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실의 쏙쏙 클래식] 쇼팽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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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01   |  발행일 2019-11-01 제40면   |  수정 2020-09-08
서정적인 가을밤, 詩 한편으로 들리는 쇼팽의 녹턴20번 C#단조
[권은실의 쏙쏙 클래식] 쇼팽
[권은실의 쏙쏙 클래식] 쇼팽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쇼팽(1810~1849)은 낭만주의 작곡가로, 그의 피아노음악은 서양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피아노협주곡 2곡, 55곡의 마주르카, 18곡의 폴로네즈, 24곡의 전주곡, 27곡의 연습곡, 21곡의 야상곡, 4곡의 발라드, 4곡의 스케르초, 20곡의 왈츠 등을 포함한 많은 피아노 소품들을 작곡했다. 그는 일평생 피아노음악만 작곡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쇼팽이 살았던 시대 19세기 유럽은 민주주의의 발전, 산업혁명, 신(新)인문주의 운동으로 극심한 변화가 있었다. 18세기의 프랑스혁명이 낳은 자유주의사상은 예술가들에게 자유를 추구하고 개인의 감성을 중시하는 예술관으로 바뀌게 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등장한 신흥 자본가들은 흥행하는 공연에 투자하였고, 그로 인해 전문 직업연주가들이 음악계를 주도했다. 이렇듯 후원의 체제가 바뀜에 따라 자본가들의 눈에 띄지 못한 예술가들은 경제적으로는 가난하였으나 자유와 예술가라는 이름의 선물을 받았다. 낭만주의음악은 독일을 중심으로 19세기 초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에서 꽃을 피웠으며, 작곡가 개인의 감성과 경험에 의한 상상력으로 독창적인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다시 쇼팽으로 돌아가서 왜 그는 피아노음악만 작곡하였을까.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상당한 피아노의 개량이 이루어졌고 바이엘, 체르니 등이 쓴 피아노교습본으로 피아노가 큰 인기를 얻었던 시기였다.

쇼팽은 폴란드 바르샤바 근교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던 어머니와 세 누이들의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그는 자연스럽게 피아노음악을 접할 수 있었으며, 6세 때에 피아노를 처음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의 천재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8세 때 공연을 통해 폴란드의 귀족들에게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더 큰 음악가로 성장하기 위해 폴란드를 떠나 오스트리아 빈,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로 연주여행을 하던 중 바르샤바혁명을 맞게 되고 폴란드가 러시아에 함락된 소식을 듣게 된다. 쇼팽은 조국에 돌아가기 원했으나 가족들의 만류로 평생을 조국 폴란드와 가족을 그리워하며 고독한 음악가로 파리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민족주의 작곡가로도 유명한데, 폴란드 전통음악의 요소들을 그의 피아노음악에 녹였다. 그의 마지막 곡인 마주르카 b단조 곡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폴란드를 생각하면서 작곡한 민족주의적인 작품이다.

일반인에게 인기가 많은 쇼팽의 녹턴(Nocturn)은 야상곡(夜想曲)이라고도 불리는데, 밤의 정취에 영감을 받아 조용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노래한다는 뜻이다. 로마시대에 ‘밤의 신’이라는 의미로 불렸던 라틴어 ‘NOX’에서 유래한다. 우리에게는 쇼팽의 녹턴이 더 익숙하지만 ‘녹턴’이라는 이름으로 작곡한 첫 작곡가는 아일랜드 태생의 존 필드(1782~1837)이다. 존 필드는 이탈리아 성악기법인 벨칸토기법에서 착안해 피아노를 위한 녹턴을 작곡했다고 한다. 노래하듯 밤의 정취를 피아노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든 작곡가들의 ‘녹턴’은 차분하며 서정적이다. 존 필드의 녹턴은 쇼팽 녹턴의 모델이 되었다.

2003년에 국내에 개봉했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는 쇼팽의 녹턴20번C#단조 음악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던 때 나치에 점령당했던 바르샤바에서 유대인 피아니스트 스필만이 겪었던 실화를 토대로 만든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스필만이 라디오방송 녹화를 위해 쇼팽의 녹턴20번을 연주하는 중 폭격을 맞아 방송을 중지해야 하는데도 연주를 멈추려고 하지 않는 장면이다. 이 영화를 통해 쇼팽의 녹턴20번은 많이 알려졌고 쇼팽의 피아노음악이 일반인들에게 많이 사랑받게 되었다. 필자도 이 영화를 보고 녹턴20번의 악보를 구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일반적인 쇼팽의 녹턴 악보에는 1번에서 19번까지만 수록돼 있기 때문이다.

녹턴20번은 쇼팽의 사후에 출간되었고, 원래 이 곡은 제목이 없고 ‘느리게 풍부한 표현을 담아서(Lento con gran expressione)’라고 적혀 있었다. 녹턴이란 제목은 쇼팽의 누이가 붙였으며, 이 곡은 이후에 더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밤의 정취를 묵상하는 노래 ‘녹턴’에 어울리는 서정적이고 회화적인 녹턴20번은 반복되는 단순한 선율이 장식음을 통해 더 아름답게 변화되고, 비화성음들로 인해 화려한 화성적 색채를 만들어낸다. 쇼팽이 곡의 머리말에 써놓은 것처럼 느림으로 인해 쓸쓸하고 고독한 음악의 서정성이 더 풍부해진다.

날씨가 조금 차가워졌다. 가을이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 가을밤에 쇼팽의 녹턴20번 C#단조곡을 들으면 쇼팽이 피아노로 써내려간 시 한편이 들린다. 작곡가·대구음협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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