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아베 도발의 역사적 뿌리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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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02   |  발행일 2019-09-02 제30면   |  수정 2020-09-08
日의 시대착오적 수출규제
과거 美에 당한 그대로 한 듯
中에는 아무런 시비 못걸고
우리에게만 신의 문제 삼아
그 뿌리에는 졸속 한일협정
[아침을 열며] 아베 도발의 역사적 뿌리

일본이 한국에 대해 반도체 부품 3종의 수출을 규제한 지 두 달이 지났다. 그 뒤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빼버렸고, 한국은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파기했다. 미국은 거룩한 원론적 이야기만 하며 오불관언의 자세를 취하다가 한국이 지소미아를 파기하자 화들짝 놀라 한국의 협정 파기를 비판하고 나섰다. 지소미아 파기는 잘 한 일이다. 한일 간에 군사정보를 주고받는 일은 말이 좋아 정보보호이지 실은 우리에겐 별로 얻을 게 없고, 일본만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는 계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국제사회에서 얻어맞기만 하는 나라가 아니고, 얻어맞으면 정당방어를 할 줄 아는 나라라는 걸 잘 보여줬다.

미국은 이래서는 안 된다. 트럼프는 유독 아베를 총애하여 골프 카트에 싣고 다니며 친밀한 모습을 연출하는데, 정작 아베가 말도 안 되는 수출규제를 하는데도 따끔한 말 한마디 안 한다는 것은 자기의 본분을 잊은 것이다. 세계가 자유무역을 향해 공동으로 노력해온 세월이 그 얼마인데, 일본이 이와 같이 시대착오적인 수출규제를 한단 말인가. 이는 세계의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미국이 한 마디만 하면 아베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당장 내일이라도 수출 규제를 풀 것이다. 미국이 일본을 편애하고 한국을 무시하는 행동은 세계를 지배하는 대국답지 못한, 균형을 잃은 처사다.

나는 이번 일본의 시대착오적 수출 규제를 보면서 이것이 과거 일본이 미국에 당했던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자 다음 해 미국은 일본에 대한 항공자재 수출을 금지했다. 나아가 1939년에는 과거 1911년에 맺었던 미일통상항해조약을 파기했다. 미국의 대일 경제 보복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 뒤 일본이 동남아를 침공하자 일본에 대한 항공유, 철강, 기계부품의 수출을 금지했고 미국 내 일본 자산을 동결했다. 급기야 1941년 여름 미국은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을 금지했다. 당시 일본이 수입하는 석유의 80%가 미국에서 왔으니 이는 결정적 타격을 줬을 것이다. 일본은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그해 12월7일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역사적 사건을 일본은 잘 기억하고 있다가 이번에 비슷하게 한국에 써먹은 것이 아닐까. 80년 전에 석유가 중요했듯이 지금은 반도체가 중요하니까. 그러나 수출규제가 그때 성공했다고 해서 지금 성공한다는 법은 없다. 그동안 세계 무역질서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그리고 미국의 수출규제는 일본의 중국 침략, 동남아 침략에 대한 대응, 응징이라는 의미가 있었으나 이번의 일본 조처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생트집이고 우리로서는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일본은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을 하라는 작년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들면서 한국은 신의가 없는 나라라고 비판한다. 그게 이번 보복 조처의 이유로 보인다. 그러나 1965년 한일협정을 맺을 때 강제징용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거론도 안 했으니 대법원 판결은 정당하다.

한일협정을 졸속으로 추진한 박정희, 김종필의 원죄도 있다. 아무리 미국이 뒤에서 등을 떠밀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민족 자존심을 걸고 협상을 했어야 하는데, 졸속으로 3억달러에 민족 자존심을 팔아버렸다. 저자세로 구걸하듯이 외교를 하는 바람에 단단히 약점이 잡히고 말았다. 그에 반해 중국의 저우언라이 총리는 일본과 협상하면서 아예 돈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용서하되 잊지 않는다(恕而不忘)’고 한 마디 해서 완전히 일본을 압도했다. 그 뒤 일본은 중국에 대해서는 아무런 시비를 걸지 않고 한국에 대해서만 신의를 문제 삼는다.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는 일본 만주국 인연으로 쉽게 유착하고 대충 마무리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적 그늘이 오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정말 마음 깊이 새기고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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