을 가급적 줄여보자.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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